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친구랑 같이 한일전 보기
나는 올해로 일본 거주 10년 차인 직장인이다.
집에 있을 때도 텔레비전을 딱히 키는 사람이 아니어서, 아시안게임이라는 걸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며칠 전, 일본친구가 한일전 축구경기를 하는데 같이 보자는 연락이 왔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한일전이면 가슴 뜨겁게 경기를 볼 자신이 있지만, 전혀 관심 없는 게임의 한일전이라.. 그냥 하나의 게임에 불과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응? 뭐라고? 결승전인데 한일전, 게다가 축구경기라고? 결승전은 다르지, 우와 재밌겠다 그래 보자!’
스포츠를 좋아하는 친구한테 아시안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이강인이 이번 축구경기 결승에서 이기면 군면제라니! 한껏 과자랑 피자랑 맛있는 걸 사들고 누구보다 열정적이게 응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가끔 경기나 정치적인 부분에 있어서 일본친구던, 한국 친구던 간에 나에게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넌 이럴 땐 어느 나라 응원해?”
어쩌다 보니 나이 곧 서른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 인생의 10년이면 1/3 이상을 살아온 나라가 되어버리니,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 뭐 그런 걸 물어보지?‘ 싶기도 할 때가 있다.
’일본에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한국이 국적인 사람한테 어느 나라를 응원하냐니! 그것도 가슴 뜨거운 한일전에! ‘
가 내 대답이다. 하지만, 일본 친구, 혹은 상사가 물어볼 땐 이렇게 답한다.
’당연히 한국이죠! 근데 일본이 더 유리한 상황이거나 일본이랑 다른 나라가 하는 경기에선 당연히 일본을 응원해요!‘라고하며 확실히 선을 긋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이게 내 솔직한 대답이기도 하고.
이번 경기에선 매우 친한 친구이기에 가능한 너나 할 것 없이 각자의 나라를 응원했다. 이럴 땐 서로 놀리기도 가능하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서로에 대한 배려와 상대의 나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1:0
일본친구: 야 ㅋㅋㅋ 어떡하냐 일본 선수 너무 경기 잘한다~ 일본이 한골 넣었는데 지면 이강인 군대 가야 해! 그게 일본 때문이 라니~ 배 아파서 어쩌냐~~ 솔직히 일본이 져도 된다고 생각해, 군대 가는 건 너무 불쌍하잖아 ㅠㅠ
1:1
나: ㅋㅋ야 지금 동점인데 ㅋㅋㅋ 진짜 군대 안 갈 수도 있어. 와~ 근데 일본 선수들 왜 이렇게 다들 잘생겼냐(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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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친구: 아!! 졌다!! 일본 선수 왜 이렇게 못해!! 한국선수들 군대 안 가는 대신에 일본선수들 다 군대 보내버려야 해.
이 친구 반응 보면서 경기를 보는데 반응이 이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한일전에서 한국응원하지~라고 했지만, 일본이 이겨도 기분이 엄청 나쁘지만도 않을 것 같다. 스포츠라는 게 신기한 게, 나라 상관없이 이날만을 위해 뛰는 선수들만 봐도 희한하게 감동적이고, 땀 흘리는 열정에 감정이 북받칠 때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결승 비록 일본에서 봐서 승리 후의 현장감은 별로 못 느꼈지만, 이겨서 정말 다행이다:)
축구선수들, 금메달 정말 축하드려요 :)
제가 운영하는 일본 생활들이 담긴 유튜브채널 소개드립니다.
이번 에피소드의 영상, 실시간으로 일본인 친구 반응을 편집해서 올렸어요:) 궁금하시면 보러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