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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안 Oct 24. 2022

꼬물꼬물 애벌레 '헤이브로'의 행복을 바라며

얼마 전, 브로콜리를 먹겠다고 사놓고는 며칠 동안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주 금요일이 되어서야 냉장고 한 구석에 처박아 둔 브로콜리가 눈에 들어왔다. 더 늦기 전에 먹어야겠다 싶어서 포장을 뜯었다.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브로콜리를 담그고는 여러 차례 흔들흔들 씻어낸 뒤, 먹기 좋은 크기로 브로콜리를 한 송이씩 썰었다. 좀 잘라보니 안쪽에 상한 듯한 흔적이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방치했나? 생각하던 찰나...! 제법 덩치가 큰 애벌레가 브로콜리 송이 사이에 통통한 몸을 숨기고는 꼬물대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나머지 싱크대에 브로콜리를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으악, 벌레 무서워!


사람마다 제각각 두려워하는 대상이 다르다는데 내가 유독 무서워하는 것은 곤충이다. 고등학생 때도 야간자율학습을 하다가 교실에 이름 모를 벌레들이 날아들어오면 냅다 책을 싸들고 교실 한 구석으로 도망쳤다. 다른 친구들이 벌레를 잡아주기 전까지는 좀처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모기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할 만큼 무서워한다. 차마 잡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순발력도 딸리지만 헌혈은 하고 싶지 않으니,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청하는 편이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애벌레를 보고 놀란 마음이 서서히 진정됐다. 그래도 칼질을 잘못했더라면 애가 죽을 뻔했는데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돌이켜보니  행동이 어이없고 우스웠다. 애벌레 입장에서는 맛있는 브로콜리를  먹으며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날부터 날씨가 쌀쌀해지더니(냉장 보관), 느닷없이 어푸어푸 찬물 샤워를 당했을 것이다. 이윽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브로콜리 숲의 기둥이 하나둘씩 무너져 내리더니, 거대한 생명체 하나가 별안간 "으악!" 비명을 지르며 자기를 냅다 집어던진 꼴이 아닌가. 물론 이러한 생각마저 지극히 인간 관점일 수는 있겠지만, 애벌레 입장에서도 황당하고 무섭지 않았을까 싶다. 애벌레는 인간에 비하면 한없이 약한 존재다. 그런데도 정작 내가  엄살을  것이 민망해서 쿡쿡 웃었다.


그렇다면 이제 저 애벌레를 어쩌지? 곤충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즉시 고자질을 했다. 남편은 많이 놀랐겠다며 마음을 다독여주고는 "그 애벌레, 숲속으로 돌려보내줄까?"라고 제안했다. 마침 현재 사는 집이 숲세권이다. 토요일 오전까지 싱크대에 남겨진 애벌레는 브로콜리를 파먹다가 꾸벅꾸벅 졸기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했다. 나는 차마 자세히 보지 못했다...). 남편이 조심스레 브로콜리를 비닐봉투에 담았다. 우리는 동네 주변 풀숲을 살피며 어디에 풀어주는 것이 좋을지 고민했다. 그런데 이날따라 유독 까치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깍깍깍깍! 경쾌한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남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오늘따라 왜 이렇게 까치가 많지. 좀 무서운데?" 까치가 애벌레를 꼴까닥 삼키는 장면을 상상하니 왠지 오싹해졌다. 물론 까치가 애벌레를 잡아먹는다 하더라도 자연의 섭리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애벌레가 까치의 눈을 피해 잘 살아남길 바랐다.


헤이브로의 야무진 식사 흔적.


남편이 보기에 그 애벌레는 나방 애벌레로 추정되고, 넓적하고 통통한 잎사귀를 잘 먹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그런 잎이 있는 나무를 찾아서는 나뭇잎 위에 살포시 애벌레를 올려주었다. 애벌레는 느릿느릿 기어가더니 이내 나뭇잎에 자신의 통통한 몸을 맡겼다. 남편이 애벌레를 죽이거나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숲속에 풀어준 것이 고마웠다. 물론 나는 벌레를 극히 무서워하지만, 이 세상에 내가 선호하는 것만 존재할 수는 없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듯이 벌레도 그저 존재할 뿐이다. 똑같이 살아 숨쉬는 생명인데 어떤 곤충은 인간에게 유익하니 익충이고, 어떤 곤충은 인간의 생활에 방해가 되거나 징그럽다고 해충이라면서 '마음대로 죽여도 되는 애'라고 합리화하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아마도 도시에서 자라면서 곤충을 접할 기회가 부쩍 줄어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인간은 본디 낯선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어릴 적부터 곤충을 가까이하며 자랐던 남편은 "사람들이 벌레에 관해 너무 많이 오해하고 있고, 그래서 더 무서워하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심지어 요즘에는 타인을 비하하는 욕으로 벌레라는 표현을 쓰지 않나. 현대 사회에서 벌레는 혐오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도시화된 환경에서 벌레를 볼 기회는 적은 반면 벌레를 혐오하는 정서는 공고해졌는데, 여기에 온갖 상상이 더해지면서 벌레가 더욱 무섭고 끔찍한 존재로 각인된 것이 아닐까 한다. 인간은 때로 실재하는 것보다 막연한 상상 속 이미지를 더 강렬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벌레 입장에서는 억울한 점이 많지 않을까 싶다. 지난 여름, 서울 북서부 지역에 러브버그가 대거 출몰해 화제가 됐다. 전문가에 따르면 러브버그는 유기물을 분해해 생태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곤충이라고 한다. 독성이 없는 것은 물론이며, 사람을 물 수 없는 입 구조를 가졌다고 한다. 심지어 5일이면 자연사하기 때문에 그냥 기다리는 것이 좋고, 살충제를 뿌리면 도리어 인간에게 좋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생김새를 보고 혐오했고 민원을 받은 지자체는 곳곳에 살충제를 도포했다. 물론 낯선 벌레가 갑작스레 떼지어 나타난 것에 놀란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죄 없는 생명이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두려워할지언정 미워하지 않을 수는 없는 걸까. 이 세상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국의 파브르라 불리는 곤충학자 정부희 박사가 쓴 <벌레를 사랑하는 기분>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언제부터 그렇게 벌레를 혐오하게 된 것인지 질문하면서, 알고 보면 친근하고 다정한 곤충의 이야기를 담아낸 자연과학 도서라고 한다. 사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조차도 책에 사진이 나오는 것이 두려워서(...) 차마 읽어보지는 못했기에 참 부끄럽지만, 이런 책이 쓰여진 취지를 떠올리면서 벌레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차츰차츰 바꿔볼까 한다.


숲에 애벌레를 놓아주고 돌아오는 길에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우리 애벌레한테 이름도 안 지어줬어." 그러자 남편은 "브로콜리에서 발견한 친구니까 '헤이브로'라고 하면 어떨까?"라고 했다. 이미 늦었지만 헤이브로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헤이브로야, 네가 먹던 브로콜리 집어던져서 미안해. 까치한테도, 참새한테도 잡아먹히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집안에 들어온 이름 모를 커다란 날벌레에 겁을 먹고 동네 카페로 뛰어왔다. 물론 집안을 환기하면서 방충망을 단도리하지 않은 내 책임이다. 정작 벌레를 피해 도망치면서도 벌레를 미워하지 말자는 글을 쓰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모순적이고 또 못났음을 시인한다. 그래도 벌레를 무작정 싫어하기보다는, 벌레 역시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노력을 해 보고자 한다. 이제 다시 살금살금 집으로 가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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