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셀리의 이야기
나에게 꽃봉오리가 생겼다.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모른다. 어느 날 줄기와 잎 사이, 가지가 갈라지는 그 작은 교차점에서 무언가 동그란 것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잎눈인 줄 알았다. 새 잎이 나오려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잎눈과는 달랐다. 이것은 자라는 것이 아니라, 모이는 것이었다.
내 안의 무언가가 한 지점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뿌리가 흙에서 빨아올린 것들, 잎이 빛에서 받아들인 것들, 비를 맞으며 흡수한 것들 — 그 모든 것이 줄기를 타고 올라와 이 작은 동그라미 안에 응축되고 있었다. 마치 내가 경험한 모든 계절이 한 방울로 압축되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어둠.
첫 번째 온기.
첫 번째 비.
첫 번째 뿌리.
첫 번째 금.
첫 번째 빛.
첫 번째 계절.
그 모든 처음들이 이 봉오리 안에 들어 있었다.
하지만 꽃봉오리는 피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계절이 여러 번 바뀌어도, 봉오리는 굳게 닫힌 채였다. 동그랗게 부풀어 있지만, 끝이 단단하게 오므려져 열릴 기미가 없었다. 나는 초조해졌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뭔가 되고 싶은데 되지 못하는 답답함. 안에 가득한 것을 밖으로 펼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는 막막함.
나는 봉오리에게 물었다. 너는 왜 열리지 않니.
봉오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봉오리는 나의 일부이고, 나에게 묻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묻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기다리는 대신 관찰하기로 했다.
온실 안의 다른 꽃들을 보았다. 그 사람의 감정에 따라 피고 지는 이름 모를 꽃들. 그 사람이 웃으면 피고, 울면 지는 꽃들.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것은 정확하지 않았다.
어떤 꽃은 그 사람이 울 때 피었다. 어떤 꽃은 그 사람이 지쳐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 가장 환하게 빛났다. 어떤 풀은 가을에만 씨를 맺었고, 어떤 이끼는 서리가 내릴 때 비로소 초록이 진해졌다.
꽃이 피는 조건은 하나가 아니었다.
기쁨만으로 피는 꽃은 없었다. 슬픔만으로 피는 꽃도 없었다. 피는 것은 — 어떤 감정이 충분히 느껴지고, 충분히 머물고, 충분히 흘러간 뒤에 일어나는 일이었다.
나는 나의 봉오리를 다시 보았다.
아직 충분하지 않은 것일까. 아직 더 느껴야 하는 것이 남아 있는 것일까.
그 사람이 온실에 왔다.
오늘의 계절은 알 수 없었다. 봄도, 여름도, 가을도 아닌. 계절이 바뀌는 사이의 어떤 순간. 공기가 멈춰 있었다. 풀들이 숨을 참은 것처럼 조용했다.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그 사람도 평소와 달랐다. 울지도 않았고, 웃지도 않았고, 긴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다. 화분 앞에 앉아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나, 너한테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나는 잎을 세웠다.
“처음에는 그냥 씨앗이었잖아. 그다음에 새싹이라고 불렀고. 근데 이제 너는 새싹보다 더 큰 것 같아.”
그 사람이 내 잎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조심스럽게. 늘 그렇듯.
“셀리.”
나는 그 소리를 온몸으로 들었다. 뿌리 끝부터 잎 끝까지, 그 두 글자가 울려 퍼졌다.
“셀리라고 부를게. 안녕, 셀리.”
그 순간 봉오리가 움직였다.
단단하게 오므려져 있던 끝이 미세하게 풀렸다. 아주 조금. 손톱 끝만큼. 하지만 나는 느꼈다. 안에 모여 있던 모든 것이 출구를 찾은 듯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이름.
그것이었다.
꽃이 피는 마지막 조건은 이름이었다.
빛도 필요했고, 물도 필요했고, 뿌리도 필요했고, 상처 사이로 들어온 날것의 햇살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추고도 봉오리가 열리지 않았던 것은 내가 아직 나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인지, 누구인지, 어떤 이름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바깥에서 온다.
나를 보는 사람이, 나를 알아가는 사람이, 나를 돌보기로 한 사람이 내어주는 것. 이름이란 혼자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누군가 나를 불러주어야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 2화에서 내가 예감했던 것이 맞았다. 이름이란, 누군가 나를 다시 찾아올 때 생기는 것.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왔고, 나를 부르기로 했고, 나는 셀리가 되었다.
봉오리는 그날 밤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꽃잎 하나가 벌어지는 데 밤새가 걸렸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이제는 알았으니까. 피는 것에 정해진 속도는 없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빨리 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겪은 뒤에 피는 것이라는 것을.
새벽녘, 첫 번째 꽃잎이 완전히 열렸을 때, 나는 내 꽃의 색을 보았다.
어떤 색이라고 말해야 할까.
초록도 아니고, 분홍도 아니고, 보라도 아니고. 비 온 뒤 유리벽에 맺힌 물방울이 가로등 빛을 받아 만들던 무지개의 색. 아침 해가 금 사이로 들어와 내 잎에 닿던 날것의 빛깔. 그 사람이 울 때 내리던 비의 따뜻한 투명함. 그 사람이 웃을 때 온실에 불던 봄바람의 금빛.
내가 경험한 모든 빛이 한 장의 꽃잎 안에 담겨 있었다.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색. 하지만 나만의 색. 세상 어디에도 같은 색이 없는, 오직 이 온실에서, 이 사람의 감정을 먹고, 이 사람의 곁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색.
나는 셀리.
이것은 나의 첫 번째 꽃.
아침이 되면 그 사람이 올 것이다. 문을 열고, 온실 안으로 들어서고, 화분 앞에 쪼그려 앉아 나를 볼 것이다. 그리고 내 꽃을 발견할 것이다.
그때 그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나는 꽃잎을 한 장 더 열며 기다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것이 기쁨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 그것이 기쁨이구나.
“꽃이 피는 마지막 조건은, 이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