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130년, 전통 기법을 고수한 나카무라 양초(中村ローソク)
전등이 발명되기 전, 사람들은 횃불과 양초로 어두운 밤을 밝혔다. 기원전 1,500년 경, 이집트에서 첫 등장한 양초는 전기 조명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그리고 교토 시 남부, 일본주의 고장으로 유명한 후시미(伏見) 지구에는 130년 역사를 자랑하는 양초 공방이 있다. 창업(1887년) 이래, 두터운 정성과 유구한 전통 기법으로 만든 양초로 세상을 환히 비추는 나카무라 양초(中村ろ ー そく). 이곳을 지키는 4대 후계자인 타가와 히로카즈(田川広一) 장인을 만났다.
첫 만남 : 안뇬하세요.
싱그러운 봄바람에 벚꽃 잎 흩날리던 4월 초, 인파로 북적이는 교토역(京都駅)에서 전차를 타고 7분가량을 달려 다케다 역(竹田駅)에 도착했다.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서둘러 역사를 빠져나와 고가 다리 아래 길을 통과해 왼쪽으로 몸을 틀자 30m 앞으로 양초 그림 간판이 걸린 2층짜리 건물이 나왔다. 나카무라 양초 ‘판매점’이다. 거기서 한 블록 더 걸어 오른쪽으로 돈 후 70m 정도 걸으니 양초 모형 간판이 달린 가게 하나가 나왔다.
“나카무라 양초(中村ろ ー そく).. 여기가 작업장이구나.’
큼직한 양초 간판을 뒤로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중년 여성 두 분과 할머니 한 분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박 : 실례합니다. 공방 취재 건으로 왔는데요. 타가와 사장님 계세요?
직원 : 아,,, 어서 오세요. 사장님은 아직 일이 안 끝나서 2층에 계신데.. 10분 안에는 내려오실 거예요. 잠시 진열된 상품이라도 보고 계시겠어요? 작업장에 들어와도 괜찮고. 근데 박상은 국적이 한국 맞죠?
벅 : 네, 한국 사람 맞습니다.’
직원 : 오, 그렇구나. 실은 제가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안녕하세요?(한국어)
판매용 양초가 진열된 공간 뒤편, 각종 원료와 도구로 발 디딜 틈 없는 작업장에서 느닷없이 한류 예찬이 시작됐다.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직원들이 그간 봤던 한국 드라마와 영화, 좋아하는 배우를 나열하던 그때, 입구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다부진 남성 한 분이 들어왔다.
타가와 : 안나..오..
대뜸 작업장을 향해 손을 든 채 정체불명의 말을 내뱉은 그는 내 옆에 서 있던 여직원에게 물었다.’
아 뭐였지? 한국어로 ‘곤니찌와’가?
직원 : 안녕하세요.!
타가와 : 아 맞다.
멋쩍은 얼굴로 한 차례 머리를 긁은 그가 재차 인사를 시도했다.
타가와 ‘안뇬하세요. 타가와 이무니다.’
건장한 체격에 다부진 발걸음, 선이 진한 얼굴에 쾌활한 웃음을 가진 공방의 4대 후계자, 타가와 사장님이다.
타가와 : 반갑습니다. 박상, 타가와입니다. 나한테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고? 방금 들어오다 들었는데 일본어를 너무 잘해서 일본 사람인 줄 알았지 뭐야.
박 : 아유, 아닙니다. 제가 오늘 양초와 관련해서 질문을 많이 드릴 텐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전기가 없던 시절, 어두운 세상을 환히 비추어 준 양초.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나라 시대(710~794), 중국과 한반도에서 밀랍 양초(꿀벌이 꽃으로부터 얻은 지방{밀랍}으로 만든 양초)가 소개되었다. 어두컴컴했던 실내를 환히 비추는 ‘양초’는 귀족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무로마치 시대(1336~1573)에는 가먕 옻나무 열매(櫨の実・하제노미)를 원료로 하는 일본 전통 양초(와로소쿠【和蝋燭】가 발명되었다. 와로소쿠라 부르는 이 전통 양초는 그을음과 연기가 적고, 바람에 잘 꺼지지 않으며, 흡수력이 좋아 오랜 시간 지속되는 특성을 지녔다.
그런 가운데 1887년에 문을 연 나카무라 양초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전통 방식인 세이죠 키가케(清浄生掛け)제조법으로 양초를 생산한다.
전통 공법으로 만든 일본 전통 양초, 와로소쿠(和蝋燭)
박 : 사장님, 전통 양초는 일반 양초와 달리 공정이 좀 더 복잡하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나요?
타가와 : 음, 과정을 설명하기에 앞서 일반 양초와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아는 양초, 가령 생일 케이크에 꽂거나 집에 장식으로 두는 양초는 원유 찌꺼기를 탈색 가공해서 얻은 파라핀 왁스로 만든 거예요. 반면, 와로소쿠는 가먕 옻나무의 열매껍질 부분을 쪄서 추출한 ‘목랍’으로 만들어요.
이렇게 어떤 재료를 쓰냐에 따라 공정 방식이 달라지는데요. 아, 아니다, 이건 직접 몸으로 설명하는 게 좋겠네. 잠시 여기로 와 볼래요?. 지금부터 시연해 볼게요.’
그를 따라 40~50cm 정도 되어 보이는 얇고 기다란 나무 꼬챙이로 가득한 작업장 구석으로 들어갔다.
타가와 : 전통 양초 제작의 첫 걸음은 심지 만들기예요. 먼저 나무 꼬챙이 상단 부분에 화지(和紙・일본 전통 종이)를 감싸고. 종이가 벗겨지지 않도록 껍질을 벗겨 낸 골풀로 돌돌 감아 줍시다. 안 풀리게 잘 감겼죠? 이게 바로 심지의 기본 틀이랍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 여기 큰 냄비가 보이죠? 여기 든 빨간 물은 50도가량의 불로 녹인 목랍이에요. 녹은 목랍을 국자로 떠서 심지에 붓는데, 이때 목랍이 심지에 잘 스며들도록 나무 꼬챙이를 돌돌 돌려가며 부어 줍시다.
타가와 : 여기 보세요. 심지가 빈틈없이 빨갛게 변했지요? 이번에는 여기 있는 나무틀을 이용할 거예요. 나무틀 사이로 깊게 난 구멍에 심지가 달린 나무 꼬챙이를 꽃은 다음, 이번에는 구멍 사이로 목랍을 부어요. 그 사이 우리는 심지를 만들 때 엮었던 나무를 짧게 잘라줍시다. 그러는 동안 구멍에서는 응고 과정을 거치며 목랍이 굳기 시작해요.
타가와 : 오, 됐다. 자 이제 나무틀 양끝을 잡고 옆으로 열어보세요. ‘짜잔.’ 대략 양초 모양으로 굳었죠? 이걸 완전히 굳기 전에 빨리 꺼내 주도록 합시다.
왜냐? 굳어가는 양초 본체에 뜨거운 목랍을 바르는 쇼죠키가케 清浄生掛け)작업을 해야 하거든요. 이걸 하지 않으면 불을 붙였을 때 목랍이 쉽게 흘러내려요. 또 잘 문지르지 않으면 불의 크기도 작아지고요. 참고로 녹인 납을 굳어가는 양초 본체에 문지르는 작업은 직접 손으로 해요. 목랍 온도가 50도가 넘어서 손이 여물지 않은 사람들은 하기 어려워요. 한 번 해 볼게요.
타가와 : 이렇게 손으로 본체 구석구석, 빠른 속도로 목랍을 바르고 다른 양초들과 모양이 균일하도록 다듬어 주는데요. 저는 노하우가 있어서 한 번에 본체 5개를 집어 빠르게 바르는데, 모두 균일한 모양이 나와요. 얼핏 보기에는 대충 문지르는 것처럼 보여도 이렇게 같은 모양을 내기까지는 오랜 경험이 필요해요. 그러다 보니 전국에서 이 작업이 가능한 장인이 열 명 정도밖에 안 돼요.
자 이제 마지막, 양초 위아래 부분을 잘라서 모양을 정교하게 다듬어 줍니다. 이 작업들을 거치면 비로소 전통 양초가 되는 거죠. 이렇게 완성한 전통 양초의 최대 특징은 불에 있는데요. 일반 양초에 비해 불이 크고 은은하며, 바람이 불어도 하늘하늘 흔들리는 게 특징이에요. 그래서 가부키 공연이나 마이코들의 연회 때 자주 사용해요.
박 : 그러시군요. 그럼 공방에서는 하루에 몇 개 정도의 양초를 만드세요?
타가와 : 준비 과정도 길고, 하나부터 열 끝까지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일이라 많이는 못 만들어요. 한 시간에 160개 정도 만들고 하루 최대로 보면 800개가량 만들어요.
박 : 네? 800개면 굉장히 많은 거 아닌가요? 예전에 기후현 히다 후루카와에 있는 미시마 양초에 갔을 때 한 달에 700~800개가량 만든다고 하셨거든요.
타가와 : 허허, 거긴 어떻게 알아요? 안 가 본 데가 없구먼. 맞아요. 우리 공방이 다른 공방에 비해 많이 만들긴 해요. 재고 쌓일 일이 없거든. 여러 불교 종파가 밀집한 교토 시내에는 사원이 많아서 그곳에 공급하는 양이 상당해요. 그리고 가부키나 노, 분라쿠 등 전통 공연을 하는 공연장에서도 수요가 많고요. 이렇게 필요로 하는 곳이 많은 덕에 대량 생산이 가능 해졌고 그 결과 생산단가가 저렴해지면서 다른 공방보다 싸게 판매를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박 : 아아... 그럼 제가 지금까지 들렀던 다른 공방들과 달리 매출에 있어서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이네요?’
타가와 : 하하하, 그래 보여요? 그런데 우리도 알게 모르게 어려움이 많아요. 크게 세 가지 정도 있는데 첫째가 후계자 양성.’
박 : ‘아..’
타가와 : 박상, 내 이름이 뭐죠?
박 : 타가와 히로카즈 사장님이시죠?
타가와 : 그러면 공방 이름은?
‘나카무라 양초요. 어?’
타가와 : 맞아요. 이 공방은 원래 아내 집안의 가업이에요. 본디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어느 날, 3대 장인이었던 우리 장인어른 건강이 악화하면서 후계자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하루아침에 양초 가게 직원이 된 셈인데 어릴 적부터 손이 야물다는 말을 많이 들은 데다 실제로 손으로 이것저것 만지는 걸 좋아해서 양초 만드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니 근데 이게 웬걸? 진짜 힘듭디다. 다행히 장인어른께서 건강을 회복하고 본격적으로 기술을 익혔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장인어른이 만드는 것처럼 안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아직 완쾌하지 않은 양반을 붙잡고 하나하나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쉬는 날마다 전국 각지에 있는 전통 양초 공방에 들러 자문을 구했어요. 그렇게 기술을 익혀서 오늘날에 이르렀죠.
그만큼 이 일이 어려워요. 그래서 자식 놈한테 ‘넌 가업을 물려받아라.’ 라 강요하지 않았어요. 만약에 아들이 물려받지 않으면 직원 중에서 뛰어난 사람에게 물려줄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본인이 이 일을 하겠다 해서 지금은 열심히 가르치고 있어요.’
‘그런데 나는 우리 공방의 후계자를 구한 것에 만족하지 않아요. 더 많은 사람들이 전통 양초 만드는 일에 몸 담길 바라요. 지금 전국에 전통 방식으로 양초를 만드는 곳이 10군데 밖에 안 되거든요. 이들 대다수가 손이 모자라거나 대를 이을 후계자를 찾지 못해 어려워하는 상황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방에서 기술을 익힌 사람들이 훗날 독립해서 다른 공방에 들어가거나, 혹은 새롭게 가게를 차려서 전통 기술을 지켜 나가면 천 년 후에도 ‘전통 양초'가 일본의 주요 전통 수공업으로 남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열심히 직원 육성에 임하고 있어요.’
타가와 : 그리고 둘째는 원료 수급이에요. 전통 양초(와로소쿠, 和蠟燭)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식물성 원료예요. 그중 가장 중요한 게 목랍을 만드는 가먕 옻나무지요.’ 그런데 이 나무는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서 농가 입장에서는 크게 돈이 안 돼요. 그 결과 간사이 지역에는 이를 재배하는 농가가 딱 하나밖에 안 남았어요.
그리하여 공급량이 부족할 때는 후쿠오카 야메(八女) 산 옻나무를 사 오거나, 급한 대로 식물성 왁스를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런 건 임시방편이지 결코 해결책이 되지 못해요. 100년 후에도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근처에 안정된 원료 수급처가 있어야 해요. 그래서 얼마 전, 뜻 맞는 이들과 교토 시내 북쪽에 있는 게이호(京北) 지역에 땅을 구해서 가먕 옻나무를 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실패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조금씩 궤도를 찾아가는 느낌이에요. 생산한 옻나무로 핸드크림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조금씩 공방에 보태기도 해요. 좀 더 안정이 되면 몇 년 후에는 원료 수급 걱정도 사라질 거라 예상해요.
타가와 : 그리고 마지막 ‘문제’는 바로 생존이에요. 19세기, 전기 발명과 함께 다양한 조명 기구가 등장하면서 양초 수요가 많이 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게다가 아직까지는 절이나 사원, 전통 공연장 등에서 와로소쿠를 필요로 하기에 걱정이 없지만 여기에만 기댈 수는 없다 생각해요. 일반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받지 못하면 결과적으로는 도태되고 만다는 게 제 지견입니다. 때문에 젊은 고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상품 개발에 나섰어요.
가령 기존 ‘전통 양초’ 중에서는 향이 나는 게 없었어요. 그런데 향을 좋아하는 소비자들에게 다가가고자 불을 붙이면 아로마 향이 나는 제품도 개발했어요. 그리고 양초에 그림을 넣은 그림 전통 양초(에 와로소쿠, 絵和蝋燭) 생산량도 늘리고 있고요. 불교 사원에서는 불단에 꽃을 바치는데 농업이 발달하지 않은 오래전에는 겨울에 꽃을 못 구하니 꽃 대신 양초에 그림을 그려 넣었거든요. 이러한 관습에서 유래한 양초를 그림 전통 양초라고 해요.
그런데 보통은 에츠케시(絵付師・도자기나 부채, 나전칠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직업)에게 그림을 넣어 달라 의뢰를 하는 게 일반적이죠. 하지만 여기에 의존하다 보면 비용도 비용이고, 우리가 급히 양초 납품을 필요로 하는데 때마침 에츠케시도 예약이 꽉 차 버리면 손님과의 신용에 금이 가는 일이 생깁니다. 한 번 잃어버린 신용은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 되도록이면 실수는 하지 않는 게 좋지요.
그래서 몇 해 전, 우리 공방에서 전문 에츠케시를 고용했어요. 그 덕에 지금은 원료 생산과 양초 제작, 그림 넣는 일까지 전 공정을 자급자족으로 해낸답니다. 하지만 시대는 더욱 빠르게 변화할 테니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다양한 방안을 내려고 해요. 그런 움직임 속에서 교토 시내 다른 노포(老舗) 장인들과도 밀접히 연계해 교토의 전통을 지키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와로소쿠 : 소소하게 은은하게
타가와 : 박상, 전통 양초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제 몸을 태워 오랜 시간 은은하게 빛을 냅니다. 그런 물건을 만드는 가게인 만큼 저 또한 거창하진 않아도 전통을 지키는 한편, 소비자의 요구를 맞춤으로서 오래오래 공방을 이어 나가려 합니다. 동시에 한국 분들을 비롯해 세계 많은 분들께도 우리 양초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고요. 그러니 나중에 '나카무라 양초'는 교토의 전통 수공예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든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다.' 고 알려주시기 바라요. 박상도 다음에 또 들러주시고요. 오늘 하루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