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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탄호 Oct 24. 2021

후쿠오카에서 가장 특별한 녹차 공방

창업 160여 년, 코노미엔(このみ園)







1191년, 송나라로 유학 간 승려 에이사이(永西)가 귀국 길에 차 씨를 가져와 료센지(霊仙寺)에서 재배를 시작했다. 또한 일본 최초의 차 전문 서적인 끽다양생기「喫茶養生記」를 저술해 일본 차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16세기에는 센노리큐(千利休)가 다도(茶道) 문화를 완성했다. 이후 다도는 일본 사회와 문화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1,000년 가까이 차 마시는 문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후쿠오카 현 야메 마을은 일본에서 6번째로 차(茶, 녹차)를 많이 생산하는 고장으로 마을 이름을 딴 야메 차(八女茶)는 떫은맛이 적고 향이 좋다. 또한 서늘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자연조건을 활용하여 녹차 중 최상급으로 치는 옥로(玉露)를 대량 재배하는 덕에 녹차 마니아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는 1865년에 문을 연 차 공방 코노미엔(許斐園)이 있다. 창업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건축물에서 은은한 차를 파는 이곳은 야메뿐만 아니라 규슈를 대표하는 차 전문점으로서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번 '일본 유일의 민물 김 공방'에서 만난 엔도 사장님 덕분에 알게 된 이 가게를 운영하는 분은 8대째 대를 잇는 코노미 게이치(許斐健一)씨다. 







어느새 8대, 코노미 겐이치 씨 



야메(八女) 마을 체류 2일 차, 마지막 취재 장소인 차 공방 코노미엔에 방문했다. 사극에 나올 법한 고즈넉한 가게 건물 2층으로 큼직한 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아래로 가게 상호가 적힌 노렌(暖簾)이 펄럭였다. 늘 하던 대로 건물 사진을 찍은 후 안으로 들어가자 서글서글한 인상에 수줍은 미소를 가진 코노미 겐이치 씨가 계셨다. 




박 : '안녕하세요. 취재 차 들른 박탄호라고 합니다.' 




코노미 : '아~ 박상 어서 오세요. 먼 걸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차와 관련한 이야기든 저희 가게와 관련한 이야기든 제가 아는 선에서는 다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2층으로 올라가시죠.' 




그를 따라 가파른 나무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옛 무사 가옥에서나 볼 법한 큼직한 공간이 등장했다. 짙은 다다미 냄새와 옛날 집 특유의 나무 냄새가 뒤섞인 실내 곳곳으로는 딱 봐도 고가로 보이는 가구와 전시품이 놓여 있었다. 







코노미 : 건물이 좀 낡았죠? 지금 계신 응접실 건물은 1905년에 지은 거예요. 에도 시대만 해도 일반 상인들이 저택과 상가를 2층으로 만드는 게 금지되어 있었거든요. 그래서 바깥에서 보면 1층으로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2층으로 된 구조가 일반적이었어요. 그런데 메이지 유신 이후 신분제가 철폐되면서 건물 층수 제한이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너나 할 거 없이 2층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저희 가게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서 있는 맞은편에 있는 건물은 차 작업장인데요. 지붕을 형성하는 기와는 50년 이상 됐어요. 또 응접실과 공장 사이로 우뚝 솟은 매화나무는 건물 수리가 필요할 때 잘라 쓸 요람으로 심었다고 해요. 









코노미 : 그나저나 박상은 평소 차를 좋아하세요?' 





박 : 네, 좋아하긴 하는데 차도구를 준비해서 마실 정도는 아니에요.' 




코노미 : 그러시군요. 그러면 제가 오늘 처음 차를 접하는 분께 설명드린다 생각하고 최대한 쉽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먼저 야메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 덕에 기후가 서늘하고 일교차가 크며 강수량도 많습니다. 게다가 햇볕도 강하지 않아서 차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옥로(玉露)라고 해서 차 중에서 최상급 물건이 있는데 이게 야메에서 많이 수확됩니다. 옥로란 차 수확 시기에 차양막이나 천 등으로 햇볕을 차단해 차나무의 대사활동을 막음으로써 찻잎의 '아미노산 함유량을 늘리고, 폴리페놀은 줄인 것을 말합니다. 








코노미 : 차 애호가들이 말하길 야메 차는 떫은맛이 적고 단 맛이 강해서 다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즐기기에 좋은 차라고 합니다. 실제로 지금 제가 우려낸 차를 드셔 보시면 평소 드시던 것에 비해 맛이 부드럽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거예요. 그리고 여기 있는 화과자는 키쿠야(菊屋)라고 해서 1902년에 창업한 이웃 화과자 공방에서 가져온 거예요. 저희 가게에 들러주시는 손님들께 항상 드리는 건데 저희 차랑 궁합이 좋아요. 한 번 드셔 보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잔을 들어 차를 맛봤다. 단 맛은 모르겠으나 기존에 접한 다른 차들보다는 떫은맛이 적었다. 향도 좋은 게 호불호가 없을 듯했다. 




코노미 : 어때요? 입에 맞으세요? 야메 차가 시즈오카나 교토 우지차, 가고시마 치란 차에 비해 인지도는 낮아도 맛은 뒤지지 않아요. 그 덕에 개항기에는 미국과 유럽 등지에 수출을 하기도 했어요. 혹시 박상, 나가사키에 있는 근대 건축물인 구라바엔(長崎グラバー園 )을 아세요? 그 건물의 원 소유주인 토머스 블레이크(스코틀랜드 출신의 사업가)가 나가사키에서 글로버 상사를 설립해 미국과 교역을 시작했는데 그가 최초로 수출한 물건이 야메 차였다고 해요. 




그게 1863년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를 주목한 저희 가게 창업주 코노미 도라지로(許斐 寅次郎) 할아버지께서 2년 후에 지금 이 자리에 차 도매 공방을 차리셨어요. 그리고 창업하기가 무섭게 도라지로 할아버지께서는 해외 거래처를 뚫는 데 성공했답니다. 








코노미 : 박상 저기 창문을 보세요. 유리창에 흰색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죠? 저건 야메에서 수확한 차를 나가사키 항구로 옮기는 과정을 나타낸 그림이에요. 참고로 나가사키에서 선적된 차는 한 차례 상하이에 들른 후 유럽과 미국으로 배송되었어요. 바로 목적지로 가지 않고 상하이에 들른 이유는 수출 초기, 일본이 차를 포장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당시 중국에서는 빨간 상자에 차를 담아 수출했는데 그중 하나가 저기 진열된 빨간 나무 상자예요. 








코노미 : 이렇듯 한 때는 미국과 유럽 각국에 수출을 할 정도였으나 지금은 국내 판매에 만족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창때와 비교하면 국내 차 판매량도 많이 줄었어요. 커피를 비롯해 다른 기호품들이 인기를 얻는 과정에서 차의 인기가 사그라들었거든요. 그래서 저희 가게에서는 매출 감소를 메우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온라인 쇼핑몰과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해 판매와 홍보를 실시하고 있어요. 온라인 판매는 생각 이상으로 순조로운 편이고요. 인스타그램도 팔로워가 많지는 않지만 꾸준히 소식을 올린 덕에 이를 보고 가게까지 들러주신 분들도 계세요. 




차를 말리는 창고 




'그럼 사장님, 최근에는 연간 몇 톤 가량의 차를 생산하나요?' 




연간 10톤 정도를 생산해서 그걸로 입에 풀칠하고 있어요. 저랑 다른 직원 한 분이 응접실 건물 옆에 있는 공장에서 차를 만들고 제 아내를 비롯해 직원 3명이 차를 파는데 마음만 먹으면 생산량을 늘릴 수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이를 소화하기 위해 무리해서 홍보 활동을 해야 하니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어요.  제가 올해로 가업에 종사한 지 23년, 가게를 물려받은지는 7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 '뭐든 지나치면 탈이 난다.'라는 걸 배웠거든요. 그래서 지금에 만족하려 합니다.




'욕심부리지 않는다는 게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잖아요. 이를 몸소 실천하시니 참 대단하셔요. 






1층 본관. 창문 앞에 비스듬히 나무판을 세웠다. 이를 통해 빛이 들어오는 걸 최소화하였고 예전에는 이를 활용하여 차를 말렸다고 한다. 




'에이, 무슨 말씀을. 저는 오히려 박상이 부럽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유서 깊은 가게를 물려받은 것에 대한 자부심도, 차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긍지'도 굉장한 편이에요. 다만, 가업에 얽매인 나머지 젊은 시절에 넓은 세상 구경을 못 해 본 것, 다양한 경험을 못 해 본 게 아쉬움으로 남아요. 박상은 일본에 사시면서 여행도 다니시고 글도 쓰시잖아요. 가끔 저희 가게에 취재 차 들러주시는 기자나 작가 분들이 계신데 그분들을 뵐 때마다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아쉬운 대로 지금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실천하고 있어요.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지난 20년, 야메 마을에 빈집이 많이 생겼어요. 그러다 보니 마을 주민들의 걱정이 많았죠. 그때 저를 비롯해 마음 맞는 주민들이 합심해 마을 재생을 위한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다음 빈집이나 고민가(古民家)를 개조해 카페나 잡화점, 호텔 등으로 탈바꿈하는 작업에 착수했어요. 생각보다 많은 주민분들께서 참여해주신 덕에 지난 10년 사이 마을이 많이 밝아졌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여력이 되면 계속해서 마을 재생 운동에 앞장서고 싶어요. 




또 지역 예술가들에게 저희 가게 빈 공간을 제공하여 상설 전시전이나 전통 공예 체험전을 여는 활동도 하는데 앞으로는 빈도를 늘릴 예정이에요. 이렇게 작은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모이고, 그 과정에서 마을이 한층 성장할 수 있다 믿으니까요. 





차에 대한 사랑, 가업을 향한 자긍심, 마을 재생을 위한 노력 등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박 : 사장님, 오늘 하루 귀한 시간 내주시고 소중한 장소에서 맛있는 차와 화과자를 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평소 인터뷰와 달리 오늘은 공방 이야기 이외에도 야메 마을의 상황과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이 어떻게 노력하는지, 아울러 사장님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시는지 알 수 있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들를게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항상 가게가 번창하길 기원드릴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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