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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나 Jul 11. 2023

03.외국인이니까

2014년 4월

2014 오늘은 하늘이 역대급으로 이뻤다 태풍은 너구리라는이름답게 귀엽게 우리동네를 빗겨나갔다.

집도 구하고, 핸드폰도 개통했다. 통장도 만들고 일본에 정착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유학생 신분으로는 제한되는 것들이 정말 많다.

부동산 계약을 할 수 있는 안건수도 외국인에게는 제한되는 부분이 많고, 재류기간이 핸드폰 약정보다 짧은 경우엔, 계약도 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여기에 산다는데..!


일본에 간다 하면 왜 가냐고들 했다. 일본이 뭐가 좋냐며. 내가 역사를 잊은 친일파라서?

딱히 일본에 대해서 나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끄럽게도 내 주관적인 의견을 내놓으며 논쟁할 만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아시아의 선직국인 일본의 문화가 뭐가 그리 대단하며, 이 나라만의 디자인 감각을 배우고, 무엇이 외국인에게 이렇게 매력적인 나라인지 알고 싶었다. 솔직히, 현재는 한국도 많이 발전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졌지만, 어느 외국을 가던 아직도 일본의 위상을 이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단, 일본이 아닌 어느 나라에 가든 겪게 되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는 충분히 방어할 준비는 단단히 했다.


집을 계약하려고 보면 한국인들만 안 받는 집도 더러 있다. 그런 곳은 보통 한국인들에게 크게 당한 집주인들이다. 국가에 대한 차별적인 제한을 두는 곳은 이유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쓰레기를 처리하지도 않고 퇴거를 했다던가.. 계약을 어겼다던가 등..

차별이라는 단어 뒤에는 어느 한편 무언가 안 좋은 경험을 당한 사람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이렇듯, 아무 이유 없이 대놓고 차별하는 사람은 기본 별로 없다.


외국에 사는 이상 나는 ‘외국인’이며 다른 나라에서 온 이방인이다. 내가 하는 행동이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되며 나의 발언은 ’ 한국‘이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학과에는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었기 때문에 나를 신기해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만큼 관심도 많이 받았으며, 다들 나를 알아봤다. 첫 한 학기는 적응하느라 바쁘게 지냈지만, 신기하게 마음 통하는 친구가 정말 단 한 명도 없어, 생각보다 힘들었다.


마음이 통한다는 것. 처음 일본인들에게는 내가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벽이 있는지 조차 몰랐다. 일본어가 어눌한 ’ 외국인‘이였기에 다들 친절하게 대해줬으며, 그런 친절이 벽을 만들었고, 친절한 친구가 아닌 그냥 친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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