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왜인지 생각해 보니, 나는 싫어도 내색하지 않고
어린아이가 낼 법한 생떼이나 투정 같은 걸 부리지 않았다. 특히나 어른들이 싫어할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참고 속으로 삭여 내 어른스럽다는 말로 위안을 삼았던 것 같다.
나는 K 장녀다. 외가의 첫째 딸인 엄마가 나를 첫째 딸로 낳았으니, 큰 딸이고, 우리 집안에서는 첫 조카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부모님이랑 살지 않는 아이, 외할머니랑 사는 아니 가정환경 때문에 나 자신의 가치를 함부로 가치절하하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모범적으로 행동하려고 애쓰고 지냈다.
더 어른스러운 것처럼 대범하게 행동하고, 친구들에게 더 배려하고 사람들을 만나면 더 밝게 웃었으며,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나는 대인배가 되는 줄 알았다.
20대부터 만난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별명은 이모, 언니 등등이었는데 나를 만났던 사람들은 요즘 사람답지 않게 성숙하고 어른스럽다고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진실은 생각보다 잔인하다고 했던 가, 나는 어른스럽지 않다. 다만 나는 할머니가 키워주신 우리 가정환경이 부끄럽지 않은데, 누군가 함부로 외할머니의 가정교육을 욕할까 봐, 그 걸로 인해 사회에서 눈치 보며 사는 것이 싫어서 더 어른스러운 척을 하며 지냈다. 내가 그랬다는 걸 알게 된 건 연애하면서였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누구나 어린아이가 된다고 했던 가,
친아빠의 부재 때문인지 나는 연상의 사람을 좋아했었다. 내심 성숙하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어른남자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20년이라는 시간을 어른스러운 사람의 프레임을 스스로 자처하며 살아온 행동이나 습관은
사랑하는 사람을 더욱더 어린아이로 만들기 충분했나 보다.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책임감 있는 태도, 깊은 생각, 그리고 배려심 있는 행동을 사랑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는지 어느 세 보면 내게 그 사람의 짐이 한 개 두 개 짊어져 있었다. 나는 사랑이라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숨이 막혀오고 이런 프레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란 사람 존재 자체로서 사랑받고 싶어 진 것이다.
나는 사실 어른스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개구쟁이이고, 눈물이 많고 여리고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평범한 사람이다. 힘들 땐 누가 내게 어깨를 빌려주었으면 좋겠고 지친 날은 누군가의 품에 안겨 한 없이 울어도 괜찮다고 등을 토닥거려 주었으면 좋겠는 그런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30년 남짓한 시간을 살아오면서 느낀 게 하나 있다. 어른이라는 프레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어른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것은 그저 자기가 지지 않을 책임감을 상대에게 지려는 이기심이라는 걸,
그리고 나이가 어른을 말하지 않고, 경제적 능력이 어른을 말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고 삶에서 행동하려 했던 어른으로 서의 태도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내 마음이 아픈 만큼 상대의 마음이 아플 거라는 생각을 하고, 진정으로 상대의 행복을 바랄 수 있는 사랑을 지닌 포근함과 온유함이었다.
사회에서 점점 어른이 사라져 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SNS를 하다 보면 어른을 찾고 어떤 게 어른의 행동인지 역사에서, 철학책에서, 언론 매체에서 다양하게 찾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른은 어디에서 누가 먼저 되는 존재가 아니다. 어른으로서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는 내 모습에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 행동하는 이타심에서 드러나고 그런 행동을 사회는 어른이라 칭할 것이다.
나는 어른스럽지 않다. 그낭 나는 때로는 약하고 기대고 싶고 슬픈 날은 간신히 하루의 끝을 붙잡고 있는 나라는 한 사람일 뿐이다. 이제는, 이제는 그런 존재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관계를 맺어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