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 러너 심진석
2025년 9월 28일, 공주 백제 마라톤.
그날, 사람들은 '괴물'이라 부를 만한 한 러너를 보았다.
맨발에 신발만 신은 채 풀코스를 2시간 35분 43초로 완주한 남자.
사람들은 그를 '낭만 러너'라 불렀다.
그의 훈련 방식 뒤에는
'낭만'이라기보다는 고단한 현실이 있었다.
육체노동으로 소모되는 하루에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었던
그의 유일한 '훈련'은 출퇴근길 달리기였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슴 뛰는 삶'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묻게 한다.
그의 '가슴 뜀'은 결코 편안한 즐거움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을 견디며 쌓아 올린 성취감이며,
삶을 정면으로 마주한 인간이 선택한
존엄한 존재의 방식에 가깝다.
그는
'편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린다.
그 말 속에 그의 삶 전체가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그는 처음부터 칭송받지 않았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봤을 때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뛰는 아저씨."
"저렇게까지 고생하면서 살 필요가 있나?"
"차 타고 다니지, 비효율적이다."
우리 사회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의 고통을
대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바라보는 일은
자신의 나태함과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풀코스를 2시간 35분대로 뛰고
각종 대회에서 1등을 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180도 바뀐다.
이제 그가 했던 모든 고통과 비효율은
'의미 있는 과정',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재해석된다.
그의 가족사, 어려움, 노동의 피로는
'감동적인 서사'로 치환된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역경을 이겨낸 사람은 아름답다."
사회는 늘 그렇게 누군가의 인내를
사후적으로 미화하며
자신의 모순을 은폐해 왔다.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고독한 인내의 가치는 모두 알고 있지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 고통을 외면하고 심판한다.
오직 성공이라는 결과를 통해서만
그 인내의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어떤 선택을 반복해 왔는가이다.
편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선택해 온 것.
그 반복이 쌓여
삶의 밀도가 되고,
그 밀도가 어느 날
우리가 말하는 '가슴 뛰는 삶'이라는 이름으로
비로소 보이게 될 뿐이다.
심진석 선수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한다.
특별해서 달린 것이 아니라,
달리기를 선택하는 삶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