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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확행 Jul 19. 2024

아버지와 병원을 함께 간다는 건

다행스러우면서도 쓸쓸한 일

"거봐라. 내가 별 다른 방법이 없다 했제?"

"저도 알아요."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남편에게 이제 가자는 신호로 고개만 까딱했다.




아버지는 폐 섬유증을 앓고 계신다. 폐 조직이 딱딱해지는 병. 폐가 굳어지는 증상을 완전히 멈추게 하거나 호전시킬 수 있는 치료제가 없다. 진단을 받으신 지 10년이 다 되어 간다.



재작년. 코로나에 걸리신 이후부터는 아버지의 동선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방학 때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러 오시면, 간식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뒷산에 가셨다. 동네 체육공원에 가서 같이 공도 차주셨는데 최근 사이에는 산에 가자, 공차자 말씀이 없으시다.



몸은 괜찮으시냐 여쭤보면 늘 괜찮다 하셨는데, 이제는 예전에 비해서 숨 쉬는 것도 더 힘이 들고 기침도 자주 난다 말씀하신다. 어지간한 건 참고 넘기시는 우리 집안의 <인내의 아이콘>인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난 아닌 척하면서도 마음이 덜컥 덜컥 내려앉는다. 



친정 근처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진료받으시고, 복용하시는 약도 다행히 큰 부작용 없이 잘 드시고 계신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면 담당 교수님께서 친절하고 꼼꼼하게 진료해 주시는 것 같다. 당장에 치료법은 없지만 아버지께서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 컨디션 조절도 잘하고 계시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라고 외면(?!)하고 있던 나는 뒤늦게나마 서울 큰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작년 가을부터 유난을 떨고 있다.


할 것도 참 많은 대학병원. 이 정도면 심플하다.

지난 11월. 우리 집 주방에서 저 멀리 보이는 대학병원에서도, 이번 달 초에 다녀온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같은 이야기다.



병력에 비해서 관리를 잘하고 계시는 편이나, 이제는 조금씩 더 힘들어지실 거다. 폐이식 수술을 권하기에는 연세가 많다.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과 유사한 기능이 있는 약이 있으나 부작용이 있을 있고, 의료보험 처리가 안되어 약값이 지금의 10배가 넘는다.

결론은 지금처럼 관리하시는 게 베스트라는 거다.

아버지 옆에 보호자로 함께 앉아 있는 병원 의자는 늘 불편하다.


얼마 전. 친구 아버지께서 우리 아버지와 같은 병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그 일이 남의 집 머나먼 일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있다. 7년 전. 우리가 미국에 잠시 가 있었을 때, 미친 듯이 같이 여행하지 않았다면. 삿포로로, 뉴질랜드로 별 계획도 없이 그냥 티켓 끊고 같이 여행가지 않았으면. 서울역 앞에 숙소 잡고, 한강 유람선 타고 청계천을 걷고, 명동 하동관에서 곰탕을 먹지 않았다면. 절두산 성지와 잠실 서울타워 123층에 같이 올라가지 않았다면.


5년 동안 우리 아이들을 키워주시면서 그 많은 사진을 찍어주시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을까.




"아버지! 지난번에 새 신용카드 같이 발급해 드렸잖아요? 우리 카드 한 장만 더 만듭시다."

"다음 신용카드 신청 못 할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말들이 병원 로비에 와장창 깨져 흩어질까 봐 얼른 말을 받아낸다.



"아버지 둘째 손자 파일럿 된다고 하니 사관학교 입학식에는 같이 갑시다."

신용카드는 다시 발급 못한다 하시더니, 손자 대학 입학식에는 못 간다 소리는 안 하시는 아버지.



우리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니 8년 남았다. 사관학교 입학식은 지금만큼만 딱 건강하셔서 함께 걸어갈 수 있길. 혹시나 하늘에서 축복이 자비롭게 내려진다면 임관식에 참석하는 아버지 옆자리에 내가 앉아 있을 수 있길. 간절히 간절히 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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