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단군 이래 가장 많이 공부하고, 제일 똑똑하고, 외국어에도 능통하고, 첨단 전자제품도 레고블록 만지듯 다루는 세대야. 안 그래? 거의 모두 대학을 나왔고 토익점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자막 없이도 할리우드 액션영화 정도는 볼 수 있고 타이핑도 분당 삼백 타는 우습고 평균 신장도 크지.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맞아, 너도 피아노 치지 않아? 독서량도 우리 윗세대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아. 우리 부모세대는 그중에서 단 하나만 잘해도, 아니 비슷하게 하기만 해도 평생을 먹고 살 수 있었어.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다 놀고 있는 거야? 왜 모두 실업자인 거야? 도대체 우리가 뭘 잘못한 거지?"
- 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김영하 작가의 장편소설 <퀴즈쇼>는 청년세대의 취업난과 각박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이민수는 대한민국 고도성장기인 1980년대에 태어난 27살 취업준비생이다. 부모님은 없었지만 외할머니 슬하에 부족함이 없었던 민수의 삶은 외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외할머니가 남겨놓은 빚을 감당하지 못한 그는 하루아침에 창문도 없는 고시원으로 내몰린다. 돈을 벌기 위해 취업시장에 뛰어들지만 면접에서 번번이 탈락한다.
마치 요즘 이야기인 것 같지만 <퀴즈쇼>는 2007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오래된 소설이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현실이 달라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10년이 지나면 강산이 바뀐다더니 청년실업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사정이 더 나빠진 듯하다. 신입사원 공개채용 규모도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취업 시장은 더 얼어붙었고, 아르바이트 자리마저 구하기 어렵다.
문득 10년 전에 어떻게 취업 준비를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이미 한참 지난 이야기를 구태여 꺼내보는 이유는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진 것이 없는지 살펴보기 위함이다. 이토록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왜 세상은 바뀌지 않을까.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걸까.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취업 준비를 할 때 가장 괴로웠던 것은 내가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건 아닐까 하는 자책감이었다. 나는 인문학부에 입학했다. 1학년 때는 학부에 소속되어 있다가 2학년 때 세부전공을 결정해야 했는데, 학부 동기들 중 상당수가 경영학과로 옮겨가거나 경영학 복수전공을 택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 취업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경영학과에 수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자 수강신청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일부 경영학과 학생들은 복수전공자와 부전공자가 너무 많은 나머지 주전공자마저 수강신청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다들 저렇게 취업을 위해 발버둥치는데, 나는 적성을 이유로 꿋꿋하게 국어국문학 전공을 선택했으니 취업난을 각오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한 번은 동아리에 졸업한 선배들이 찾아왔는데 그 중에 한 선배가 내게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국문과요"라고 답했더니 "아, 굶는과?"라는 답이 돌아왔다. (실제로도 발음이 참 비슷하다)
설마 하는 마음도 잠시, 취업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웠다. 꼭 전공 때문에 취업이 어려웠다고 치부할 수는 없겠지만, 같은 학교 내에서도 전공에 따라 취업률에 확연히 차이가 났다. 이런 현실 때문인지 인구론(인문계 90%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문레기(문과+쓰레기), 문과충(문과+벌레) 등의 신조어가 속속 등장했다. 처음에는 자조적인 표현으로 쓰였는데 나중에는 인문학 전공생 자체를 비하하는 뜻으로도 쓰였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에 따라 전공을 선택한 것마저 죄가 된다면, 세상은 단 한 줌의 잘못도 하지 않은 걸까.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는 것은 아닐까. 사람마다 적성과 소질이 다르고 직무나 사업의 분야도 한두 가지는 아닐진대, 모든 학생이 인기 있는 전공으로만 몰려가고 획일화되는 것이 과연 옳은 걸까.
4학년 2학기, 한 회사에서 두 달 동안 인턴으로 일했지만 정규직 전환에 실패했다. 학기 중에 인턴을 하는 바람에 수업을 듣지 못했고 학점은 크게 떨어졌는데, 취업마저 못 했으니 큰 낭패였다. 부지런히 서류를 넣었지만 밥 먹듯이 탈락했다. 가뭄에 콩 나듯 인적성, 면접 기회가 찾아왔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우울이 눈가를 스쳤다.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인가 봐. 그러니까 정규직 전환에도 실패했고 다른 곳에서도 안 받아주는 거겠지. 강남과 종로에서 취업스터디를 하며 생각했다. 이렇게 회사 건물이 수두룩 빽빽한데 왜 내가 들어갈 곳은 한 군데도 없는 걸까.
나는 연필을 들고 백지 위에 적었다.
돈이 필요해.
그랬다가, 누가 볼 것도 아닌데, '돈'이라는 글자가 상스러워 보여 그것을 지우고 그 아래에 '직장'이라고 써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아 다시 지우고 '직업'이라고 썼다. 직장은 없어도 되지만 직업은 있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 김영하, <퀴즈쇼> 중에서
돈이 없으니까 어서 취업을 해야 하는데, 취업 준비를 하면 할수록 돈이 많이 들었다. 토익 점수의 만료기간이 다가오는 것도 바짝 목을 죄었다. 시험에 다시 응시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점수를 올리려면, 학원을 등록하고 시험도 꼬박꼬박 치는 것이 유리했다. 학원은 늘 전쟁이었다. 수많은 학생들이 앞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복도와 계단 바닥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줄지어 앉아 있었다. 앞 수업이 끝나는 즉시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복도에 앉아서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고 영단어를 외우면 시간을 절약하고 단어 시험도 대비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기겁했지만 곧이어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강사는 첫 수업부터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토익은 영어가 아니에요. 스킬이 중요한 거예요" 전문 강사마저 토익 성적과 영어 실력이 별개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업에서 토익 점수를 요구하니 별 수 없었다. 토익 응시료는 취업준비생에게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야금야금 오르더니 요즘에는 48,000원이란다. 이뿐인가, 오픽이나 토익스피킹 같은 영어 말하기 시험도 필수가 된 지 오래다. 현재 오픽 응시료는 무려 78,100원에 달한다. 돈 없으면 시험도 못 치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졸업을 미루는 데에도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졸업이 가까워오자 초조해졌다. 기업에서 기졸업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문은 무럭무럭 걱정과 공포를 키웠다. 일단 인턴이나 대외활동 지원 요건이 대학 재학생 또는 휴학생 신분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다. 대학에서 제공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도 재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심리적인 이유도 컸다. 아무데도 소속되지 않는 것이 불안했다. 어떻게든 학교를 울타리로 삼고 대학생 타이틀이라도 갖고 있는 것이 왠지 더 나아보였다. 딱 한 번만 졸업을 미루기로 했다. 졸업을 미루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첫째, 졸업유예를 하고 최소 1학점 이상의 수업을 들으면서 등록금 1/6을 납부하는 것. 둘째, 졸업논문을 제출하지 않고 논문심사비를 내는 것. 애초에 졸업논문을 제출하지 않는데 왜 논문심사비를 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한 학기 등록금의 1/6을 내는 것보다는 훨씬 저렴했기에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2018년에 졸업유예금 제도가 폐지되었는데, 일부 대학에서는 여전히 편법으로 졸업유예금 성격의 돈을 걷고 있다)
물론 기업에서 기졸업자를 선호하지 않는다는 소문의 진위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취업이 언제 될지 장담하기 어려운데, 졸업하고 공백 기간이 2년, 3년을 넘어간다면 면접에서 "그 동안 뭐하셨어요?"라는 질문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15~29세)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취업이 임금근로자일 경우,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기까지 평균 10.1개월이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을 미루는 청년들이 상당하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취업에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제때 졸업하기가 쉽지 않다. 청년실업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이로 인한 공백 기간은 청년 개인의 치부가 되기 때문이다. 왜 우리는 평생을 치열하게 달려왔음에도 언제나 어른들 눈에 그럴싸해 보이는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만 하고, 순간의 여유나 방황은 너그러이 이해받지 못하는 걸까. 이런 이유로 2022년 현재도 졸업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청년들은 여전히 많다.
현실을 향한 불만도 잠시, 어쨌든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논문심사비를 낼 돈이 없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취업준비에는 정말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자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취업도 못 한 주제에 졸업을 미뤄야 하니 돈 달라고 하기엔 마음이 찔렸다. 고민 끝에 청약 통장이 떠올랐다. 그 청약 통장은 새내기 때 동아리 선배가 은행에 취업했다며 가입을 부탁한 나머지 들었던 것이었다. 비록 꾸준히 납입하지도 않았고 소액이었지만, 그 돈이면 되겠다 싶었다. 은행을 방문했더니 직원이 만류했다. "가입하신 지 오래됐는데 너무 아까워요. 그냥 갖고 계시는 게 좋을 텐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래도 해지해 달라고 했다. 목구멍이 시큰했지만 집보다는 취업이 우선이었다. 어차피 이제까지 제대로 납입했던 건 아니잖아. 나중에 취업해서 다시 가입해도 늦지 않을 거야.
졸업을 미루고, 내 집 마련을 미루고, 결혼을 미루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됐다. 덩달아 현재 누릴 즐거움도 미뤘다.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것도 철없고 사치스런 짓 같았다. 이렇게 뭐든 미루고 미뤄도 괜찮은 걸까. 미뤄둔 것들을 다 이룰 날이 오기는 할까. 몰라! 로또에 당첨됐으면 좋겠다. 로또 당첨되면 이런 걱정따위 안 해도 될 텐데. (물론 로또를 살 돈도 없었다)
우리는 현실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실현 불가능한 환상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로또에 당첨되는 상상을 흔히 하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다. <퀴즈쇼>도 그런 대중의 꿈과 상상을 반영했다. <퀴즈쇼>의 주인공 민수는 정체 모를 남자에게 은밀한 제안을 받는다. 남자는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 퀴즈를 풀기만 하면 계약금 1,000만 원을 주고 어마어마한 상금도 주겠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회사는 평범한 직장이 아닌,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기묘한 판타지 같은 세상이었다. 물론 민수도 이 수상한 제안을 의심했지만, 결국은 계약을 하고 만다. 현실에서 아무런 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난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화제가 됐다. <오징어 게임>은 각박한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주인공 성기훈은 빚더미에 올라앉아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일확천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의문의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게임 현장에는 빚에 쫓기는 수백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참가자들은 게임에서 승리하면 총 456억 원의 상금을 주겠다는 제안에 솔깃해한다. 하지만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탈락한 사람들은 총에 맞아 쓰러진다. 기훈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과반수 투표를 진행해 게임을 그만두기로 결정하지만, 거액의 빚 독촉과 암울한 현실에 굴복해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지금 다시, 선택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돌아가서 남은 인생을 빚쟁이들에게 쫓기며 쓰레기처럼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드리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시겠습니까?"
- 드라마 <오징어 게임> 중에서
겉보기엔 선택의 자유가 있는 듯하지만, 막상 당사자 입장에서 실질적인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며, 현실 그 어디에서도 마땅한 돌파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훈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게임보다 더 지옥같은 현실 때문에 다시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퀴즈쇼>와 <오징어 게임>은 미스터리한 환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퀴즈쇼>의 민수는 퀴즈쇼에, <오징어 게임>의 기훈은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다. 2007년 <퀴즈쇼>에서 다루었던 현실이 결국 나아지지 않았으니 2021년 <오징어 게임>으로 새롭게 조명된 셈이다.
각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퀴즈쇼와 서바이벌 게임에서 한결같이 '정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퀴즈쇼>의 민수는 더 빨리, 더 많이 정답을 맞히기 위해 고민하고, <오징어 게임>의 기훈과 주변 인물들은 다음에 어떤 게임이 출제될지, 게임의 함정은 무엇일지 머리를 쥐어짠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랬듯이 미스터리한 환상의 세계에서도 아무런 정답이 없는데, 여전히 그걸 알면서도 답을 찾고자 허우적거린다. 우리는 평생 정답을 맞히도록 학습해왔고 정답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애초에 우리는 현실을 자조할 때마저 "노답이다"라고 되뇌일 만큼 정답에 집착하지 않나. 그러나 비극적인 사실은 그토록 정답을 얻기 위해 애쓰고 경쟁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갖 상상을 다 해봤자 취업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살아 숨쉬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깡그리 잊고 기계처럼 이력서를 찍어냈더니 취업문을 뚫을 수 있었다. 그간 제출했던 이력서를 세어봤더니 108번째에 비로소 합격할 수 있었다. 문득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가 연상됐다. 이 정도는 해야 취업이 되는 거였구나. 그래도 다행이다, 어쨌든 됐으니까!
하지만 취업했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도 1라운드가 끝나면 2라운드가 시작된다. 사회라는 2라운드는 신입사원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또 다른 근심거리를 가져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