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의 종착지는 어디인가
드라마 '악귀'에 어린아이를 굶겨 죽여 그 집안 대대로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도록 악귀로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며 현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좋은 기회’, ‘희생을 해도 이렇게 해야’라고 말했던 이, 침수 피해 현장에서 시민의 절규를 외면하고 보리밥 메뉴판에 눈을 둔 이. 수해 재난 현장에서 웃고 손뼉 치며 "사진 잘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던 이, 에코백 속에 명품 가방을 감추며 대중을 기만했던 이, 인간의 도리와 양심을 저버리고 오직 사익만 좇는 태도는, 드라마 '악귀'의 그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 이들은 악귀의 힘을 빌리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악마의 화신이 되려 했던 것은 아닌지, 그 얼굴들에서 도덕적 붕괴의 형상이 겹쳐 보인다.
이기심은 서로를 끌어당긴다. 비슷한 욕망의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고 그 집단 안에서 그들이 가진
거대한 이기심의 에너지는 과연 전능한 신(神)처럼 보일 터이니, 숭배하며 따르는 무리가 생기고 사회는 그렇게 무너져간다.
이기심의 끝은 무엇인가.
김상봉의 『호모 에티쿠스』는 플라톤을 빌려 말한다.
"도둑의 무리라 하더라도 여럿이 무엇인가를 하려면, 그들 사이에 단순한 탐욕을 넘어서는 '선(善)의 원리'가 조금이라도 살아 있어야 한다"라고.
이기심은 본질적으로 분열의 마음이기에, 그 종착지는 공멸과 파멸일 수밖에 없다.
탐욕과 이기심의 기운이 극에 달한 지금, 국민이 국가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다시 『호모 에티쿠스』의 글귀를 빌리자면,
행복은 선과 도덕을 중요한 가치로 숭상할 때 우리 모두에게 더 가까워진다.
그래서 바란다. 마약처럼 당장은 황홀할지라도 결국 모두를 파멸로 이끄는 탐욕과 이기심이 아니라, 양심과 도리가 기축이 되는 세상, 재난 앞에서 사람을 먼저 보는 정부, 책임을 앞세우는 지도, 이익보다 원칙을 선택하는 시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바로 그런 곳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