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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약과 따뜻한 손

by inarose







어릴 적 나는 기관지가 약해서 할머니 손을 잡고 병원을 자주 찾았다. 쓴 약을 물약에 타서 먹이면 토해내기 일쑤였지만, 그 덕분에 지금은 제법 건강한 몸을 갖게 되었다. 남들보다 더 많은 휴식이 필요한 몸이지만, 그 필요를 알고 인정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흥미로운 건, 주사를 씩씩하게 맞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는 날카로운 칼끝만 봐도 움찔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용기가 두려움으로 역변하는 걸까.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을 우리는 성장을 위해 불편한 피드백을 받아들일 때 자주 인용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약이 치유하는 건 그것이 쓰기 때문이 아니라, 정확한 처방과 적절한 용량, 그리고 환자를 살리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닐까.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날카로운 말들이 비수처럼 꽂힌다. 모두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성장"이라는 명분으로 칼날을 휘두른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보는 것 자체가 피로해졌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했다. 힘은 본래 무언가를 들어올리고,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한 에너지다. 하지만 같은 힘으로 누군가는 남을 일으켜 세우고, 누군가는 남을 찔러 쓰러뜨린다. 같은 지식도 누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한다.


나는 지혜란 "나는 상대의 마음을 모른다"고 인정하는 겸손함이라고 생각한다.


때때로 권위와 역할에 심취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을 100%라 믿으며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본다. 환자의 상태도 보지 않고 교과서대로만 메스를 들이대는 의사처럼, 본질을 잃어버린 채 형식만 남은 처방들. 어쩌면 그것은 피로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말해봐야 알겠나", "진심이 필요 없다"는 왜곡된 마음으로 환자와의 대화를 포기해버린.


하지만 약이 효과를 내려면, 수술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적절하고 온전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진실한 소통. 이것은 병원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거의 모든 곳에 적용되는 원칙이다.


날카로운 메스를 든 사람일수록, 그 칼날이 누구에게 어떻게 닿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 환자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왜 아픈지, 어떤 말을 필요로 하는지. 그런 고민 없이 휘두르는 칼은, 설령 그것이 정확한 지식에 근거했다 해도, 힘의 남용이다.


쓴 약도 물약에 잘 타서 먹이면 아이가 삼킬 수 있다. 날카로운 칼도 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생명을 살리는 메스가 된다. 지식과 지성, 지혜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우리는 좀 더 성숙하고 따뜻한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신뢰를 잃어버려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이런 본질을 더 다정하고 따뜻하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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