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박탄호 Oct 18. 2021

교토 인감의 자존심, 다나카 분쇼도(田中文照堂)

창업 160여 년, 자긍심 하나로 똘똘 뭉친 인감 장인을 만나다.  






창업 이래로 160여 년, 교토 인감의 자존심, 다나카 분쇼도(田中文照堂)



교토 시내 한복판에 길게 누운 교토 고쇼(京都御所)는 헤이안 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대 일왕들의 거처(보금자리)였다. 고즈넉한 풍경과 우아한 분위기가 스며든 궁 주변으로는 전통 건축물과 사원이 다닥다닥 붙은 대로가 길게 뻗었다. 이를 따라 북 서쪽으로 걷다 보면 16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인감 공방 다나카 분쇼도(田中文照堂)가 있다.





어슬렁 어슬렁 정처 없는 발걸음을 찍던 중 우연찮게  발견한  공방은 일본 인감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교토 인감 중에서도 정점에  가게다.  역사도 역사지만, 즉석 인감이 활성화된 시대에도  손으로 직접 도장을 파는 덕분에 단골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또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초원 사진관을 닮은 가게 외관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것뿐이랴? 입구 옆 진열대로는 오랜 역사와 ‘명성’을 엿볼 수 있는 전시품들로 가득하다. 교토시가 수여하는 노포(老舗) 인증서를 비롯해 딱 봐도 비싸 보이는 인감도장이 진열된 공간을 멍하니 지켜보다 뭔 가에 이끌린 듯 출입문을 열었다.









10평 될 듯 말 듯 한 좁은 실내에는 수많은 도장과 세월이 묻은 전시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 사이로 서랍 정리에 여념 없는 다나카 사장님이 계셨다.




다나카 : 어서 오세요. 어떻게 오셨나요?




박 : 인감도장이 필요해서요. 그리고 제가 ‘일본의 오래된 상점’이라는 테마로 글을 쓰는 중인데 짧게 라도 좋으니 교토 인감에 대해 몇 가지 말씀 좀 여쭙고 싶어서요. 혹시 괜찮으실까요?




다나카 : 물론이지요. 괜찮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예고 없는 요청이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허가를 해 주신 사장님은 서랍에서 인감 재질과 서체가 수록된 카탈로그를 꺼냈다.   









교토 인감, 교인쇼(京印章)



다나카 : 혹시 ‘교인쇼’(*京印章、교토 인감)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으세요? 교토 시내에 소재한 도장 공방에서 만든 ‘인감’ 중에서도 옛 전통과 기술을 고스란히 담아낸 걸 지칭합니다. 오늘날 교토 시내에는 60 여 곳의 교인쇼 인증 공방이 있는데 저희 가게도 그중 한 곳이죠.

 




‘교인쇼’의 소개와 함께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다나카 : 교인쇼의 역사는 헤이안 시대(794-1185)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앙 집권제와 함께 왕권 강화를 도모한 헤이안 시대 초기, 왕실에서는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공식 문서에 도장을 찍기 시작합니다. 더불어 관청에서도 ‘관인(館印)’을 찍었습니다.  




이 무렵, 교토 왕실과 관청 등에 공급하던 교인쇼는 중국 대륙의 강인함과 중후함이 깃든 한나라 한인(漢印, 한나라 시절에 탄생한 인감)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교인쇼’에는 중후함과 우아함이 깃들었습니다. 그 덕분이었을까요? 화려한 생활을 향유한 귀족 층과 무사, 상인들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죠. 그리고 19세기 말에는 일반 서민들도 성(姓)을 갖게 되면서 도장이 필요하게 되었는데요.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상류층이 쓰던 교인쇼가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덕에 지금도 교인쇼라 하면 사람들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워요. 그도 그럴 게 일본 국새와 옥새 또한 교토의 인감 장인이 만든 거니깐요.





아이쿠. 말씀드리다 보니 ‘교인쇼’가 일반인들은 손에 넣기 힘든 것 마냥 표현했네요. 물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있는 건 맞지만 재질에 따라 저렴하게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회양목(도장 나무)이나 흑우 뿔로 만든 녀석들은 10,000~30,000엔 대에 구입 가능합니다.




*네덜란드 물소, 상아로 만든 인감의 경우 5만 엔에서 7만 엔가량




 


 



일본인과 인감

 


박 : 사장님, 일본인들에게 있어 ‘인감도장’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박상, 한국은 인터넷 뱅킹과 전자 서명 등이 활성화되면서 인감도장의 활용도가 많이 낮아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 또한 비슷한 추세입니다만 여전히 인감도장이 없으면 금융 거래나 계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 존재감이 큽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자식들의 성인식이나 취업을 축하하며 교인쇼를 선물하기도 하죠. 저희 가게에도 대학 졸업을 앞둔 자식에게 인감을 선물하려는 부모님들의 발걸음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인감도장은 ‘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치열하게 분주하게



인감의 역사와 재질과 관련해 심도 있는 설명을 듣는 동시에 재질, 서체, 글씨체 배열 등 새 도장에 필요한 항목도 하나하나 추천받았다.




'20,000엔…'




결코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평생 쓸 도장, 진짜배기 장인의 손길이 깃든 걸로 기분 좋게 써보자 생각하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리하여 기쁜 마음으로 주문서를 작성했다.




다나카 : 완성까지는 대략 1주일 정도 걸립니다. 저희 가게는 100% 손으로 도장을 파기 때문에 기계로 찍어내는 가게에 비해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제 능력으로 하루 최대 두 개의 인감도장을 파는데 그것도 아침부터 낮까지 오롯이 도장 파는 데만 집중해야 겨우 하나를 완성시키는 정도입니다. 그만큼 이 일이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는 손으로 직접 도장 파는 장인이 드뭅니다. 손수 도장을 판다고 광고하는 곳 조차 가게 한쪽에 기계를 두더군요. 제가 알기로 교토 시내 인감 공방 중, 기계 없이 영업하는 곳은 저희 가게랑 예전에 저희 조부모님 일을 도와주시던 친한 할아버지네 공방 단 두 곳 밖에 없습니다.




 




Tip 인감을 나누는 세 가지 방법



1.테보리(手彫り, 100% 수작업)


인고(印稿,도장 단면에 새길 글자를 구상하는 것)부터 포자(布字,도장에 글자를 새김) 작업에 이르기까지 100%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며 도구로서는 먹(빨간 색과 검은색)과 세필(가는 붓),  인두(印刀, 조각칼)만 사용 가능하다.



2.테시아게(手仕上げ, 반 수공업)


조형 기계로 도장 파는데 필요한 전반적인 작업을 실시. 기계로 파낸 도장 위에 장인이 최종적으로 글씨를 새겨 넣는 방법으로 컴퓨터에 입력된 서체(폰트)를 스캐너로 떠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3.기카이보리(機械彫り, 기계 인감 작업)


인감도장 제작의 전 과정을 조형 기계에 의지하는 것



-----------------



무덤덤한 표정으로 현실을 읊조리던 그는 책상 위로 두 손을 올렸다.  굳은살과 손마디 곳곳에 드러난 크고 작은 상처 가득한 그의 손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뗐다.




박 : 사장님, 앞서 ‘손수 도장을 파다 보니 하루 최대 두 개 밖에 못 만든다.’라 말씀해 주셨는데요. 매일 같이 고가의 도장을 두 개씩 제작하면 몰라도, 어떤 날은 아주 저렴한 도장 하나만 파야 할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몸 상태가 안 좋아 하나도 못 만들 때도 있지 않나요. 그 과정에서 한 번 정도는‘기계를 들여볼까?’라 생각해 보신 적 없으셨나요?





다나카 : 하하하.  뻔한 대답일  있는데   시작한 이후로  번도 그런 생각을  적이 없어요. 가게 건물이  명의로 되어 있어 월세도  나가고 직원이라고는 달랑  혼자니 인건비도  들어요. 그러니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됩니다.





오히려 돈과 편의를 좇다 저희 가족이 일궈온 ‘전통’을 잃어버리진 않을까, 이로 인해 1,000년 넘게 이어진 ‘교인쇼’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매사 ‘편함’을 경계합니다.





물론 기계로 인감 만드는 분들을 비난하거나 헐뜯는 건 아닙니다. 어떤 방식으로 도장을 만드느냐는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수작업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데다 하나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생계를 생각하면 기계를 쓰는 게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수작업이 얼마나 힘드냐 하면요. 가령 인면(도장면)에 글자를 넣는 지이레(字入れ) 작업 때는 신경이 곤두섭니다.  도장을 팔 때는 찍히는 것과 반대로 파야 하는데 이를 위해 글자를 반대로 떠올려야 하거든요. 알파벳이나 히라가나, 가타카나 처럼 형태가 간단한 문자라면 모를까 어려운 한자(漢字)를 새길 때는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때문에 너 나 할 거 없이 지이레 작업까지 해결해주는 조형 기계나 컴퓨터 작업에 의존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이러한 의존이 거듭되면서 마음속에 안이함이 자라납니다.





‘아 오늘은 바쁘니깐 기계로 파야겠다.’ , ‘돈도 안 되는 손님인데 대충 기계로 파주자.’





이 순간 기둥이 무너집니다. 일본 인감 하면 교인쇼를 으뜸으로 꼽는데 ‘교인쇼’ 장인인 저 조차 기계를 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정교한 기계라 하더라도 사람 손은 못 따라와요.  겉보기에는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만 이름 한 자 한 자에 획이 있고 흐름이 있어요. 이를 표현하는 데는 사람 손 만 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세밀하게 표현하기 위해 매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치열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장인이 도구와 멀어지는 순간 상인이 됩니다. 저는 장인으로 남고 싶습니다.


 






장인의 삶



다나카 : 박상. 먼 걸음 해 주셨는데 딱딱하고 어려운 이야기만 들려 드리게 되어 죄송하네요. 제가 평소 그리 목소리가 큰 사람이 아닌데 도장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톤이 올라가요. 하하하. 도장 기술자로서의 '긍지'라 생각해주세요. 음, 잠시 분위기라도 바꿀 겸 제가 가장 아끼는 보물을 보여드릴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던 이야기를 멈추고 구석에 위치한 작업장으로 가더니 여기저기 손 때가 묻은 조각칼 십 수 개를 들고 왔다.




다나카 : 방금 말씀드린 제 보물이에요. 인감을 팔 때 쓰는 조각칼이랍니다. 참고로 손수 만든 것들이에요. 만물상에서 구한 칼날을 정교하게 다듬은 다음 손잡이를 붙였어요. 칼날 끝을 보면 저마다 사이즈가 다릅니다. 0.1mm 차이에도 기울여야 하는  힘과 손길이 다르기 때문에 칼날 또한 1mm 단위로 세세하게 나눕니다.





이를 구분하기 위해 손잡이에 각각의 색깔을 붙여 뒀습니다.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제게는 목숨과도 같은 것들이죠.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증조할아버지께서도 일평생 조각칼 다듬는데 어마어마한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사장님, 조부모님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인데 공방은 정확히 언제 문을 열었나요?’



다나카 : 교토 시청에 남은, 1860년에 작성된 고(古) 문서 한 단락에 저희 가게가 등장합니다. 때문에 ‘교토의 오래된 상점 인증서’에는 1860년 창업으로 올라가 있습니다만 실은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1830~40년부터 시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박 : 1860년에 창업했다고 해도 160년에 이르는 긴 역사인데요. 가게의 역사가 긴 만큼 가업을 물려받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장님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가업을 물려받으셨나요?




다나카 : 지금 제가 있는 이곳은 고조부 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의 발자취가 남은 공간입니다. 그분들께 가게는 보금자리이자 생활 전선이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께서는 병환으로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그러면서 할머니가 다른 장인 한 분과 힘을 모아 가게를 유지했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저희 아버지께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았을 텐데 할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어요. 교사로 일생을 헌신한 아버지의 삶을 존중해 주셨던 거죠.





당연히 제게도 ‘가업을 이어야 한다.’ 라 부담 주지 않으셨습니다. 덕분에 학창 시절에는 하고 싶은 공부를 원 없이 했습니다. 제가 고베 대학 공학부에서 반도체를 연구하며 석사 과정까지 밟았거든요. 그때까지만 해도 가업을 이을 거라는 생각은 1 도 안 했습니다.





그런데 석사 수료할 즈음 해서 큰일이 생겼습니다. 할머니께서 파킨슨 병 진단을 받으며 가게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 거죠. 제 나이 스무여섯 되던 무렵이었습니다.





박사 과정 진학, 취업, 그리고 그 밖의 여러 선택지 앞에서 제가 선택한 건 ‘가업을 잇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시절부터 할머니 곁에 앉아 인감 만드는 걸 봐왔기 때문에 이 일이 얼마나 힘든 건 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만 그럼에도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아 이게 내 삶이구나. 인감 장인으로 살아 보자.’ 하는 마음뿐이었죠. 그리하여 그날부터 곧장 가게 일을 거들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할머니 곁에서 눈대중으로 보고 느낀 게 있어서인지, 아니면 간간히 팔 걷어 일을 도운 덕분인지 기술 익히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대학원 시절부터  세밀하게 손 쓸 일이 많아 손재주에도 자신 있었고요. 그리하여 남들이 10년 걸일 일을 3-4년 만에 해냈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께 도장 추천해드리는 게 가장 즐겁고 보람찹니다.




다나카 : 되돌아보면, 망설임 없이 가업을 이은 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가업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일을 함으로써 내가 갖는 ‘보람’과 만족도가 굉장히 크기 때문입니다. 박상, 저는 가게에 직접 들러 주신 손님들께 딱 맞는 도장을 추천해드리는 게 가장 즐겁고 보람찹니다. 어떤 재료로 인감을 만드는지, 서체는 어떤 게 있는지 알려 드릴 때마다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는 손님들과 시간을 공유하는 게 너무 즐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제 아들도 언젠가는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을 고스란히 체감해 봤으면 합니다.





물론 아이에게 ‘가업’을 강요하지 않을 겁니다.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살도록 돕는 게 부모 된 도리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50년 넘게 이어온 가업에 자긍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유치원에 안 가는 날에는 작업실 옆에 앉혀 놓습니다. 다행히 아이도 옆에 앉아 노는 걸 좋아합니다. 한 공간에서 장난도 치고 눈도 마주치고 애정 표현도 하고, 그러다 아빠가 진지하게 일 하는 모습 보는 게 마냥 즐거운가 봅니다. 저 또한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바로 곁에 앉아 지켜보는 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행복합니다.





단, 아이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만큼 아이가 가업을 잇지 않는 ‘미래’에 대해서도 늘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아이가 다른 길을 선택하더라도 가게가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외부’에서라도 후계자를 찾아 가게 명맥을 이어 나갈 겁니다.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일본 왕실 옥새와 일본 정부 국새는 모두 교토의 인감 장인이 판 것 들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시 한번 옥새와 국새를 만들 날이 올 겁니다. 그런데 그때, 교토 시내에 직접 인감을 파는 장인이 없다면, 그리하여 다른 지방의 수제 인감 장인이 도장 만드는 일을 떠맡게 된다면 제 마음이 찢어질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최선을 다해 후계자를 찾을 것입니다.









직접 찾아오시는 손님과 마주하는 즐거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창밖으로 어스름이 밀려왔다.




박: ‘벌써 날이 어두워졌네요. 사장님의 귀한 시간을 빼앗은데서 미안함이 드는 한편으로 평생 모르고 살았을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 기쁜 마음도 큽니다. 갑작스러운 요청에도 시간 내주시고, 성심성의껏 이야기 들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나카 : 하하하, 박상, 시간은 얼마든지 괜찮아요. 신경 쓰시지 마세요. 이미 오시기 전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마친 상태였거든요.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하루에 인감 2개를 파면 손이 아파서 일을 더 하고 싶어도 못 합니다. 무리하면 3개도 가능한데 그러면 다음 날에 지장이 생겨요. 앞으로 10년, 20년 계속 이 일을 하려면 정도를 지키는 게 중요하거든요.




저는 되려 하루를 정리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던 찰나에 좋은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정말 즐거웠습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제게 새로운 자극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저희 가게까지 귀한 발걸음 해 주시고 도장도 구입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저희 도장은 5년 간 보증이 가능하니, 5년 내에 도장에 흠이 생기거나 잘 안 찍히면 기탄없이 연락 주세요. 그리고 오늘 저희가 나눈 이 이야기들이 반드시 책으로 엮였으면 합니다. 다음번에 교토 오시거든 또 들러주시고요. 행운을 빌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