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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로 쓰는 사람

by inarose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가 있다.



연필은 글씨를 쓰는 데 쓰인다.

그래서 연필은 닳는다. 쓴 만큼 닳고, 닳아서, 나중엔 몽당연필이 되어버린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문장이 될 때마다 조금씩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다.

어쩌면 사랑도 그런 것일지 모른다.

글에도 향기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SNS를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쓴 글을 만나게 된다. 필자마다 지금의 감정 상태가, 언어의 결이 각각 다르다. 어떤 글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희미하게 배어 나오고, 어떤 글은 활화산 같은 뜨거움을 품고 있고, 어떤 글은 갓 피어난 꽃처럼 사랑스러운 생명력을 머금고 있다.

그 모든 글 뒤에는 한 사람이 있다.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있고, 그 순간의 숨결이 있다.

이야기는 소비된다. 이야기에는 사람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진짜 사실과 상관없이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언어로 옮겨지고, 전해지고, 또 전해진다. 아름다운 이야기야 그렇다 치지만, 때로는 그 안의 누군가가 길에 버려진 깡통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럴 때면 마음 한쪽이 시려온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쩌다가 사람을 소비하며 살게 되었을까.

때때로 그럴 때가 있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인데, 진심이나 열정은 어디에도 없고, 오히려 그런 것들이 불필요한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 시스템과 형식만 남아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그런 상태.

나는 그런 곳에 한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이건 우리 모두를 조금씩 메마르게 하는 게 아닐까.

사람은 생명인데. 생명은 본래 자라고, 뻗어나가고, 흐르면서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는 언제부턴가 사람을 '쓰고' 있지 않은가. 화폐는 원래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만든 도구인데, 어느 사이 그 자리가 바뀌어버린 건 아닐까.

요즘 심리학 용어들이 참 많아졌다.

누군가 베풀고 싶어하면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 부르고, 자신감이 조금 넘치면 '자기애성 인격'이라 말하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잠시 물러서면 '회피형 애착'이라 이름 붙인다.

그런데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정말로, 진심으로, 그 사람이 그것일까.

자신을 이해하려고 만든 언어들이, 어느새 서로를 재단하고 가두는 틀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들이, 오히려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도구는 원래 사람을 위해 태어났다.

병명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붙여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해야 돌볼 수 있고, 돌봐야 나아질 수 있으니까. 우리는 모두 조금 더 나은 하루를 살고 싶은 존재들이니까.

사람은 소비재가 아니라, 생명이다.

우리 집 강아지는 매일 산책시키고, 좋은 밥 챙겨주고,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지 살핀다. 작은 생명 하나도 그렇게 소중히 여기면서 왜 우리는 사람에게는 조금 더 쉽게 이름표를 붙이고, 조금 더 쉽게 지나쳐버릴까.



어쩌면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닐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어딘가 지쳐 있고, 어딘가 다쳐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감각이 무뎌지고, 서로를 향한 온기가 희미해져버린 것일지도.


그래서 오늘, 작은 다짐을 해본다.

도구는 쓰고, 사람은 아끼자. 물건은 소비해도, 마음은 소비하지 말자.

우리는 이렇게 편리하고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에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부드럽게 다가갈 수 있기를. 서로를 깎아내리는 언어보다, 서로를 넓혀주는 언어가 더 많아지기를.

연필은 닳으며 글이 되지만, 사람은 다르다. 우리는 함께할수록 닳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자라고 넓어지는 존재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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