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계란이야"
계란을 좋아한다. 만만한 음식이기도 하고, 다이어트에도 좋고,
내가 유치원생 때 막내이모한테 가장 처음 배웠던 요리도 "계란 프라이"였다.
프라이팬 위에 기름을 두르고 톡 깨서 자글자글 익히고, 개인의 취향에 따라 노른자를 터트리거나 반숙으로 먹을 수도 있다.
최근에 재미있는 글귀하나를 봤다. 달걀은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되고, 남이 깨면 계란 프라이가 된다.
"성장"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는 어떤 현상에 대한 의미를 늘 생각하는 편이다.
인간은 성장하지 못하면, 달걀 속에 남은 분리된 흰자와 노른자로 남아서 남에 의해 깨서 사용된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이건 한편으로는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슬프고 무서운 이야기이다.
요즘 이슈화 되고 있는 말이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다.
좋게 말하면 주입식 교육이고, 나쁘게 말하면 세뇌인데 내가 보기엔 이 둘의 말이 비슷해 보인다.
다만, 스스로 이걸 판단할 수 있는 인지능력이 어디까지이고, 나는 어떤 현상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가 한 개인을 만들어가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만들어지는 존재다. 엄마와 아빠가 만나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체가 영양분을 흡수해 성장하고 세상밖에 나와서 부모의 보살핌과 환경의 영향을 받아 개인으로 성장하고 사회에 나와 나의 역할을 찾아가고,
또다시 그 인간이 새로운 인간을 창조하고, 그 인간의 성장 범위에 따라 후대에도 그 영향이 미친다.
저출산의 시대라고 한다. 자본주의 시대이다 보니,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애를 안 낳다는 다고 하면서 국가의 시스템이나 사회의 문제로 돌리는 부분이 있는데, 나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게 한 사람이 병아리가 되기보다는 계란프라이를 택하는 편을 더 선호해서라는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나는 고집이 센 편이다. 때로는 이런 성향이 주변인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상황도 있고,
스스로가 답답하게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이대로가 아니라, 이 세계를 깨고 나가 스스로 병아리가 되는 삶을 원한다.
나는 왜 이럴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성공"만을 원했을 땐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고 싶다고 생각한 적 도 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진 게 나는 내가 되기 위해 사는 것 같다.
병아리가 돼야 닭이 되고 알을 낳을 테니까, 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
삶은 계란이다. 다만, 병아리가 될 것인가, 계란 프라이가 될 것인가 재미있는 생각을 해봄직한 것 같다.
뭐가 더 낫다고 우위를 정할 수는 없다. 어떤 선택을 하든 장단점이 있을 테고,
그런 선택이 모여서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일 테니까,
깊고도 심오한, 또 한편으로는 깃털처럼 가벼워질 수도 있는 존재의 이유를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