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가을과 겨울을 오가는 달. 오후 3시 그늘이 짙게 드리워지는 달. 주말을 제외하고는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는 팍팍한 달.
바로 11월입니다.
11월을 하면 왠지 쓸쓸하고 스산한 기운이 먼저 떠오르지만,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응원과 격려가 가득 차며, 죽어가는 것을 살려내는 ‘반전 매력이 가득한’ 달입니다.
11월은 우리 만 3세 꼬꼬마 친구들이 유치원에 가기 위해 준비하는 달입니다. 10월 말 유치원 입학 설명회가 끝나면 11월 <처음학교로> 누리집으로 지원서를 제출합니다.저는 옛날 엄마라, 유치원마다 방문해서 원서를 제출하고 추첨일에 이 유치원저 유치원으로 바쁘게 쫓아다녔습니다. 늦은 밤까지 유치원 안내 팸플릿을 식탁 위에 펼쳐두고, 제 대입요강만큼이나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나네요. 선배 언니님들은 유치원 입학이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였던 시절이라, 새벽부터 유치원 앞에 진을 쳐가며 오픈런을 불사했다 합니다.
@유치원 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
우리 6학년 최고 누나 형아들도 중학교 입학 원서를 씁니다. 학교를 주름잡는 6학년의 위엄과 허세는 잠시 접어두고, 집 근처 중학교에 다니는 선배님들을겸손한 자세로 유심히 관찰합니다. 어느 학교 급식이 맛있는지, 학교 동아리 활동은 뭐가 있는지, 활동복 디자인은 어떤지, 어느 학교가 시험을 어렵게 내는지, 모든 관심사가 중학 라이프로 집중됩니다.분위기만 봐서는 벌써 중학교 0학년입니다. 잠들기 전,근래에 보기 힘든 간절한 기도가 하늘에 계시는 그분께올려집니다.
‘제발 원하는 중학교에 꼭 배정되게 해 주세요!’
‘간절한 기도’의 주인공은 또 있습니다. 수능을 앞둔 수험생과 가족들입니다. 요즘은 고등학교 3년 내내 입시 시즌이지만, 그래도 수능이라는 큰 시험의 부담감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11월 1일이 되자 어김없이 동네 빵집에는합격을 부르는 찹쌀떡 광고 포스터가 붙습니다. 횡단보도 옆 현수막 게시대와가로수에는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현수막이 걸립니다.시장, 지역구 국회의원,공천을 간절히 바라는 정치인들, 그리고존재감 없던 시의회의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속내를 훤히 드러내는 기회주의자들의 영혼 없는 손짓'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지만, 응원의 메시지는 진심이리라 애써 셀프 가스라이팅을 해봅니다.
대학입학시험을 위해온 나라의 시계가 '오직 응시생들을 위해 돌아가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지요.출근시간도, 수험장 근처 공사장 작업 시간도, 비행기 이착륙 시간도 모두 그들의 시간에 맞춰 움직입니다. 누구에게는참 유난스러운 해외토픽감일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12년 혹은 더 긴 시간 동안애쓰고 노력한 그들의 시간에 대한 ’ 예의‘를 갖추는 건 아닐까요? 우리 모두가 시험장에서 고군분투 하고있을 그들의 가족이자이웃이기에 이렇게 따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unsplash
11월은 의외로 희망이 넘치는 달입니다. 내년 다이어리와 달력이 쏟아져 나오는 시즌이니깐요.스타벅스에서는 소장욕구를 내뿜는 다이어리를 출시하여 고객들을 매장으로 끌어드립니다. 그 때문에 누구는 마시지도 않을 커피를 수십 잔 시켜놓고 다이어리만달랑 들고 갔다가 온라인상에서‘익명의 구설수 주인공’이 되기도 합니다.
@스타벅스 코리아
꽤 많은 다이어리들이 올해 11월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것 보니, 망한 것 같은 올해의 다짐들을 새 다이어리에 다시 쓰고, 남은 시간들로심폐소생 시키고 싶은 간절함을 담아내는 것 같습니다.
오늘을 기준으로 내년 1월 1일까지 52일이 남았습니다. 12월 25일과 31일빼고 딱 50일. 뭔가 해보기에 충분하면서 부담스럽지 기간입니다.7주동안 ‘망해 자빠져버린 어떤 것’을 다시 일으켜세워 보기도 하고, ‘더 이상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어떤 것’을 시작하기도좋을 것 같습니다.하다가 또 망하면감사하게도 금방 새해가 오니 다시 시작하면 되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