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st-minute 석사과정 편입, 그리고 실리콘밸리 입성
1편에서, "Wrong reason" 때문에 석사를 결심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이유는 별 게 아니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해 봤을 고민, 그리고 유혹, 때문입니다.
바로 군대 문제.
4년 동안의 즐거운 학교 생활 끝에, 졸업이 점점 다가왔고, 그 동안 꾸역꾸역 공부를 함께 해 가며, 평이한 수준의 학점과 함께 저는 사회 진출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미국친구들이 유수의 미국기업 입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저는, 전전긍긍 했던 것 같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제 룸메이트의 사례 말고도 똑똑한 공돌이들이 너무나 많다고 했었죠. 그에 비해 전, "겨우 졸업이라는 목표에 맞춰 가며" 수업을 따라가던 상황이라, 몇 수를 더 내다 보며 '나는 어떠어떠한 세부 분야를 잘 하고 싶다' 또는 '저 회사에 들어가려면 이걸 이렇게 해서 저걸 저렇게 하면 되는 거구나' 에 대한 감이 없었습니다. 그저 '어떻게든 되겠지' 였던 것 같네요.
1~3학년 여름방학에는 결국 매 번 한국에 돌아와서 어린 학생들 과외를 해 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또 대기업이지만 인턴들을 별로 중용해 주지 않는 그런 곳들에 가서 별 output 없이 이력서 한 줄씩만 추가를 하는 그런 나날을 보냈습니다. (예: 모 전자의 연구소에 가서 법적가이드에 해당하는 영문 내부문서를 번역)
2006년이 되어 네 번째 학년은 다가 왔고,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카네기멜른에서도 가을학기의 시작 직후에 job fair 라는 연례행사가 열립니다. 리크루팅데이 또는 취업박람회 라고 표현하는 게 제일 비슷할 텐데, 이 때 수십 수백개의 기업이 학교를 방문하여 부스를 차려 놓고 학생들과의 만남의 자리를 갖습니다. 마찬가지로 고학년 학생들도 이력서와 양복을 갖춰 입고, 평소 관심 있던 기업들을 줄 서서 담당자와 만나 보거나, 아니면 몰랐는데 간식과 schwag, 즉 공짜 기념품들을 쌓아 놓고 있어 하나씩 받아 가며 즉석에서 기업홍보도 듣는, 그런 자리가 됩니다. (요새 스타트업 행사를 한국에서도 많이 하는데, 사실 하드웨어는 비슷한 그런 포맷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차이점은 학교 체육관에서 학생들만을 위해 열린다는 점?)
9월이나 10월 쯤 열렸던 것 같고, 이 때부터 면접 프로세스가 잘 진행되어 최종합격 통보를 미리 받는 학생들은 가을학기가 끝나기 전에 offer letter 를 받고 맘 편하게 "Senior Spring" (즉 취업 등의 next 가 보장 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2학기를 낙제 하지만 않으면 되는 상황, 즉, party semester!) 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봄 학기에 열리는 2차 job fair 에서 면접을 잘 보고 졸업 직전까지 뭔가를 따 내야 하겠죠.
저는 이런 환경에서, 상당히 저조한 hit ratio 와 퍼포먼스를 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참고로 유치원 시절과 미국고등학교를 다녔던 경험을 합치면 총 5년을 포함하면 거의 10년차 미쿡생활이었지만) 아무래도 우리말이 first language 인 사람 입장에서는 저렇게 현장에서 즉석으로 상대방을 impress 할 수 있는 수준의 영어가 막 튀어 나오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앞서 말했듯이 스스로가 '나는 중하위권 학생' 이라는 마인드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더 자기PR이 잘 되지 않았겠죠? 정말 온갖 기업들의 부스들을 다 기웃 거렸던 것 같지만, 그리고 그 중 서너 군데와 1차 전화 면접까지 이어지기는 했었지만, 실질적인 결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20군데 이상 정직원을 뽑는 기업과 1차 면접을 봤던 것 같고, 저를 뽑아 주는 곳은 아무도 없었어서, 2학기 중순까지도 저의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졸업 후 귀국을 할 수 밖에 없겠네?' 라는 생각이 점점 더 커져만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학교 Career Center 의 게시판에 올라 온 공고를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바로 (대충 어떤 기업이었는지는 알고 있었던) Apple 에서 올린 인턴십 공고였습니다.
사실 공고를 처음 봤을 때 어땠는지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무턱대고 '전공 분야 비슷하고 들어 본 회사의 포지션' 이면 무작정 지원했던 시절이었으니, 제대로 보지도 않고 이력서 PDF 를 업로드 했었겠죠. 그러다가 어느 날, 전화 면접을 보자는 이메일이 날아 옵니다.
이렇게 저는 Apple 과 면접을 보게 됩니다. 저는 이렇게 회신을 했네요.
(이 글을 쓰며, 저도 덕분에 제 기억이 하나 잘못 되어 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주변에 "학부 졸업 1주일 전에 석사 진학을 결심했다" 라고 말하고 다녔었는데, 그게 아니었고 2달 넘게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군요. 그러고 보니, 결심과 통보는 미리 학교 측에 전달했었고, 막판까지 학점 때문에 100% 확정이 아니어서 기말 성적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걸로 정정...)
어쨌든, hiring manager 였던 Ken 과 연결 되어, 전화로 면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화 인터뷰는 흘러 갑니다.
Ken: 너 ECE 전공이네?
me: 응 맞아요.
Ken: 나도 ECE 였어. 수업 뭐 들었니?
me: (속으로, "오~") 이거이거 듣고 있고, 전엔 이거이거 들었어요. 아, 그리고 2학년 때 (1편에 소개했던 악명 높은) Prof. Neuman 의 그 수업 듣고 너무 고생했었어요.
Ken: 아 맞아 그 할아버지 교수님. 나도 어쩌구저꺼구...
...
(이렇게 전화인터뷰의 상당 부분은 노가리 형태로 진행 됨. 어려운 질문은 하나도 없었음.)
...
Ken: 마지막으로 물어 보고 싶은 거나 할 말 없니?
me: 음...
...
(이 때부터 저의 면접 스타일은, 에라 모르겠다 있는 대로 솔직히 이야기 하자 로 굳어집니다.
me: 사실, 전 이러이러한 학생이에요. 학교에선 이런 것만 배운 것 같고, 밖에서는 이런 수준의 일만 해 본 상태이고. 그리고 솔직히 당신들이 써 놓은 job description 의 업무 내용은 배운 적도 없으니 하나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인턴십 기간이 길지 않을 거고, 그 동안 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은 가서 배워서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 am a fast learner.
Ken 은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는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와, 이 때의 안도감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실제 업무가 뭐가 됐든, 일단 첫 단추를 꿰었다는 생각에, 그리고 주변에 이야기했을 때 “아 그 회사, 들어 봤지” 라고 할 만한 인지도 있는 회사였으니까요.
물론, 그 때의 애플이 지금 수준의 회사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시절이죠. 여전히 underdog 이미지가 강했습니다. 어쨌든, 전 이렇게 실리콘밸리에서의 첫 발을 내딛었습니다.
제 인생 첫 major life decision 은 유학을 가자 였고, 두번째가 바로 이 '석사+인턴십 으로 미국에서의 시간을 더 벌어 보자' 였습니다.
인턴십으로 마음이 돌아섰던 이유와 당시의 thought process 를 돌아보면...
- 나는 한국 돌아 가기 싫다. 왜냐면 군대를 가기 싫기 때문이다.
- 어차피 유학생활을 몇 년 하면서 다른 시각으로 삶을 풀어 나가기 시작했다 보니, 한국에 남아 있는 사람들과는 인생이 diverge 하기 시작한 것 같다. 돌아가서 살아 봤자 다시 적응을 못 하지 않을까?
- 미국에서의 생활이 좋고, 어차피 대학교 들어오고 나서는 유학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철저히 미국인 외국인들과 어울리기로 결심을 했고 그렇게 잘 살아 왔기 때문에, 나 같은 캐릭터는 미국 사회에 graft 해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
- 학사 때문에 1년짜리 취업허가인 OPT 하나가 주어지는데, 이를 정직원 면접에 쓰기 위해 애를 쓰다가 정작 아무 것도 이뤄 보지 못 할수도 있으니, 차라리 한 호흡 늦게 가는 것도 미국에서 정착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
그래서 머리를 쓴 것 입니다. 석사를 추가하면, OPT가 하나 더 발급되니, 고학력자로 더 인정 받아서 안전하게 정직원 찬스를 노려보자, 라고. 그 만큼 군대가 진짜진짜 가기 싫었습니다.
저의 이런 꼼수를 막판에 가능하게 해 주었던 카네기멜른의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Integrated Masters and Bachelors 라는 3+2년 프로그램입니다. 컴공과 수업만 이어 들으면, 일종의 전문가 과정처럼 학력이 높아지고, 단 박사과정을 밟을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석사학위가 부여됩니다. GRE 를 볼 필요도 없었고, 연구와 논문발표를 할 필요도 없으니, 학생 입장에서는 취업에 있어 효율적이고 좋은 무기가 되고, 학교 입장에서는 학위 장사에 도움이 되고요. 저에게 너무나 딱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학기 시작할 때 서무과를 찾아가서 "저 이제라도 가능하다면 IMB opt in 하고 싶어요" 라고 부탁해서 전환했던 것 같습니다.
Wrong reason 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저로서는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가르치는 직업을 택할 상황이나 깜냥도 아니었거니와, ROI 측면에서 아주 좋은 투자를 한 셈이니까요.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렇게 너무나도 작고 specific 한 목적 하나에만 집중해서 큰 결정을 해 내야 한다면, 소탐대실을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사실 제가 그렇게 1년을 더 끎으로서 놓쳤던 다른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 기회비용이 zero 가 아니었을 것이고요.
또 타이밍과 운이 너무나도 따랐던 게, 2007년과 2008년 아시다시피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때문에 미국 경제가 휘청하면서 비자가 필요한 유학생은 물론 미국인들까지도 취업이 잠깐 어려운 타이밍이 왔습니다. 만일 제가 한 살이라도 늦게 태어 났더라면, 그렇게 녹록하게 인생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행운에게 감사해야 겠다고 다짐.
마지막으로, 여담.
저의 인턴십 JD 를 작성하고 올렸던 사람, 즉 일종의 인생은인 분이 누군지 나중에 우연히 밝혀졌습니다. Nest 의 공동창업자로도 잘 알려진 Matt Rogers 입니다.
몇 년 뒤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슬쩍 말해 주더라구요. “내가 그 때 그 잡포스팅 올린 거였다” 라고. 제 이력서를 Ken 에게 전달까지 했다니 뭐 말 다 했습니다.
Matt 역시 카네기멜른 출신이라 나름 제 선배인데, 대학교 때 Ken 의 절친 이었고, 같이 Apple 에 입사해서 (누가 누구를 꼬셨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음) 서로 옆 팀 매니저가 되어 사이 좋게 지내면서, 둘 다 각자의 팀원으로 모교 후배들을 여럿 뽑았습니다. 훈훈하죠.
암튼 이젠 너무 유명해졌고, exit 또한 잘 해서, 굳이 제가 사례를 해야 하나 싶은데, 나~중에 마주칠 일이 또 있다면 아주 맛있는 밥이나 한 번 사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