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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rianne R Jan 17. 2024

모국어 배우기 3

엄마 둘, 남매 하나. <11과. 아버지를 도와드렸어>

엄마와
또 다른 엄마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묻는다.



"Mother는 mama인데 엄마는 뭐라고 불러? 엄마는 남자가 아니니까 father가 아니잖아. 학교에서는 엄마를 뭐라고 불러야 하지? My mom and other mom 이라고 표현 하는데 other mom 은 단어가 아니잖아."


"그러게, 공식적인 단어가 없네."



맞는 말이었다. 동성혼이 합법이라고 해도 mother, father를 대신할 공식적인 호칭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학교 서류에 parent1, 2, guardian 1, 2 같은 단어로 보호자를 구분했지만 mother, father를 일대일로 대칭할 수 있는 단어는 아니었다.


그 동안 집안에서 마마(만다린어), 엄마(한국어)로 호칭을 마음대로 정하면서 자유로움을 만끽했다면 이제는 아이가 부연 설명을 해야하는 학급현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목표: 네 아이도 내 아이도 나도 잘 키우자


 한국어 교재의 역사와 활용에 대해 배울 수 있었던 과목인 '교재론'에서는 문법, 삽화, 문화적 배경에 대한 내용등 다양한 부분에서 개정이 필요하거나 오류가 있는 경우 교사가 융통성 있게 그 차이를 메꿔줘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워싱턴 대학의 제임스 뱅크스(James A. Banks)의 <다문화 교육 입문>이 참고 자료로 쓰인 과목 '다문화사회교육론'에서는 '공평한 교수법'을 언급한다. 교사가 학생들의 문화적 배경을 잘 활용하는 수업방법을 사용하면 다양한 문화·언어 집단에서 온 학생들의 교실 참여도와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런 시도가 주류학생과 비주류 학생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국경을 넘어 다양한 문화에서 기능할 수 있는 간문화 역량(cross-cultural competence)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2050년에는 유색인종이 미국인구의 절반을 넘게 된다.(U.S. Census Bureau, 2000) 편견이 개인의 능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고 나아가 국가와 공동체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일이 교실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두 과목을 통해 교사가 융통성있게 수업 형태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아이들의 다양한 배경을 충분히 활용한 수업이 참여율을 높여 학업 성취도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이 과정이 주류학생과 비주류학생들 모두에게 득이 된다는 사실은 특히 크게 다가왔다. 그리고 안도했다. 그간 교실 안에서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 모습 그대로, 아이들 모습 그대로 수업에 필요한 만큼 적용해보고 싶어졌다.



모모가정 아이와 선생님들


아이를 가르치면서 좋은 점은 학교생활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저런 표정을 하겠지.’ 다른 아이들 속에 섞여 나를 바라보는 첫째를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들었다.


3학년 때 받은 리포트카드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끊고 갑자기 끼어든다는 피드백을 받았을 때는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이끄는 수업중에도 말을 끊고 자주 끼어들곤 했던 학기 였기 때문이다. 퉁명스러움과 허세가 몽글몽글 피어오르기 시작한 시기에 아이는 재미있는 생각을 참지 못하고 선생님의 말 허리를 자르며 신나게 존재감을 뽐내고 싶어했을 것이다.


호칭에 대한 질문을 하는 딸의 얼굴을 볼 때 학교에서도 그런 표정을 지었을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엄마Umma‘라는 호칭이 없는 이유를 궁금해 하고 내 수업에서는 ‘마마’라는 단어가 왜 없는지 궁금해 했겠지. 미국학교에는 선생님에 따라 Umma라는 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선생님이 종종 있었다. 주로 나와 대화가 자주 오가는 경우 선생님의 개인적으로 노력해주시는 편이었다. 매해 기복이 있었지만 이정도면 괜찮았다. 대칭되는 단어가 없음에도 선생님들은 사회와 교재와 첫째 사이의 빈 공간을 메꿔주고 계셨다.



교실에서,
엄마와 마마, 아빠와 파파를 들고.


 엄마이자 선생님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며 첫째를 학생으로 대한 지 4년째. ‘절’의 이해가 어려워 몸을 베베 꼬고 있는 첫째가 보였다. 영어를 공부할때 '절'의 의미를 이해하기 못해 헤매던 내 모습을 복사해 붙여 놓은 아이의 모습.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은 우리는 아마도 발가락이 닮았다. 언제까지 한국어 배우기를 기대해야 할까. 고등학생이 되면 해야할 일이 많아져 한국어는 뒷전으로 밀리는게 암묵적인 수순인듯 하다. 그 전까지 여러시도를 할 뿐이었다. 이 수업에 아이가 더 빠져들도록 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할까.





 학업은 점점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다가오는 마지막 학기에는 모의수업을 녹화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녹화본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아이들이 배우게 될 내용을 살펴보니 <11과 아버지를 도와드렸어> 가 눈에 띄었다. 가족중심의 초급단어 중 '아버지'를 이용해 한국어 문법 '-었(았)어요'를 가르치기 위한 예문이었다. 제목을 보고 망설였지만 아버지를 전면에 내세운 챕터를 선택해 녹화 하기로 했다.


어차피 배워야 하는 내용이다.


 수업을 도입-제시-활용-정리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진행했다. 여러가지 세부사항이 있지만 도입 단계에서 수업에 관련된 가벼운 이야기로 슬슬 시동을 걸다가 문법을 제시하고 연습 시켜 스스로 활용하게 한 후 정리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도입, 제시 부분에 평소보다 많은 예문을 넣어 신경쓰고 활용 부분에 들어가는 그림을 한 장에 특히 더 신경을 썼다. 이전 챕터를 가르치다가 유심히 봐뒀던 그림이었다. 한 가족이 모여 있는 그림이지만 대화 내용이 없어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는 그림.

<한글학교 한국어 4권>, 교육과학기술부, 재외동포재단






"여러분, 누가 누구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그림 속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해보세요."

수업의 도입-제시 가 끝나고 활용단계에 들어서자 아이들의 집중력이 흐트러질까봐 약간 초조해졌다. 이미 계획했던 시간이 넘어 있었다.


"옆의 보기를 볼까요? 그림을 보고 한 사람에게 이름이나 호칭을 붙이세요. 할머니 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일 수도 있고, 삼촌일 수도 있어요. It depends on what you think" 각각 다른 사람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아이들은 보기에 나온 사람을 살펴보며 누구를 어떤 호칭으로 정할지 고민하는 듯 했다.


 가능한 호칭을 여러개 준비해 슬라이드에 넣었다.





세 명의 학생들이 만든 문장들은 각각

"형, 동생을 도와줘."

"할아버지, 엄마께 샐러드를 만들어 주세요."

"형, 아빠 요리를 도와 주세요."


그런대로 '-아(어) 주세요'를 만들어 냈으니 성공적이었다.


마마, 파파를 신경써서 보기에 넣었지만 아이들은 그 부분이 눈에 들어오는지 아닌지 문법을 신경쓰느라 바쁘기만 했다. 심지어 딸도 마찬가지였다. 국립국어원의 심사를 거치게 될 소중한 영상에 새로운 시도를 담아보려 신경을 썼지만 아무래도 나만큼 신경쓰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교감선생님께도 수업 내용을 보고할 겸 영상을 보여드렸다. '이 정도면 excellent 에요.' 담당 교수님도 몇 가지 부분을 짚어주시고는 말씀이 없으셨다. 잘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가 보다' 하고 다들 넘어가게 하는게 목표였는데 정말로 다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간다니 수업에서 좀 더 편안해져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인기 컨텐츠


플로리다 대학의 윤은희 교수님께서 미국의 한 동성커플 가족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아이가 많이 커서 나름 진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따로 자리를 만들어서 기증자와 임신과정에 대해서 털어놨는데 '아 그렇구나, 이제 나가서 놀아도 되지?' 라고 하면서 밖으로 뛰어나가 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지금 나가 놀고 있는 아이를 다시 앉혀놓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긴 글의 말미에 역경과 갈등을 딛고 일어서는 주인공의 드라마틱한 눈물 같은 것이 들어가야 인기가 있을텐데 점점 맥아리 없이 흘러간다. 배신감, 반항심, 격렬한 언쟁에 이은 눈물의 화해 스토리라도 생길지 몰라 걱정했을, 그러나 염려가 무색해졌던 그 가정의 허무한 이야기처럼 잔뜩 힘을 준 모의 수업이 싱겁게 끝났다. 가족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간이 덜 된 국처럼 심심하게 흘러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모는 부모대로 성장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모모가 되는 일도 비슷한 것 같은데.


어지러운 집안, 지나치게 수다스러운 아이들, 피아노 연습을 재촉하는 저녁, 제설작업에 뭉근히 아파오는 허리, 건조기에 옮기는 일을 깜박해 냄새가 나기 시작할 빨래, 아직 치우지 않은 1월 중순의 크리스마스 트리.


아무래도 비슷한 것 같은데.












계속 되는 기우를 잠재울 만한 의미있는 기사를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아래는 노트해두고 싶은 부분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08/0000033585?sid=104

프랑스 학계에서 처음으로 동성 부모 친권에 대해 다룬 논문은 2002년 아동심리학자인 스테판 나도가 쓴 ‘동성 부모 친권, 가족의 새로운 기회’다. 4~16세 아동 58명을 연구한 이 논문에서 스테판 나도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아이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고, 둘째, 부모의 동성애가 그 자체로 아이에게 위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성장 배경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밝히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2019년 9월21일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 ‘국립 레즈비언 가족 연구’의 수석 연구원이자 정신과 의사인 나넷 가트렐을 인터뷰하며 그의 장기 추적 연구를 소개했다. 가트렐은 1986년부터 77명의 여성 부부 아이들이 25세 될 때까지 추적 연구했는데, 그 결과 “이 청년들은 정신건강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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