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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박탄호 Oct 20. 2021

행복을 돌립니다. 120년 된 팽이 공방

후쿠오카현 야메시 구마모토 팽이(隈本コマ)





교통의 요지인 후쿠오카 시 하카타 역에서 두 칸짜리 전차에 올라 달리길 50분. 후쿠오카 이남에 위치한 구루메(久留米) 역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낡은 시내버스를 타고 1시간을 더 들어가 조그만 버스 정류장에 발을 내딛자 눈앞으로 옛 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크고 작은 전통 가옥과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한적한 거리. 야메 시(八女市) 후쿠시마 마을(福島町)이다.




에도 시대, 녹차와 전통 종이, 제등으로 번영을 이룬 마을에는 오늘날에도 많은 노포가 명맥을 이어 가는데 1박 2일간 마을에 소재한 공방 몇 곳을 돌며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120년의 역사 구마모토 팽이(隈本コマ)



후쿠시마 마을 북서쪽, 도보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요시다 마을(吉田町). 낡은 주택이 길게 늘어선 골목 한쪽으로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공방 구마모토 팽이(隈本コマ)가 있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 아이들의 벗이 되어 준 팽이와 여러 장난감을 만들어 온 유서 깊은 가게. 창업 당시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한 공방 옆 공터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어린아이 둘과 놀고 있었다. 6대째 가업을 잇는 구마모토 도모노부(隈本 知伸) 장인이다.





박 : 안녕하세요.  공방 취재 건으로 찾아뵙기로 한 박탄호라고 합니다. 구마모토 사장님이시죠?’





구마모토 : 아, 박상. 안녕하세요. 구마모토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먼 걸음 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저희 공방이 걸어서 오시기에는 조금 어려운데 시간에 맞춰 잘 오셨네요. 많이 힘드시죠? 여기서 이러지 말고 들어가서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이야기 나눠 봅시다.




사장님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간 공방. 넉넉잡아 15평 정도로 보이는 실내에는 그윽한 목재 냄새가 흘렀고, 넓게 자리한 진열대 위로는 팽이를 비롯해 장난감 여럿이 놓여 있었다.




구마모토 : 오래된 가게를 취재하신다고요?’




박 : 네, 노포(老舗)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로 책을 엮고자 해요. 그래서 오늘 하루, 공방 이야기를 비롯해 사장님의 지난 삶과 가치관, 향후 목표와 같이 다소 개인적인 이야기를 여쭙고 싶은데 괜찮으실까요?  




구마모토 : 괜찮고 말고요. 뭐든지 물어봐요. 팽이 제조에 필요한 핵심 기술 빼고는 다 알려 드릴게. 하하하. 농담이고요. 차 식겠다. 식기 전에 얼른 들어요.’  







목공소에서 팽이 공방으로



따듯한   잔과 진심 어린 환대로  여느 때보다 밝은 분위기에서 인터뷰를 시작했다.





사장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일찍이 그의 집안 대대로 불단(仏壇) 제등(提灯) 부품 만드는 일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러다 1899, 1 창업주가 구마모토 팽이의 전신인 ‘팽이 공방 구마모토 목공소(独楽工房 隈本木工所) 열었다.




창업 당시에는 팽이를 비롯해 불단 기구와 제등 부품, 가구에 들어가는 이음새 등 목재로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들었다. 여름에는 놀이용 불꽃도 생산했단다. 그러던 것이 어느 정도 방향성을 잡으면서 ‘팽이와 장난감’에 집중하게 되었다.




‘사장님, 목재로 만들 수 있는 게 참 많은데 어째서 조상 분들께서는 ‘팽이’를 선택하셨던 걸까요?’




구마모토 : 오, 좋은 질문이네요.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확한 사실 관계는 잘 몰라요. 다만 추측 가능한 건 지금도 그렇지만 창업 당시 마을 내에는 불단과 제단 부품을 만드는 공방이 많았어요. 요즘 말로 하면 레드오션쯤 되려나? 그러니 블루오션을 찾는 과정에서 팽이에 주목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도 그럴 게 20세기 초, 아니 제가 어릴 적만 해도 팽이 수요가 많았거든요. 골목마다 팽이 안 돌아가는 곳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는  저희 공방에서만 연간 15만 개 이상 생산했어요. 그런데 오락기나 컴퓨터 게임 등 대체 놀이 수단이 등장하면서 인기가 뚝 떨어졌어요. 지금은 규슈 전역에서 생산하는 전통 팽이를 다 합해도 5,000개가 안 돼요. 아니 생산량은 둘째치고 전통 팽이 만드는 곳이 저희 공방을 포함해 두 곳 밖에 없어요. 팽이 종류도 많이 줄었고요. 예전에는 지역마다 상이한 팽이가 존재했는데 지금은 하카타 (博多), 야메(八女), 히고(肥後) 팽이 정도만 남았네요.






세상이 변하고 삶의 방식도 바뀌니 수요가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죠. 그래서 저희 공방에서는 시대적 흐름에 도태되지 않으려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지난 10년 간, 팽이 이외에도 여러 아이템을 개발했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작업장에서 다시 하도록 하고요. 혹시 박상, 일본에는 언제부터 팽이놀이가 존재했는지 아세요?’




박 : 네, 1,300년 전에 중국에서 전래된 이래로 상류층 집안 아이들이 갖고 노는 고급 장난감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어요.




구마모토 : 오, 맞아요. 그러면 야메(八女)에 팽이가 소개된 건 언제일까요?




박 : 음...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구마모토 : 대략 400년 전이라고 해요. 누가 언제 어떻게 팽이를 소개했냐를 두고 두 가지 설(説)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한반도에서 건너온 팽이가 나가사키현 히라도를 거쳐 야메까지 건너왔다는 설이에요. 이런 설이 있다는 건 한국도 긴 팽이 역사가 존재한다는 의미인데 혹시 박상은 어린 시절에 팽이놀이를 해 봤어요?





박 : 네, 제가 어릴 적에는 줄 팽이 돌리는 게 유행했어요. 방과 후 학교 앞에서 팽이를 갖고 놀았는데 얼마나 열심히 돌렸는지 손가락에 물집이 생긴 적도 있었고요.




구마모토 : 그럼 나무 팽이로 놀아본 적은?




박 : 있죠. 그런데 나무 팽이는 학교 수업이나 전통문화 체험지에서나 해 봐서 그리 잘 돌리지는 못 해요.




구마모토 : 그렇구나. 그럼 당시 팽이를 돌릴 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굳이 팽이놀이가 아니더라도 좋아요. 무슨 마음으로 바깥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는지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박 : 지금과 달리 제가 어릴 적에는 바깥에서 즐길 수 있는 놀이가 많았어요. 팽이싸움을 비롯해 구슬치기, 술래잡기, 미끄럼틀 탈출 등 별의별 놀이가 다 있어서 해질 무렵까지 신나게 뛰어놀아도 안 질리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이제는 친구 얼굴도 가물가물하지만 자기 전에 ‘내일은 뭐하고 놀지?’ ‘누구 하고 놀지?’와 같은 행복한 고민을 했던 기억은 짙게 남아있어요.





구마모토 : 아, 박상이 어린 시절만 해도 한국에는 밖에서 친구들과 즐기는 놀이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나 보네요. 제가 갑작스레 이 질문을 드린 이유가 ‘놀이 문화와 아이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였어요.





흔히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하지요? 한 번 태어나면 좋든 싫든 죽을 때까지 사회에 얽매여 사는데 유년 시절에 친구들과 맺은 수평적인 관계에서 즐기는 ‘놀이’를 통해 경쟁과 협동을 경험하고 성장한다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즐기는 놀이 문화’가 사라지는 게 아쉬울 따름입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 팽이 문화를 지키는 한편 아이들이 바깥에서 뛰어놀며 풍부한 감성과 사회성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학교 체험 수업이나 전통 행사 등에서 팽이 놀이 시연을 하고 있어요. 그 덕에 저희 야메 시에서는 전통 팽이를 돌릴 줄 아는 아이들이 꽤 많아요.  





그리고 한 번 씩 ‘공방 견학’ 형태로 팽이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해요. 아무리 요즘 아이들이 전자 기기 만지는 걸 좋아한다 해도 팽이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면 신기해하더라고요. 그리고 눈앞에서 생산된 팽이를 돌려 보라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마냥 행복해하고요. 저는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팽이를 소개하는 게 중요하다 믿어요. 아무리 저희가 질 좋은 팽이를 만든다 한들 더 이상 팽이놀이를 하지 않게 되면 저희 공방의 존재 이유도 사라지게 되니까요.

 





사라지는 전통 공예. 장인 정신의 기반을 흔들다.



구마모토 : 박상, 잠시 자리를 옮길까요?  ‘작업장’을 보여 드리고 싶어서요. 근데 팽이 생산은 안 하는 날이라 구체적인 공정은 못 보여드리고... 아쉬운 대로 목재 다듬는 거라도 보여 드릴게요.





연신 미안함을 표하는 그를 따라 공방 뒤에 자리한 작업장으로 이동했다. 큼직한 창고 형태의 실내에는 직원 한 분이 목재를 다듬고 계셨다.








구마모토 : 저희 공방에서 생산하는 전통 팽이를 야메 팽이(八女コマ)라 불러요. 예전에는 이 지역에서 만드는 팽이를 '야메 팽이'라 불렀는데 이제 마을 내에 팽이 공방이 저희밖에 없어서 '야매 팽이' 하면 '구마모토 팽이(隈本コマ)가 된 거죠. 앞서 지역마다 팽이 종류가 상이하다고 말씀드렸죠? 예로부터 규슈 지역에는 하카타, 야메, 히고 팽이가 유명했는데 야메 팽이는 본체 상단부에 배꼽이 있는 게 특징이에요. 또한 팽이 생산에 필요한 모든 재료는 규슈 지역에서 난 것들이에요.  




그런데 몇 해 전부터 재료 수급 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실제로 몇 년 전에는 목재를 구하지 못해 폐업 위기까지 간 적도 있고요.








보통 전통 팽이는 참죽나무(椿)로 만든 걸 으뜸으로 치는데 원체 비싼 데다 구하기도 힘들어서 저희 공방에서는 100년 전부터 야메 산(八女産) 돌참나무(マテバシイ)로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돌참나무도 점점 구하기 힘들어지는 거예요. 결국 목재 수급처를 찾지 못해 ‘아, 이렇게 허무하게 공방 문을 닫아야 하나.’ 라 허탈해하던 찰나, 평소 전통 공예품에 관심이 많던 사가현 출신 자산가께서 본인 산에서 나는 돌참 나무를 쓰라 허락해주시면서 위기에서 벗어났어요.’





한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팽이를 만듦에 있어 목재만큼 중요한 게 철심이거든요. 그런데 팽이 수요가 줄면서 철심 만드는 공장도 하나 둘 사라졌어요. 그러면서 생산 단가가 크게 치솟았죠. 예전 같았으면 개당 20엔 하던 게 지금은 150엔이나 해요.





흔히 전통 수공업을 두고 후계자만 있으면 이어질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그에 못 지 않게 중요한 게 ‘재료 수급’이거든요. 자동차 한 대  만드는 데 여러 부품이 들어가듯 수공예도 다양한 '부품'이 필요해요. 그런데 도시화다 현대화다 해서 전통 공예에 대한 관심이 주는 과정에서 수공예 공방이 사라지고, 부품을 만드는 곳까지 문을 닫게 된 거죠. 이건 비단 팽이뿐만 아니라 많은 '전통 수공업'이 겪는 문제라 보시면 돼요. 저희도 지금은 어째 어째 버티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혀요.






굿포스





결국 재료 수급 문제로 고민을 거듭하다 십수 년 전에 팽이에만 기댈 수 없다 판단했어요. 그리하여 목재 교구와 장난감 개발에 큰 힘을 기울였어요.  이왕 만드는 거 대충 하지 말고 누구든 안전하게, 어렵지 않게,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만들자.’라는 마음으로 여러 교구를 만들었는데 저희의 진심이 통했는지 후쿠오카 현 내 많은 유치원에서 교구와 장난감을 구입해 주셨어요.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3D로 구현한 디자인을 깎아내는 기계도 도입했어요. 이 기계로 만든 ‘굿포스’라는 필기 자세 교정기는 2014년 후쿠오카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데 그 덕에 지금은 저희 공방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답니다. 완제품은 이따가 공방에 돌아가면 소개할게요.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팽이 만드는 게  




진한 목재 냄새가 흐르는 작업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문득 전통 팽이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졌다. 그리하여 간략히 설명을 부탁드렸다.




박 : 사장님, 전통 팽이는 어떤 공정을 거치나요?




구마모토 : 앞서 돌참나무로 팽이를 만든다 말씀드렸죠? 먼저 사가현에서 들여온 나무를 1년간 건조시켜요. 이후 건조된 목재는 작게 잘라 건목친 다음, (거칠게 깎다.) 팽이 모양이 나오도록 정교하게 다듬질하죠. 이후 완성된 본체에 시타지누리(下地塗り)라 부르는 밑바탕 칠을 하고, 그 위에 제대로 색을 입혀 완성합니다. 설명 듣는 것만으로도 어렵죠?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도우면서 자연스레 기술을 익힌 저와 달리 사진 지식이나 경험 없이 이 일을 시작하려는 분들께는 팽이 만드는 게 여간 쉬운 게 아니에요. 이 일이 손재주는 물론이고 고도의 집중력과 감각도 필요하거든요. 체력적으로도 힘들고요.




그러다 보니 어릴 적에는 가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없었어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작업장에 와서 일을 거들긴 했지만 오롯이 ‘아들 된 입장에서 아버지 일을 돕겠다.’라는 마음으로 한 일이었어요. 당신께서도 이 일이 고되고 돈이 안 되는 걸 아니까 가업을 물려받으라 강요하지 않으셨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진학했죠. 대학 시절에는 차 재배나 농업에 관심이 많아서 그와 관련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좋았어요.





씨앗을 심고, 싹이 튼 자리에 물을 주고, 풀 뽑고 가꾸며 추수하는 과정이 우리의 삶과 다를 바 없다는 걸, 그리하여 자연의 순리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거든요. 또 이 시기에 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포용력과 이해심도 생긴 것 같아요. 그토록 싫던 전통 팽이 만드는 일도 자연이 주신 자원으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됐으니까요.  





그렇게 다양한 경험을 하며 대학을 졸업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뒷모습을 보는데 등이 너무 휘었더라고요. 기력도 많이 쇠한 것 같고… 그런데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작업장에 가서 일을 하셨어요. 그런 당신을 보며 '내가 물려받지 않으면 "팽이 공방이라고 하는 우리 집안의 정체성도 아버지 대에서 끝맺음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굉장히 씁쓸했죠. 그래서 고민 끝에 가업을 물려받기로 했어요.






박 : 그러셨군요. 그럼, 그 이후로 "괜히 이 일을 했다." 라 후회하신 적은 없으세요?





구마모토 : 지난 세월 후회한 일은 수 없이 많아도 가업을 물려받은 걸로 후회한 적은 없어요. 물론 일은 정말 힘들어요.  그리고 '야메 팽이'의 명맥을 이어 나가야 한다라는 책임감이 주는 부담도 적지 않고요.





그런데요.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게 참 의미 있는 일이더라고요. 제 노력으로 야메 팽이가 100년 200년 지속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 후회할 여도 없어요. 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희 공방을 도와주신 분들이 참 많으시거든요. 그분들께 감사를 전하기 위해서라도 제가 열심히 살아야 하고요. 그리고 4년 전에 새로운 대졸 신입 직원이 들어왔는데 그에게 얼른 전통 팽이 제조 기술도 전수해줘야 해서 나쁜 생각을 할 틈이 없네요.






오래된 가게가 오래된 가게로 살아남으려면



취재 내내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시고 질문에 없던 내용도 들려주신 덕에 1시간이 금방 지났다. 더 이상의 시간을 빼앗는 건 실례라 판단하여 취재를 끝내기로 했다.




박 : 사장님, 벌써 1시간이 지났네요. 너무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드려요.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드릴게요. 제가 취재하면서 공통적으로 드리는 질문인데 향후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지요?





구마모토 : 저는 단순히 기술자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원들 월급 주고 가게를 유지해야 하는 경영자이기도 해서 무엇보다도 경영에 부침 없이 살아남는 사업장을 만드는 것과 100년 후에도 존재할 공방이 되는 걸 제1 목표로 삼고 있어요. 이를 위해 '전통을 지키는 건 좋지만 지나치게  옛 관습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라고 자기 주문을 외워요.





그래서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전통 팽이 알리기에 앞장서는 동시에, 공방 명맥을 잇기 위해 '팽이'에 국한하지 않고 목재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상품 개발에 착수하고 있어요. 또, 예전에는 공방에서 제품을 만들어 유통업자에게 넘기기만 했는데 저희 상품이 잘 안 팔릴 경우에는 거래가 중지되거나 물건을 안 사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자사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직접 제품을 판매하고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나 여러 행사를 돌면서 팽이 홍보도 하는 동시에 저희 공방 소개도 열심히 한 덕에 홈페이지를 통한 구매도 꽤 괜찮아요.





말이 좀 길었는데...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전통을 지키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시도하는 것이 저의 목표이자 꿈입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팽이를 만들테니 부디 박상께서도 저희 팽이, 주변 분들께 많이 알려주시고 관심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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