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확행 Nov 13. 2023

다정한 쏘작가의 어느 바쁜 토요일

2028년 11월 11일 토요일_Ep. 1 하와이엔 가지 못했지만

웨스트 59번가 쪽 창가에 선다. 객실 창가에 서니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야말로 만추다. 저 멀리 쉽 미도우가 보인다. 2016년. 세 살, 다섯 살이던 아이들과 배꼽이 찢어지도록 깔깔거리며 술래잡기를 하던 그 너른 풀밭. 가을의 끝자락이지만 쉽 미도우의 초록잔디 양탄자는 푸르기만 하다.

 


띠리릭.
짐에 가서 뛰었더니 좀 낫네.”

운동을 하고 들어온 남 얼굴이 발그스레하다. 

아침은 샐러드랑 주스만 좀 먹어야겠다. 나 오늘 바빠. 글쓰기 모임.”

남편은 키카드를 들며 나에게 묻는다.  

작업실에 계시는 작가님이랑은 언제 만나기로 했어? 가는 길에 작업실에 데려다줘?”

아니. 모마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 당신은 당신 일정대로 움직이면 돼. 저녁 10시 반에 모임 끝날 거야. 우버 타고 같이 집에 가.





호텔을 나와 얼마 가지 않아 벌써 가을 작가가 보인다. 이 정도 친해졌으면 방방 뛰며 손이라도 크게 저어줄하나 그녀는 여전히 목례건넨다. 나도 질세라 급히 가던 5번가 한복판에 멈춰 서서 90도 배꼽인사를 건넨다. 웃음을 참지 못해 하늘로 들린 그녀의 날렵한 턱이 드러난다. 그녀는 분명히 알고 있다. 그녀의 매력포인트를.


 

“왜 여기까지 올라와? 거기서 기다리지. 힘들지 않았어?”

쏘. 이래! 저 작업실에서 센트럴 파크 입구까지 컷에 러닝 하는 사람이에요.” 

2.3마일. 3.7킬로미터 정도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가뿐하게 뛰어다닌다는 그녀의 표정에서 귀여운 뿌듯함이 묻어 나온다.  



그녀는 나를 쏘라고 부른다. 처음 났을 때는 서로 필명에다 작가님이라고 깍듯하게 부르는 사이였다. 하지만 마음거리가 줄어들고, 함께 마음을 나눈 시간이 길어지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결국 애칭이 되지 않던가. 나는 그녀에게 ‘소확행 작가님’에서 ‘소 작가’,  대표’라고 불리더니 결국 음절만 남았다. 그것이 내 별명이 되어 몇몇 사람들이 나를 ‘쏘’라고 부른다. 내 성은 ‘민’인데, 내가 정말 ‘소’씨인 줄 아는 사람도 몇몇 있다.

  





글 다 썼어?”

눼눼. 힘없는 단기 세입자가 집주인님의 명을 감거역하겠나이까”

“그럼. 2기는 공짜로 쓰는 거니깐. 글이 방 값이야”

"스승님께서 말씀하셨지. 앉았다 일어난 곳에 글이 있게 하라.하하!"



작업실이라고 른 그곳. 이스트 14번가에 위치한 적당한 크기의 스튜디오 형 아파트. 나뿐만 아니라 슬초 브런치 멤버들이 사용하는 공유 작업실이다. 처음에는 투자용으로 구입해서 에어비앤비로 돌리려고 했는데, 지인들에게 먼저 빌려주다 보니 굳이 다른 숙소 예약 플랫폼에 올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사용자의 80퍼센트 정도가 슬블 멤버들이다.

 

@apartments.com


내년 여름까지 풀 부킹이다. 다들 돈이 없어서 호텔에 못 묵는 사람들도 아닌데, 뉴욕에 오면 그들은 작업실에서 머문다. 이제 우리는 관광객의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여행이 취재고, 여행이 공부이다. 그곳은 그들‘뉴욕 이며 ‘맨해튼 작업실이다. 읽다만 책을 책꽂이에 두고 가면, 다음 작가가 와서 그 책을 집어 들고 가고 본인의 책을 두고 간다. 작업실의 책장은 오묘한 사이클로 자가 프랜스포밍을 거듭한다.

 



“나 오늘 모마에서 하루종일 있을 거야. 그림 보다가 지치면 먼저 가요. 

가을 작가는 뉴욕현대미술관 죽순이다. 들어가면 나올 생각을 안 한다. 같이 그림 보러 가는 사람신경 쓸 겨를이 없다.

안 그래도 희나 작가님 픽업하러 공항 가야 해. 천천히 보고 점심 잘 챙겨 먹고 5시 반까지 작업실 와”

나 드디어 희나 작가님 만나는 거야? 처음 뵙는데. 5기라고 하셨죠? 

“응. 희나 작가님 글 너무 많이 읽어서 나 혼자 내적 친밀감 만땅.”

어느새 뉴욕현대미술관 앞이다. 가을 작가 머리 위에 기대감이 뭉게뭉게 피어난다.   

 

 

주머니 속에 휴대폰이 울린다. 수아 작가님 메시지다. 보스턴 취재가 끝났나 보다. 

저녁 520분 도예정. 작업실로 가면 되죠?”

 이라 쓰고 물결 표시를 달려는 순간 다시 동이 울린다. 전시실을 나와서 복도에서 전화를 받는다.

쏘! 우리 하와이 못 갔지만 여기서라도 드레스 코드 맞춰야 하는 거 아니야? 파란색 블링블링 목도리라도 사갈까?”

“네 언니! 불 깜빡깜빡 들어오는 파란 네온 선글라스 것도 재밌겠네요 

“알았어. 렌터카 반납하고 작업실로 갈게”

파란색 네온 선글라스파란 반짝이 긴 목도리를 멋스럽게 두르고 작업실로 들어설 수아 작가님의 모습이 벌써 그려진다.

 

 




어제 새벽부터 카톡에 올라오던 하와이 모임 사진이 잠잠해지니 이제 브런치 글 알람이 무섭게 울린다. 그렇게 놀고도 그걸 글로 써재끼는 무서운 사람들. 수십 장의 화려한 사진 동기 작가들이 글들을 이길 순 없지. 이 글을 또 언제 다 읽나 행복한 숙제를 안고 구글맵 목적지를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으로 입력한 후 시동을 건다. 맨해튼 모임을 위해서.

 

(2부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11월. 너 의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