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온실 밖의 바람

ㅡ은의 이야기

by 시더로즈







셀리의 꽃을 본 날, 은은 울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았다. 화분 위에서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어떤 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아침과 저녁이 동시에 담긴 것 같은, 비 갠 뒤 하늘과 비 오는 중의 하늘이 함께 있는 것 같은. 지금까지 본 어떤 꽃과도 달랐다. 하지만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이 색은 은이 아는 색이었다. 은이 흘린 눈물과, 은이 지은 웃음과, 은이 삼킨 말들이 만들어낸 색.


은은 화분 앞에 무릎을 꿇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울었다. 슬퍼서가 아니었다. 자기가 쏟아낸 것들이 이런 형태로 돌아온 것에 대한, 이름 붙이기 어려운 벅참 때문이었다.


“예쁘다, 셀리.”


은이 속삭였다. 셀리의 꽃잎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바람이 아니었다. 온실 안에는 바람이 없었다. 그것은 셀리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은은 매일 온실을 찾았다.


퇴근길이 아니라도. 주말 아침에도. 때로는 점심시간에 회사를 빠져나와서도. 골목은 은이 원할 때면 거의 늘 나타났고, 온실은 은이 필요로 하는 계절로 은을 맞았다.


셀리는 계속 자랐다. 꽃 옆에 새 봉오리가 올라왔고, 줄기는 화분 밖으로 넝쿨처럼 뻗기 시작했다. 잎은 열두 장이 넘었다. 은이 올 때마다 셀리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고, 은은 그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졌다.


하지만 따뜻해질수록, 은의 안에서 무언가가 불안하게 움직였다.


은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깨달은 것은 토요일 오후였다.


은은 온실에서 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셀리의 잎을 쓰다듬고, 온실의 풀들을 구경하고, 유리벽에 기대어 책을 읽었다. 바깥 세상의 소음이 없는 이곳에서 은은 완전히 편안했다. 형광등 소리도, 키보드 소리도, 누군가의 시선도 없는 이 투명한 상자 안에서.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나는 여기 너무 오래 있는 게 아닐까.


은은 온실 밖을 생각해보았다. 최근 은의 일상이 어떤지를. 수진에게 답장은 했지만 만나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는 최소한의 대화만 하고, 점심은 혼자 먹었다. 예전에 가끔 가던 서점도, 산책하던 공원도 가지 않았다. 은의 하루는 점점 단순해지고 있었다.

회사 — 온실 — 집. 회사 — 온실 — 집.


온실이 세상의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은은 유리벽 너머를 보았다. 온실 밖에는 골목이 있고, 골목 밖에는 거리가 있고, 거리 위에는 세상이 있었다. 시끄럽고, 아프고, 너무 많은 것이 느껴지는 세상.


하지만 그래도 세상.


은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갑자기 선명하게 보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세상을 줄이고 있었다. 안전한 곳만 남기고 나머지를 잘라내고 있었다. 온실은 아름다웠지만, 온실만으로 살 수는 없었다. 여기서는 비도 맞고 봄도 살 수 있지만, 버스를 타거나, 커피를 사거나,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거나, 실수를 하거나, 용서를 구하거나 살아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들은 할 수 없었다.


은은 셀리를 보았다.


셀리는 화분 안에서 행복해 보였다. 꽃이 피어 있고, 잎이 무성하고, 뿌리가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셀리도 화분 안에만 있었다. 넝쿨이 밖으로 뻗어나가려 하지만, 결국 탁자 위에서 멈춰 있었다. 온실 바닥의 흙에까지는 닿지 못하고.


“나도 그래. 너도 그래.”


은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 둘 다 여기가 너무 편해서 갇혀 있는 거야.”



그날 밤 은은 오래 생각했다.


온실을 떠나야 할까. 이 골목을 더 이상 찾지 말아야 할까. 그것이 건강한 선택일까. 현실로 돌아가서, 사람들 틈에서, 아프더라도 부딪히며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수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환상,

지친 상태에서 보는 환상.


혹시 수진이 옳았던 걸까. 은은 현실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칠 곳을 만들어낸 것일까. 셀리는 은이 만들어낸 위안이고, 온실은 은이 지은 피난처이고, 이 모든 것은 은이 세상을 감당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일까.


은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원룸의 하얀 천장. 유리온실의 이슬빛 천장과는 다른, 아무것도 내려앉지 않는 천장.


창가의 컵에 담긴 물이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였다.


은은 그 반짝임을 보며 생각했다. 온실이 환상이든 아니든, 셀리가 진짜이든 아니든, 그곳에서 느낀 것들은 진짜였다고. 울어도 괜찮다고 느낀 것. 내 슬픔이 누군가를 키울 수 있다고 느낀 것. 금이 가도 빛이 들 수 있다고 느낀 것. 모든 계절에 자라는 것이 있다고 느낀 것.


그것들이 온실 안에서만 진짜인 걸까.


아니면 바깥에서도 진짜일 수 있는 걸까.



다음 날 은은 퇴근 후 온실에 가지 않았다.


대신 수진에게 전화했다.


“수진아, 우리 밥 먹자.”


전화기 너머로 수진이 잠깐 놀란 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어, 좋아. 뭐 먹을래?”


“아무거나. 네가 골라.”


전화를 끊고 은은 거리에 섰다. 퇴근 시간의 거리. 사람들, 소음, 차 소리,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통화. 그 모든 것이 은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전처럼.


하지만 은은 이어폰을 꺼내지 않았다.


시끄러웠다. 아팠다. 너무 많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걸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세탁소 앞을 지나며 골목 쪽을 흘끗 보았다. 틈이 보였다.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은은 멈칫했다.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고 걸었다. 수진이 기다리는 쪽으로.


걸으면서 은은 가슴 안쪽에 손을 대보았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코트 위로 가슴에 손을 얹었다.


거기에 온실의 온도가 남아 있었다.


축축하고, 따뜻하고, 조용한 공기. 유리온실이 은의 안에 있었다.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의 가슴 안쪽에, 아주 작은 온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셀리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은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시끄러운 거리 위에서, 가슴 안의 온실을 안고, 바깥 세상을 향해 걸었다.





다음 화 — 「나만의 정원」 셀리와 은의 이야기



“온실은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