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의 추억
*시베리아, 예카테린부르크 공항*
“으… 정말 춥네요.”
강설이 공항 밖으로 나오자마자 몸을 떨었다. 영하 25도의 혹한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
무극이 웃으며 말했다.
“우랄 산맥은 여기서 더 추워.”
“어떻게 100년이나 이런 곳에서 살았어요?”
린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
무극이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점점 추위가 마음을 얼리는 것 같아서 좋았어.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됐거든.”
“슬픈 말이네요.”
강설이 무극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우리가 함께니까.”
무극이 강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 이제는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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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랄 산맥으로 가는 길*
“저기가 내가 살았던 얼음 궁전이야.”
무극이 차 창밖을 가리켰다.
멀리서 거대한 얼음 성이 보였다. 햇빛을 받아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와… 정말 궁전이네요.”
강설이 감탄했다.
“직접 만든 거예요?”
“그래. 100년에 걸쳐서.”
무극이 쓸쓸하게 웃었다.
“혼자 사는 데 필요 이상으로 크게 만들었지. 외로움을 채우려고.”
차가 궁전 앞에 멈췄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웅장했다.
“들어가 볼까?”
무극이 앞장서서 걸었다.
궁전 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내부는 완전히 얼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여기가 응접실이야.”
거대한 홀에는 얼음 왕좌가 놓여 있었다. 무극이 100년간 앉아있던 자리였다.
“저 왕좌에 앉아서 뭘 했어요?”
린이 물었다.
“생각했지.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 어떻게 혼돈을 퍼뜨릴까.”
무극이 왕좌에 다가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냥 외로웠던 것 같아.”
강설이 무극의 등을 바라봤다. 그 넓은 등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무극, 이제 여기서 살지 않죠?”
“당연하지. 이제 이곳은 과거야.”
무극이 돌아서며 미소지었다.
“새로운 미래를 만들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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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전 지하*
“성역은 궁전 지하에 있어.”
무극이 계단을 내려갔다.
“100년간 한 번도 들어가본 적 없지만.”
“왜요?”
“무서웠어. 내 과거와 마주하는 게.”
지하로 내려갈수록 공기가 더욱 차갑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거대한 얼음 문이 나타났다.
“여기가 우랄 성역이야.”
문에는 복잡한 만다라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여는 거죠?”
“프로스트 만다라의 힘으로.”
강설이 손을 문에 댔다. 순간 만다라가 빛나기 시작했다.
문이 천천히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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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내부*
“이건…”
세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거대한 지하 동굴이었지만, 천장에는 수천 개의 얼음 결정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워요.”
강설이 감탄했다.
동굴 중앙에는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큰 만다라가 바닥에 새겨져 있었다. 지름이 30미터는 되어 보였다.
“덴진의 세 번째 만다라…”
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 만다라 중앙에 누군가가 얼어붙어 있었다.
“저건…”
무극이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얼음 속에 갇힌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다.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한복을 입고 있었다.
“누구예요?”
강설이 물었다.
무극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 누나야.”
“누나요?”
“응. 100년 전에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무극이 얼음에 손을 댔다.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때 덴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구나, 무극.”
덴진의 환영이 나타났다.
“덴진!”
무극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왜 내 누나를 여기 가둬둔 거야!”
“가둔 게 아니야.”
덴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보호하고 있었던 거지.”
“무슨 소리야!”
“네 누나는 100년 전, 네가 혼돈에 빠졌을 때 너를 막으려다 치명상을 입었어.”
덴진이 설명했다.
“그때 나는 선택해야 했지. 그녀를 죽게 둘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치유될 때까지 얼려둘 것인가.”
“그래서 여기…?”
“그래. 이 성역의 만다라는 치유의 만다라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고 있었지.”
무극이 무릎을 꿇었다.
“100년이나… 누나는 100년간 여기 혼자…”
“혼자가 아니었어.”
덴진이 말했다.
“내 의식의 일부가 항상 함께 있었어. 그리고 언젠가 네가 변화해서 이곳에 올 거라고 믿었지.”
강설이 무극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제 깨울 수 있을 거예요.”
“어떻게?”
“프로스트 만다라의 치유의 힘으로요.”
강설이 얼음에 다가갔다.
“민혜 선배 동생을 치료했던 것처럼.”
“하지만 100년이나 된 상처를…”
“해볼게요.”
강설이 두 손을 얼음에 댔다.
“린, 무극, 도와주세요.”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했다.
“합성 만다라: 시간을 넘은 치유!”
거대한 만다라가 형성되며 얼음을 감쌌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 퍼져나갔다.
얼음이 천천히 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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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후*
“으음…”
여성이 눈을 떴다.
“여기는… 어디지?”
“누나!”
무극이 달려가 그녀를 껴안았다.
“무극아? 넌… 왜 이렇게 커졌어?”
그녀는 여전히 100년 전 기억에 머물러 있었다.
“누나, 많은 일이 있었어.”
무극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정말 많은 일이…”
“너… 울고 있어?”
누나가 놀라며 무극의 눈물을 닦아줬다.
“우리 무극이가 우는 걸 처음 보네.”
“미안해, 누나. 정말 미안해.”
무극이 고백했다.
“나 때문에 누나가 다쳤잖아. 나 때문에 100년이나…”
“괜찮아.”
누나가 무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내 동생이잖아. 동생 지키는 건 당연한 거야.”
“누나…”
“그리고 보니까 좋은 친구들도 생겼네?”
누나가 강설과 린을 보며 미소지었다.
“너희가 우리 무극이 좀 돌봐줘. 겉으론 세 보이지만 속은 약하거든.”
“네!”
강설과 린이 웃으며 대답했다.
*성역 중앙*
“이제 만다라에 접촉할 차례야.”
덴진이 말했다.
“세 번째 기억을 받아라.”
강설이 만다라 중앙에 섰다.
빛이 그녀를 감싸며 새로운 비전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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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진의 기억 - 우랄 산맥*
젊은 덴진이 눈보라 속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추위를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추위와 하나가 되는 것.”
덴진이 깨달았다.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는 것.”
그가 손을 들어올리자, 눈보라가 아름다운 만다라 형태로 변했다.
“자연과의 조화. 이것이 세 번째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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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강설이 눈을 떴다.
“자연과의 조화…”
그녀가 손을 들어올리자, 성역 전체의 얼음 결정들이 반응했다. 천장의 별 같은 빛들이 하나의 거대한 만다라를 형성했다.
“성공했어!”
린이 감탄했다.
“세 번째 성역 완료야!”
무극의 누나가 놀라며 바라봤다.
“저 아이가 프로스트 만다라의 계승자구나.”
“응, 누나.”
무극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내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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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얼음 궁전*
“이제 이 궁전을 어떻게 할 거예요?”
강설이 물었다.
“부숴버릴까 생각했어.”
무극이 대답했다.
“과거의 상징이니까.”
“안 돼!”
누나가 말했다.
“여기는 네 역사야. 부수면 안 돼.”
“하지만…”
“대신 바꾸면 어때?”
강설이 제안했다.
“어둠의 궁전이 아니라, 빛의 궁전으로.”
“빛의 궁전?”
“네. 설화회 시베리아 지부로 쓰는 거예요.”
린이 좋은 생각이라며 동의했다.
“혼돈의 상징이었던 곳을 조화의 상징으로 바꾸는 거지.”
무극이 생각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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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후, 개조된 얼음 궁전*
검은 얼음이었던 궁전이 투명한 수정 궁전으로 변했다. 강설과 무극이 함께 조화 만다라를 사용한 결과였다.
“아름답다.”
무극의 누나가 감탄했다.
“이제 진짜 새로운 시작이네.”
“누나는 뭐 할 거야?”
무극이 물었다.
“나? 당연히 너랑 함께 설화회 활동하지.”
누나가 웃었다.
“100년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세상을 지키는 일을 해야지.”
“고마워,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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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으로 가는 차 안*
“다음은 어디예요?”
강설이 물었다.
“페루의 안데스 산맥이야.”
린이 지도를 보며 대답했다.
“다섯 번째 성역.”
“점점 끝이 보이네요.”
“그래. 이제 절반 넘게 왔어.”
무극이 말했다.
“하지만 남은 성역들이 더 어려울 거야.”
“괜찮아요.”
강설이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 함께니까.”
세 사람이 손을 맞잡았다.
창밖으로 수정처럼 빛나는 궁전이 점점 멀어졌다.
과거의 어둠이 빛으로 변한 것처럼, 앞으로도 모든 어둠을 빛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