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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견디는 일"

by inaro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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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SNS 하다 보니 엄청나게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람을 봤다.

자신을 혐오하고, 살아있는 걸 부정하는 듯한 그런 뉘앙스로 SNS에 글을 올려두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사람의 피드에 가서 선교사라도 되는 듯 좋고 긍정적인 말을 해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냥 모르는 척 지나쳤다.

다만 마음속으로 소망했다. 부디, 저 사람이 저 순간을 잘 지나서 긍정적인 양지로 올라오길 바란다고,


저 모습은 어쩌면, 나의 그림자적인 모습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그런 날이 있다. 내가 그렇게 착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나밖에 모르는 사람 같을 때,

그리고 곁에 사람의 그런 모습을 바라볼 때, 쉽게 토라지고 실망하기도 하고 그런 내 모습이 혐오스러울 때도 있었다.


내가 마음이 가장 위태롭고 힘들 땐, 이상적으로 내가 바라는 모습과 나의 현실적인 모습이 다를 때,

크게 자괴감을 느꼈다. 그럴 땐 정말 무기력하게 세상 다 산 사람처럼 나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고,

누군가를 투영하며 한심하게 바라보며 욕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를 인정해주지 않고 돌보지 않아서 누군가의 그런 모습이 너무 잘 보였구나,라고 언제부턴가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하고 외면하고 살면, 그 그림자에 더더욱 빨려 들어가는 늪 같은 삶을 살게 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그림자는 늘 따라다니는 건데 그것을 미워하고 싫어하며 타인의 그림자를 보고 손가락질하는 게 혐오라는 감정을 만드는 건 아니었을 까,


그리고 난 자기 부정과 고통스러운 어두운 감정은 긍정적인 내가 되기 위해 가는 통로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했더니, 내가 나를 인정하고 조금은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실수를 한다. 그리고 서툴다. 그것을 인정해야 나의 서툰 부분을 개선하고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아이가 자랄 때, 사춘기를 겪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잘 관찰해야 하는 건 아닐까,

내면의 자아가 형성되고 나의 그림자들이 나를 덮칠 때, 그것에 흡수되어 검은색이 되지 않으려면, 아마 곁에서 따스한 보살핌과 사랑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내가 나에게 그런 사랑을 내어주고, 그리고 누군가 겪고 있을 그런 순간들에 다정한 손길을 내어주며

매일매일 우리는 나를 견디고, 타인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들은 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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