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한 가능성에대한 이야기
세상의 끝자락, 시간이 멈춘 듯한 감정의 정원이 있다. 그 정원 가장 깊숙한 곳, 햇빛조차 조심스럽게 스며드는 작은 풀숲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었다.
수천 개의 초록 봉오리들이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어떤 것은 장미가 될 것이고, 어떤 것은 거대한 참나무가 될 것이며, 또 어떤 것은 이름 모를 들꽃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그것을 모른다. 그저 '되어가는 중'일 뿐이다.
그 가운데, 투명한 빛을 내는 작은 정령이 있었다. 무루. 가능성을 사랑하는 아이.
무루의 손끝에서는 따뜻한 금빛 가루가 흘러나와 봉오리들을 어루만졌다. 그 가루는 판단하지 않는 사랑이었고, 기다려주는 믿음이었다. 무루는 매일 아침 그들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 네 시간으로 피어나면 되는 거야."
그러던 어느 회색빛 오후, 울음을 삼킨 채 정원으로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열다섯 살 소녀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고여 있었다.
"저는... 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소녀의 목소리가 바람에 흩어졌다. "친구들은 다 꿈이 있고, 잘하는 것도 있는데... 저는 그냥 텅 빈 것 같아요.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아요."
무루는 소녀의 옆에 조용히 앉았다. 그리고 가장 작은 봉오리 하나를 가리켰다. 다른 봉오리들보다 더 작고, 더 연약해 보이는 그것을.
"저 아이를 봐." 무루의 목소리는 바람처럼 부드러웠다. "쟤는 아직 뭐가 될지 몰라. 꽃이 될지, 나무가 될지, 아니면 전혀 다른 뭔가가 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쟤는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야."
"왜요...?"
"가능성으로 가득하거든. 텅 빈 게 아니라, 무한으로 가득한 거야."
무루는 소녀의 손을 잡고 그 작은 봉오리에 가까이 다가갔다. "들어봐."
소녀가 귀를 기울이자, 봉오리 안에서 아주 작은 심장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이 꿈틀거리는 소리, 가능성이 자라나는 소리였다.
"이게... 제 안에도 있나요?"
무루는 소녀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소녀는 느꼈다. 자신 안에서도 똑같은 박동이 뛰고 있다는 것을. 수많은 가능성들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넌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은 게 아니야." 무루의 눈에서 별빛 같은 눈물이 흘렀다. "넌 지금 가장 아름다운 상태에 있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순간에."
소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이번엔 따뜻했다.
"그럼... 제가 뭘 해도 괜찮을까요? 실패해도, 헤매도, 늦어도?"
무루는 소녀를 꼭 안았다. "괜찮고 말고. 그 모든 게 너를 더 아름답게 만들 거야. 가능성은 완벽하지 않기에 완벽한 거니까."
그날 밤,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 안의 '아직'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건 부족함이 아니라 무한한 열려있음이었다. 절망이 아니라 희망 그 자체였다.
다음 날 아침, 정원에는 새로운 봉오리 하나가 더 생겨나 있었다. 소녀의 마음에서 태어난, 가능성의 봉오리가.
무루는 그 봉오리에게도 속삭였다.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돼. 네 시간으로 피어나면 되는 거야."
오늘의 나는 아직 무엇이 될지 몰라요. 그래서 오히려, 더 기대해도 괜찮아요.
"넌 텅 빈 게 아니야. 무한으로 가득한 거야. 가능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기에 가장 아름다운 거니까." – 가능성의 정령, 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