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게 새로웠고 생소했지만, 유익했던 인턴십
2014년 애플이 썼던 마케팅 문구였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됐네요? 3년 정도 전인 줄 알았더니.
"너만의 스토리가 뭐니" 라고 물으면서, 밖에 나가서 moments 를 캡쳐 하고 스토리텔링을 하라고 하는 그런 메시징 이었는데, 사실... 저 사진 속의 아저씨 처럼 아이패드를 누가 저렇게 들고 다니겠습니까.
2008년은 무려 12년 전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는 한데, 저런 멋드러진 생각으로 인턴십을 알아보지는 않았던 건 확실합니다. 어쨌든 합격 통보를 받고 그 해 6월에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어 정말 뛸 듯이 기뻤고, 이제는 safety net 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가득 찼습니다. 비싼 학비를 100% 다 내 가며 석사 학위까지 취득하기로 결정한 일종의 보람이랄까, 또는 '그래 패자부활전이라고 생각하고 동기들 전부 먼저 진출해도 나는 나의 국적과 처지가 있으니 1년만 더 늦게 대기만성형으로 실리콘밸리에 가서 살아(남아) 보자' 라는 긍정회로 이랄까. 당시 아마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10주 정도의 인턴 기간 동안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떠올려 보니 아래와 같네요.
- Cupertino 본사로 출근하며, 회사에서 잡아 준 Sunnyvale 의 intern housing 에 살아 보면서 '와 여긴 정말 boonies 구나' = 미국판 교외, 즉 도심과 시골의 중간의 느낌인 광활한 동네에서 처음 생활해 본 것
- 인턴 첫 주에 iPod 그룹의 소프트웨어 코드베이스 (repository 라고도 부르죠) 를 한 번에 다 날려 버릴 뻔 한 바보같은 실수를 한 것. 코드관리 시스템을 이해 못 한 상태에서 아무 거나 누르고 요청, 을 눌렀더니 1분만에 옆방에서 팀선배가 뛰어오며 "...너 지금 잘 모르고 그런 거지??" 라고 해서, 얼굴이 술 먹은 것 처럼 달아 올랐던 민망한 경험.
- iPod Nano 3세대 를 9월에 제때 출시하기 위해 주말특근을 그룹(약 300명) 전체가 같이 한 것. 출시 임박했는데, 소프트웨어 버그가 너무 많아서, Tony Fadell 이 그룹 전체 (=300여명) 비상소집을 하고, 주말특근을 간곡한 톤으로 요청한 것. 심지어 인턴들도 전부 나와서 도우라고 해서, 특별수당도 조금 받았던 듯. (와 그런데 2주동안 12일을 출근하니 별 거 안 한 거 같은데도 몸이 바로 반항을 하더군요.)
- 임원진들이 돌아가며 1주일에 1명씩 인턴 전체를 모아 놓고 허심탄회한 "what i do / AMA" 를 진행해 준것 - 특히 피날레가 none other than Steve Jobs 가 나와서 온갖 수준의 다양한 질문을 하나하나 성실하게 대답해 주신 것.
- 매니저 Ken 과 옆팀 매니저 Matt (Rogers, 네스트 창업자) 가 허구한 날 Nerf gun 을 들고 돌아다니며 "who broke it?" 라고 읊으면서 사람들을 "쪼으고 다닌 것", 하지만 그건 장난끼 넘치는 그런 애교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며 그들이 실제로 얼마나 일중독자 처럼 매일 매 주말 나와서 일이 좋아서 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는 리더십을 발휘한 것, 그리고 그들이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지금도 입에 붙은 (하지만 써 먹을 일이 별로 없는) "다 됐어? 그럼 Ship it!!!" 이라는 문구. 거기에서 배어 나오던, 무슨 일이 있어도 다 해결하고, 출시일을 맞춰야 한다는 그런 철두철미한 에너지와 집중과 우선순위를 강조했던 그런 풍토.
사실, 12주라는 기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닙니다. 방학 기간동안 인턴십을 해 본 분들은 다 그렇게 느끼셨을 것이고, 특히나 한국에서의 더 짧은 여름방학 동안 인턴으로 일해 보신 분들은 더욱 더 그렇게 느끼시겠죠.
그래서 실질적으로 뭘 얼마나 기여했냐, 라고 하면, 사실 코드 몇 줄 짜 보지 않은 것 같고, 그때그때 필요한 menial 한 코드 유지보수 위주 (정기적으로 차 세차하고 나사 조이기), 새로운 테스트용 코드 짜기 (시동 켜 보고 계기판 조작 해 보고 동네 한 바퀴 돌아 보고 오기), 그리고 새로운 부품이 공급될 때쯤에 맞춰 기존 코드베이스에 잘 호환 되는지를 잘 체크하고 끼워 넣기 (새로운 타이어 모델이 나왔다고 할 때 기존 휠에 잘 맞는지 끼워 보고 안 맞으면 휠을 손 보는 개념?) 등이었습니다. 즉 자동차 설계 자체에 손을 댄 건 아니라고 봐야 하는 거죠.
참고로 제가 맡았던 업무 분야는, firmware for storage 였습니다. 이게 뭔고 하면... 요새는 스마트폰도 그렇고 메모리스틱이드 어디든 저장공간이 있고 파일을 저장할 수 있는 그런 전자제품, 심지어 테슬라 전기차에도 스토리지가 있어서 (최근에 eMMC 노화 이슈 때문에 차가 먹통이 되고 했다는 그런 기사도 있는데 바로 그런 부품) 그 반도체 칩에 데이터가 잘 저장 될 수 있도록 가장 하드웨어와 가까운 레벨의 소프트웨어 코드를 짜는 그런 분야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인스타그램의 iOS 앱은 "후면카메라를 열어서 사진을 찍고 저장해 줘" 라는 iOS 코드가 심어져 있을 것이고, 그러면 그 코드는 결국 내려오고 내려와서 카메라 센서가 찍은 사진을 zero 와 one 으로 저장을 어딘가에 해야 겠죠? iOS 가 IMG_1234 라는 파일을 저장! 이라고 외치면, 그러면 저희가 짰었고 관리했었던 코드들은 그 ones and zeros 를 받아서 하드웨어에게 넘깁니다. 그 넘기는 일련의 코드를 storage firmware 라고 합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간 다리 역할이어서 firm 하다는...)
그래서, 삼성/하이닉스/도시바 등의 회사들이 공급해 주는 반도체 칩이 점점 더 용량이 늘어나고 좋아지면, 그런 칩을 삼성(무선사업부), 애플 같은 회사들에게 공급을 하고, 그러면 저희 팀은 그걸 받아서 기존 코드로도 그대로 잘 동작하는지 또는 코드를 변경해야 되는지, 를 관장하는 그런 조직이었습니다.
아무튼,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빛을 매일같이 몸으로 흠뻑 마셔 가며, 실리콘밸리에서 테크기업을 위해 일하는 것이 대충 어떤 느낌인 지를 체험하는 소중한 여름이 되었습니다. 인턴십을 마친 후, 저는 다시 5번째 academic year 를 맞기 위해 피츠버그로 돌아갑니다. 당시의 생각이 잘 기억나진 않지만, '재밌었고 다시 돌아 올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돌아 온다면 좋을 것 같긴 하다' 의 잔상이 머릿속에 있습니다. 어쨌든 1년을 더 공부해서 석사 학위까지 따기로 했으니, 그 다음 목표에 집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이제는 떠나 버린 학부 친구들과의 추억을 살짝 그리워 하며, 남은 두 학기를 치르러 카네기멜른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To be continued)
여담.
사실 인턴십을 얻기 전까지는, iMac 을 학교 실험실에서 써 보기만 했지, Apple 이라는 기업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게 없었습니다. 심지어 Steve Jobs 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그냥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기업인 이라는 존재 였습니다. 그래서 인턴십 합격 후, 속성공부를 위해 history of Apple? 류의 제목 책을 아무거나 사서 정독하고 갔던 생각이 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