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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bae lee Jan 21. 2021

미쿡공돌이에서 VC가 되기까지 (1)

전공 선택, 깨달음, 그리고 턱걸이 취직

"궁금해요!"


사회에 나와서 만난 사람들 중, 꽤나 많은 분들이, 제 이력을 알게 된 후 '특이하다' 고 합니다. 그리고 유독 대면하는 자리에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보다, LinkedIn 등을 통해 콜드메세지를 받는 경우가 조금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 모르는 사람이 만난 적 없는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너무 궁금해서 연락 드렸다' 고 물어 보는 경우, 충분히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대부분의 경우 저도 짧든 길든 솔직히 제 이야기를 말씀 드리고는 했습니다.


오늘도, 용기를 내어 커리어 조언을 원한다는 어느 미국에 계신 분에게 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해 드리면서, 드디어 이 글을 한 번 써 두어야 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게임을 좋아 하니까 컴퓨터도 재미 있겠지.'


한국에서 태어나 나름 평탄한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전문직 부모님 밑에서 온순한 성격의 맏이로 크게 부족함 없이 자랐습니다. 성격이 엄청나게 차분했고 (그래서 키우기 쉬웠고, 점잖았고, 심하게 말하면 어릴 때부터 애늙은이였고) 동화책과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이문열의 삼국지를 여러 번 읽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며 노는 것은 좋아했지만 본연은 내성적인 편이어서, 먼저 지르거나 리딩하거나 감정을 내세웠던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임을 저절로 좋아하게 되었고 - 아 그 전에 저는 80년대 생이니 나름 PC통신 세대였다고 해야겠습니다? 모뎀이 삑삑대는 게 불편하지만 이상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줄글로 펼쳐지는 스토리텔링 만으로도 롤플레잉 게임이 가능했던 시절입니다 - 그리고 모르는 사람과 채팅방에 들어가서 닉네임을 부르고 시덥잖은 수다를 떠는 게 신기했던, 세상이었습니다. 어쨌든, 게임을 좋아했다 보니, 중학생 때 스타크래프트가 출시되어 PC방 열풍이 불었고, 친구들과 몰려 가서 말 그대로 12시간 내리 밤을 새웠던 것도 기억 납니다. 좀비처럼 다음 날 아침에 문을 나섰을 때, 햇볕을 눈으로 가리며, '...나 방금 인생 뭐 한거지' 라고 살짝 후회를 했던...


아무튼, 이렇다 보니, 대학교 진학을 하는 시점에서 자연스레 컴퓨터공학을 top 희망전공으로 꼽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게임을 좋아하고 컴퓨터 만지작 거리는 걸 지금까지 조금 해 봤는데, how computers work 이라는 공부를 한다는 건 재미있을 것 같다' 가 제 가설이었습니다.

(대학교 원서들을 내는 과정에서의 비화도 조금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미국고등학교에 진학해 있던 상태였고, 미국 시스템 상 복수 개의 정시 지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10개 이상의 학교에 동시 지원을 해 보려고 했고, 왼손잡이로서 원서를 손으로 쓰다가 손에 쥐가 나서 실제로 마지막 원서는 쓰다가 중도 포기한 것 같고...)

이래저래 우여곡절 끝에, 불합격한 학교들에게 마음 속의 욕과 저주를 조금씩만 해 주고, 합격한 학교들을 열거해 보니, 저의 선택지는 4개 였고, 아무래도 역시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선택지도 1번이었더랬습니다:

    1) Carnegie Mellon 에 가서 컴퓨터공학 전공

    2) Johns Hopkins 에 가서 생명공학 전공

    3) Tufts 에 가서 국제관계학 전공, 그리고

    4) Boston University 에 가서 ??? 전공.

(사실, 고르는 방식도 단순한 게, 각 학교 별 제일 유명한 전공이 뭔지를 알아 보고, 무작정 지원을 했다는...)


하지만 막상, 대학교에서 몸소 부딪혀 보니...

와, 정말 힘들었습니다.


'나는 왜 이 길을 택한 걸까? 잘 한 짓일까?'


컴퓨터공학부 건물에서 바라 본 CMU 캠퍼스 전경.


카네기멜른 대학에서 총 5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컴퓨터공학부로 입학했고, 그리고 애초에는 석사 박사 학위에 0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단지 "그래도 한국 사람들 중 들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주 조금은 있는" 학교, 그리고 나중에는 "테크 업계 종사자들은 거의 다 들어 본" 학교에 가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저의 dream school 은 Stanford 였으나...) 결론적으로는 석사과정까지 1년 얹어 5년이 되었습니다.


카네기멜른, 그리고 피츠버그에서의 생활의 장점을 꼽자면, 총 3가지 였던 것 같네요.

    1) 물가가 싸다. = 월급이 없는 학생 입장에서는 당연히 최고의 장점.

    2) Distraction 이 없어 주로 공부에 전념하기 좋다. = 대도시가 좋아 NYU, Columbia 등을 택할 사람들에게는 전혀 맞지 않으나, 진학 예정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에게도 보통 잘 먹히는 포인트.

    3) 카네기멜른에서 공부를 적당히 잘 하기만 하면 취직이 용이해진다. = 보통 대학에 가는 이유가 취직을 잘 하기 위함이니,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든 다른 분야를 공부하든 항상 중요한 편이겠죠. 특히 제가 기억하기론 산학협력 또는 구직지원을 적극적으로 해 주는 편이었습니다. 졸업프로젝트도 그렇고, Career Center 에서 job fair 유치 및 이력서/인터뷰 준비를 잘 도와 줍니다.


하지만, 힘들었던 점 한 가지만 꼽자면...

단연코 전공과목 이수였습니다.


백만년 만에 들어 가 보니, 끔찍했던 수업들도 보이고, 아련하다...


일단, 교양과목 수업들은 재미있고 쉽거나, 지루하지만 쉽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네요. (흑백필름 카메라로 직접 사진 촬영 부터 암실에서 손으로 필름을 따서 인화하는 것 까지 전부 하는 사진 기초반 수업은 세상에서 제일 쉬운 A학점을 제공.)


하지만 전공과목들을 하나하나 넘기 위해 드는 정신적 비용과 고통은 만만찮았습니다. 제 전공은 정확히는 Electrical and Computer Engineering, 즉 전기컴퓨터공학 이었고, 5개의 concentration 중 Embedded Systems 쪽이어서 제일 프로그래밍 위주의 세부전공 이었지만, 기본적으로 아날로그 회로 및 물성에 관련된 수업들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개 정도의 빡센 computer science 수업도 들어야 했습니다. 저는 선택지 중에서 제일 쉬운 편이었던 Database 쪽을 선택해서 들었는데, 그나마 꽤나 어려워서 A를 받지 못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2학년 때 들었던, 지금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수업이 하나 있는데, 학계에서는 엄청나게 유명한 컴퓨터 회로 쪽 교수님이 가르치는 수업이었는데, 너무나 노령의 연세에 말씀하시는 스타일도 못 알아듣겠는 그런 난이도 ++++ 급의 수업이어서, 매 주 숙제 제출 요일 전날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과 울며 밤을 샜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담 1. 제일 어려운 선택지인 Operating Systems 라는 악명 높은 수업이 있는데, 그 한 과목만으로도 실질적으로 최소 40hrs/week commitment 여서, 다른 모든 과목을 포기하는 학기에 들어야 하는 치명적인 rite of passage 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C를 받아도 정말 잘 한 거라는 소문이 자자...)

(여담 2. 막상 현업에 나와서 일을 해 보니, OS 수업을 들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끊임없이 들었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분야여서 특히 더 그럴 지도 모르겠는데, 아무튼 쉬운 길을 택하는 게 능사가 아니라는 교훈을 이렇게 얻었음.)


이런 걸 결국 이해하고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게 컴공.


혹시 아직 '컴퓨터공학' 과 '컴퓨터싸이언스' (또는 한국에서 전산학 이라고도 표현하는 듯) 의 차이가 잘 이해되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저는 보통 아래의 비유를 합니다.

"납땜을 해 봤다면, 컴퓨터공학. 아니라면 컴퓨터싸이언스."

즉, 하드웨어를 어떻게 구성하고 연결해야 실제로 컴퓨터 라는 것이 제 기능을 하는지, 위주로 공부하는 전공분야가 컴공이고, 컴싸는 좀 더 추상적이고 수학에 가까울 때도 있는 이론 위주일 때 컴싸 공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후자의 예로, "구글이 갖고 있는 DB 전체를 훑어서 이인배 라는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웹페이지들의 갯수가 몇 개인지" 라는 가설적 문제를 해결할 때, 어떤 알고리즘을 설계해서 더 효율적으로 검색 시간을 단축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하는 분야가 컴싸에 가깝습니다.


여기에서, 한 번 머리를 얻어 맞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는 순전히 "컴퓨터에 대한 호기심이 이제야 생겨서" 입학을 한 케이스였고, 저 같은 학생들이 꽤 많은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그 반대선상에는, "컴퓨터 쪽 머리가 타고 났거나 아니면 어릴 때부터 시작한" 케이스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당연하지만 후자에 해당하는 친구들이 바로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와 3, 4학년 룸메이트였던 Ryan 의 경우, 코딩이 워낙 좋았고 시작이 빨랐습니다. South Carolina 출신의 유태계 미국인으로 자라서 성격이 느긋했던 그는, 심지어 중학교 때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해서, 학교의 전산시스템을 거의 혼자 만들고 운영해 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들 1학년 끝나고 여름 방학 때 뭐 하면서 놀까, 를 고민하던 타이밍에, 나타나서는 "난 Google 인턴십 때문에 샌프란시스코 가게 되었어" 라고 폭탄선언까지 합니다. (2학년 여름방학 때에는 Bloomberg LP 에 취직되어 뉴욕에 가지를 않나, 3학년 때부턴 Adobe 덕에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가지를 않나... 괴물같은 녀석...)

이런 케이스 외에도 머리가 좋고 코딩을 잘 했던 녀석들 또한 많았고, 저는 수업 진도를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렇게 결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과 1등 반 1등을 할 필요 있나. 얘네들만 잘 따라 다니면서 같이 공부하고 숙제하고 시험준비를 하자. 그러면 평타라도 치겠지.'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포인트는, 저와 같은 전공으로 입학을 하고 거의 비슷한 수업들을 들었던 제 동급생들의 대부분이 결국에는 납땜질을 포기하고 다른 분야로 알아서 취직을 했다는 점입니다. 저는 결국 제조업으로 끌려 갔으나, 친구들은 우아하게 인터넷 서비스 기업으로: Microsoft, Adobe, Google, Yahoo...


그들은, 컴공을 직접 겪어 보니, '이건 내 길이 아닌가보다', 라는 깨달음을 빨리 얻고, 알아서 더 공부하고 알아서 면접 기회들을 골라서 결국 저와는 다른 길을 갑니다. 대신에 저는, 겨우겨우 수업 진도를 따라가고, 상자 밖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이수하고 졸업해서 취직을 해 봐야겠다' 라는 좁은 생각 밖에는 하지 못했던 거구요. (그리고 당시에는 군대 문제도 걸려 있었기 때문에, 제 머릿속은 더 복잡했고 생각의 유연성이 높아서, 멀리 그리고 쿨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살아남았다! Survivor 로서의 저 의기양양한 모습.


어쨌든, 천신만고 끝에, 학부 졸업을 하게 됩니다. 정확히는, 졸업 직전에 2가지 큰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1번. Apple 에서의 인턴십을 얻게 되었습니다.

2번. (졸업식 1주일 전에) Wrong reason 때문에 석사 진학을 결심하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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