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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싫어할 권리"

by inarose




나는 어릴 때 거절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릴 때 나의 가정환경은 나의 의견을 존중해 주거나 우선시해주기보다는, 주변 어른들의 주입식 교육이나

감정적 강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올바르지 않은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자라오면서 NO라고 이야기하는데 굉장한 내적 불편함을 겪어야 했고,

마음은 "NO"라고 이야기하면서 겉으로는 "YES"라고 대답했을 때 후에 내가 겪어야 하는 수동적인 불편함,

나와 세상과의 불협화음을 반복적으로 겪어야 했다.




이걸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 건 연애상황이었다.

사랑을 하고 좋아하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좋아하고, 상대에게 배려하고 맞춰주는 게 옳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행동이 반복됐을 때 생겨나는 문제점은 상대방은 나의 배려나 희생을 모른다, 그리고 나의 색이 흐려지고 관계는 동등하고 건강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닌, 상대에게 끌려가는 형태의 관계가 된다.

결과적으로, 나도 상대에게도 만족스럽지 않은 관계가 되는 결과로 돌아왔다.


반대로 성인이 되고 나서 "미움받을 용기" , "나다움" 이 중요시되는 시대로 변화되어 가고, 나의 자아형성이 되어가고, 내 주관과 내 소신에 대한 믿음이 생길 때쯤, 이성을 만날 때 굉장히 불편해지는 부분이 있었다. 무언가 의사결정을 할 때 우유부단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는 의뭉스러운 태도가 신뢰감형성에 굉장히 좋지 않고, 이성적 끌림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나 스스로도 느껴왔다.

그래서 나는 상대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표현하길 요구했고, 나는 상대와 동등한 관계가 되길 원했기 때문에 상대의 취향을 찾아주는 시간을 필요이상으로 보내야 하기도 했다.


최근에 느끼는 건, NO라는 거절의 의사표현은 나 그리고 상대에게도 정말 필요하고 중요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물론 거칠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게 중요 포인트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상대에게 불편하지 않게 거절을 할 수 있고, 그런 관계는 다음에도 이어갈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이 있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사실 세모, 즉 회색빛 중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세모를 좋아하거나, 중간만 가자는 사람들을 만날 때 왜 그렇게 해야 할 까?라는 의문점이 들었지만, 조직문화에 맞춰가는 게 익숙하거나,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어렵고 불편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나에 대한 이해와 나와 타인과의 원활한 관계형성, 그리고 세상과의 이해관계에서도 NO 가 더 많아지고 명확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더 나다운 YES가 단순해지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나다움, 이란 내가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며, 나는 어떤 상황에 불편함을 느끼는 것인지 이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야, 타인에게 나를 이해시키고 나 또한 타인을 이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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