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홉수 Apr 14. 2020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싶진 않지만

 대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광화문 광장에 갔다. 당시 다른 학교보다 정치색이 짙었던 학교의 신입생이 거쳐가야 했던 코스 중에 하나였다. 정부 정책반대하기 위해 대학생들이 모인 자리였다. 인파 속에 흐르던 긴장감은 아직도 이따금씩 떠오른다.


 정치를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이 잘못 흘러간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다. 약자들을 위해 사회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었고, 제도들은 부당해 보였다. 광화문 광장으로 간 이유도 그랬다.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현 정부의 잘못된 점들을 주욱 늘어놓기 시작하면 내 몸 어디에선가 피가 끓었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격해지는 감정은 세상, 정부를 향한 비판으로 옮겨갔다.


 군 복무 시절 난생처음으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부대 버스가 소속 부대원들을 싣고 투표장으로 갔다. 투표 줄이 길어 기다리기 무료했던지 선임들은 "넌 누굴 뽑을 거냐"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대한민국은 비밀투표제 아닙니까"라고 웃으며 답했다. 선임들처럼 대부분은 바람이나 쐬는 기분으로 보였다. 투표를 기다리며 미리 받았던 후보들의 공약집을 살펴봤다. 투표를 마치고 다음 날 뉴스를 보니 내가 뽑은 그분은 당선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에 복학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총선, 또 한 번의 대통령…. 선거 투표가 있을 때마다 항상 투표장을 찾았다. 가족이 함께 가지 못하더라도 각자 언제나 빠지지 않고 투표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서였다. 가족들보다 뒤늦게 투표장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본인 확인 명단에 가족들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나, 동생. 가족에서 나오는 표는 총 4표였다.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4표씩은 행사하고 있었다.


 기자 시절 다른 부서들이 모이는 온라인팀에 파견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이 됐던 시기였다. 매일 탄식이 오갔던 그 과정을 뉴스로 옮겼다. 주말 근무를 하던 날 같은 팀 후배는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현장 분위기나 시민 반응들을 르포 형식으로 담기 위해서였다. 뉴스를 보고, 쓰고, 동료들의 취재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학생 시절 끓었던 피가 다시 솟구쳤다.


 기자 생활을 끝낸 후 현재 회사에 일하다 보니 이번 총선을 맞이했다. 그 사이 점차 정치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정치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뀐 탓이다. 미래를 위해 정치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조금씩 그 생각들이 옅어졌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정치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다는 생각은 변함은 없지만, '정치'라는 게 너무 큰 덩어리로 느껴졌다. 내가 지지하던 정치인, 정당이 당선되거나 과반을 차지하더라도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정치를 향한 무관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먹고사는 문제에서 온다. 대학생 때는 좋은 세상을 위한 이상, 사회 초년생 때에는 내가 가진 신념을 위해 투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정치인인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결국 그들도 하나의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굶지 않으려고 회사에 다니 듯 그들도 때가 되면 표를 얻기 위해 총력을 다한다.


 정당 이름 왜 이렇게 또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얼핏 보면 과거에 있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는데 정당 이름만 바뀌었다. 정치도 결국에는 정치적 신념보다는 이름값이 중요한 걸까. 이름이 알려진 이들은 어디에서든지 살아남는다. 사회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성인이 된 후 작은 한 표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물론 한국의 정치는 과거보다 나날이 나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냥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정당에 누가 지역구 의원이 됐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반복이 되니 정치에서 점차 멀어져 갔다.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내가 지지했던 정당, 의원이라고 해서 무작정 투표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과 정치는 움직이는 것이기에 그를 지지했던 나의 생각이, 나의 지지를 받던 그의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정당만 보고 '이 정당을 찍어야지'라든가, '이 정치인이 믿음직하다'라고 하기에는 얼얼하게 뒤통수를 맞은 기억들이 많다.


 나는 투표장에 가게 될 것인가. 만약 이번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개인적으로 처음으로 투표를 하지 않은 선거가 될 테다. 그래도 정치를 믿어볼 만한 것인가. 정치는 국민들의 믿음에 화답할 것인가. 단지 뽑고 싶은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건지,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고 있는 건지 확실치는 않다. 그래도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어제보다는 더 살기좋은 곳이 됐으면 하는 생각은 다행히도 그대로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결국 마음을 얻는 게 가장 어려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