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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bae lee Feb 12. 2021

미쿡공돌이에서 VC가 되기까지 (4)

변곡점의 Apple, 변곡점 인생

(Illustration by Susan Care, via "Apple’s “Pirates Of Silicon Valley” Flag Gets Rehoisted")


전번 글에서는 인턴십이 어떻게 흘러 갔는지에 대해 일부러 잔잔하게 썼습니다. 왜냐면 이번 글에 알짜 내용을 몰아 넣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기업문화 이야기도 해 보고, 인생 최고로 흥분되었던 순간 이야기도 있습니다.


Apple 은 지금은 2 Trillion Dollar Company 로, 그리고 다양한 제품군과 서비스 오퍼링의 진용을 갖춘 초대기업으로 진화해 버렸지만, 제가 몸 담았던 2007년~2010년 시절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여전히 "We are pirates!" 라는 정신으로 여전히 무장한, 몇 개 되지 않는 하드웨어제품 위에 seamless 한 소프트웨어경험을 제공해 주는, niche 브랜드였습니다. 주가를 살펴 보면, 제가 인턴십을 시작하기 전 $3 수준에서, 아이폰 출시 직후 $6 정도로 뛰고, 시간이 흘러 현재 $130 이상이고...


... 당시 전 재산을 몰빵 했었으면 지금 나는 뭘 하고 있을까 하는 상상... 하지 않아야겠죠. 현재에 집중하자!!


짜릿했던 그 탄생의 순간


진짜 제 인생에서 최고로 강렬하게 남았던 순간들을 몇 가지 꼽자면, 단연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확정되었을 때 길거리로 뛰쳐 나간 추억도 있었지만, 2007년 여름, 6월 28일,  Apple 에서 있었던 내부 전사 미팅을 뺄 수가 없습니다. 이 날은 다름아닌, 바로 모두의 인생과 수많은 업계를 바꾸어 버린, the original iPhone 출시 하루 전날이었고, 저는 그 때 그 장소에 있었습니다.


인턴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비상 전원 소집" 미팅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저는 iPod 그룹 소속이었으니, Mariani One 건물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갑자기 모두가 우왕좌왕 하며 다 같이 이동을 해야 한다고 해서 같이 따라 나갔습니다. (제 기억이 확실치는 않은데, 길을 건너 '본사 건물' 인 Infinite Loop 어딘가로 가서 우리 대회의실 보다는 더 큰 회의실인 공간에 들어가서, 프로젝션 스크린 앞에 앉았습니다.) Steve Jobs 가 회사 전체 대상으로 발표를 할 내용이 있다는 것만 들었고, 다들 '뭘까?' 를 궁금해 하며 웅성거렸습니다. 조무래기 인턴이었던 저 같은 사람은 무슨 일인지 전혀 알 길이 없었고, Steve 를 처음으로 live 대면할 수 있던 자리여서 아주 신기하기는 했었겠죠.


그 유명했던 "삼위일체" 프레젠테이션. 아이팟, 전화, 인터넷디바이스.

그리고 그 분은 결국 주머니에서 그 녀석을 꺼내셨습니다. 다음 날 있었던 공식 Announcement 프레젠테이션을 거의 그대로 했었고, 조금 더 personal 하고 emotional 한 목소리 톤이었던 것 같은데, 검증할 길이 없으니 그냥 그렇다고 하겠습니다.


"짠" 하고 꺼내 보여 준 그 순간, 온 회의실 그리고 애플 캠퍼스는 떠나갈 듯한 환호성으로 들썩 했습니다. 제 등골에는 진짜로 전율이 흘렀습니다. 와 이게 진짜야? 대박이네. 이거 뭔가 앞으로 엄청난 놈이 될 것 같다.


(환호가 잦아 들고, 마지막으로, Steve 는 "전 직원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1년 이상 일한 정직원 모두에게 한 대씩 선물로 증정 드린다" 라는 팬서비스?로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더욱 더 떠나가라 박수치고 발을 구르고 동동 뛰면서 기뻐했습니다. 저희 인턴들은 '어? 그럼 우리는?' 하면서 아쉬운 마음에, 결국 사무실로 복귀 후 HR에게 우리도 주면 우리가 학교로 돌아가서 열심히 홍보를 해 주겠다는 논리로 설득을 해 보려고 했으나, 결국 장렬히 실패하고 제 돈 주고 아이폰을 샀었네요. 너무너무 섭섭했지만 그래도 금방 잊혀졌습니다. 그만큼 폴더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넘어 온 경험이 너무나 좋았으니까요.)


S급은 S급만 뽑고, A급을 뽑지 않아야 한다


언제 누구에게 들은 표현인지는 모르겠고, paraphrasing (의역? 아 '어휘 변용' 이라고 해야 하네요)을 한 걸 수 있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If you start compromising when hiring, then 1st tier starts hiring 1st and 2nd tiers, and then when the 2nd tiers become managers, the 2nd tiers start hiring 2nd and 3rd tiers. That is something we do not want." 그래서 면접 보는 과정이 상당히 빡세었습니다. 저도 2년반의 기간 동안 실무면접관으로 여러 차례 면접에 참석했었고, 저희 팀 뿐 아니라 옆팀 면접에도 참여해 주곤 했는데, 2인1조로 1시간씩 돌아 가며 2~3일 면접을 보게 한 후보도 여럿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서 제가 S급 프로그래머였기 때문에 애플에 입사할 수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절대 아닙니다. 전편에도 이야기 했듯이 저는 인턴으로 먼저 시작해서 정직원으로 나중에 입사를 할 수 있었고, 정확한 스토리가 어떻게 되냐면, 석사 과정을 1년 얹어 하기 위해 학교로 복귀한 후, 가을학기 동안 수업과 취직 노력을 병행하다가, 결국 '내가 이렇게 여러 다른 기업들을 또 태핑해 볼 필요 있나, 어차피 나의 실력의 한계는 있고, 새로운 회사와 새로운 면접 프로세스를 탄다면 또 다시 나 자신을 어필해야 하고, 서로 알아가는 과정과 허들을 넘는 그 노력을 해야 하는데. 차라리 다시 애플로 돌아간다고 이야기나 해 볼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Path to least resistance 라고 할까요. 그래서 Ken 에게 전화를 했고, "저 다시 정직원으로서 돌아가서 정식 합류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를 물어봤었습니다. Ken 은 아주 놀라는 반응이었죠. "... 너 여기에서 재밌게 일했었니? 전혀 몰랐지. 이야기를 안 했었잖아."  


암튼 이 "탑 퀄리티 인재만 뽑는다"는 채용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좀 더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애플에서 일하면서 또 한 가지 눈에 띄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는 미국에서도 학연이라는 것이 은근히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Matt 이 채용공고를 자기 모교에 올린 것도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고, Ken 이 저라는 후배를 뽑은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내가 제일 잘 아는 학부프로그램에서 배출된 사람은 (평타만 쳐도) 준수한 편이라고 믿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플에 입사한 후 둘러 보니, 은근히 그런 케이스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미국은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아무리 큰 회사라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locality 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동부에서 사람을 뽑아 올 때는 잘 알려진 엔지니어링 스쿨 위주로 뽑고, 그게 아닌 경우에는 서부의 별로 유명하지 않은 학교들에서도 실무진 레벨을 꽤나 우르르 뽑는 경향이 있어 보였습니다. 아마 마찬가지로, 한 명이 매니저가 되고 나면 자기 팀에 두고 쓰기 편한, known factor 들이 더 높은 사람들을 뽑을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러다 보니, 특히나 (제가 주로 들어갔던) 경력직 후보 면접을 볼 때엔 아주 타이트하게 검증을 하려고 했던 것 같고, 코드를 짤 때에도 주도적으로 짤 수 있는 사람들을 많이 뽑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맡았던 분야가 아무래도 앱개발 이런 수준의 프로그래밍 보다는 좀 더 운영체제에 가까운 코드를 짜는 프로그래밍이다 보니, 좀 더 책임감이 막중했기도 해서일 가능성도 높네요. 왜냐면 코드 한 줄을 잘못 짜면, 수천만 대를 찍어 내는 아이팟/아이폰 공장이 stop 되고, 그런 기기들은 영영 부팅조차 하지 못 하는 그런 치명적인 손해를 야기할 수도 있어서, 더 깐깐하게 사람을 뽑고 코드를 관리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보안은 시스템이 아니라 마인드이다


극성스런 비밀주의로 유명한 애플이죠. 최근에 현대기아차 이슈도 보면, 진짜 내막이 뭔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데, 뭐가 됐든 현대기아차 입장에서 또는 한국 입장에서 비밀주의를 최고로 우선시하는 애플의 기업문화나 심기를 건드렸을 가능성은 제가 봤을 땐 90% 이상입니다.

그리고 보통 제품 출시를 앞두고 '신제품 사진 정보 유출' 등의 기사가 이제는 너무 많이 나와서 식상하기도 한데, 어쨌든 세간의 관심을 받는 그런 제품발표들을 앞두다 보니, 임직원들은 더욱 더 보안에 신경쓸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출근을 시작하고 나서 정말 놀라운 부분을 경험했습니다. 뭐냐면, 정말로 보안이 허술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보안은, 임직원이 드나들 때 또는 외부인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을 때 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금속탐지기나 엄중한 보초 그리고 여러 단계의 인증 등을 애플에서는 볼 수 없었습니다. 물론, 기본적인 보안데스크 및 경비 등은 있었죠. 하지만, 그렇게 비밀주의로 알려진 기업이 실제로는 물리적인 단속을 하지 않는 것인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하는 궁금증이 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제 경험과 이야기는 10년도 넘게 된 버전이고, 또 요새 신규 사옥/캠퍼스인 Apple Park 로 가 보면 훨씬 다르게 설계되어 있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기억 또한 확실치 않으나, 누군가에게 들은 바로는, "보안은 다른 게 아니다 임직원의 마인드 속에 있는 것이다" 라는 표현을 어느 날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아하!' 모먼트가 왔었구요.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죠. 아무리 삼엄한 철통보안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취약점이나 뚫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찾아지는 게 보안의 헛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애플에서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해서 뭔가 기밀이 밖으로 새어나간 적이 역사상 거의 없습니다. 있었다면 대부분 협력사의 비(non) 중책을 맡은 인력이 몰래 기밀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취해서 제품사진이 유출되는 등의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진짜로 임직원의 탓에 제품 정보가 유출되었던 경우가 제가 기억하는 내에서 딱 한 번 있었는데, 아이폰 엔지니어가 필드테스트를 위해 들고 다녀야 했던 아이폰 5세대? 프로토타입을 실수로 흘린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엔지니어는 자신의 실수를 인지한 순간 바로 매니저에게 보고하는 등의 모든 취해야 할 행동을 취했고, 회사 차원에서는 이를 실수로 인정하고 결국 별 문제 없이 계속 근속을 하게 해 주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편의 맛배기를 미리 보여 드리자면, 결국 저의 그 다음 직장과는 너무나도 다른 그런 회사 운영철학이고 방침이었습니다. 애플에서는 사원증 한 장만 차고 다니고, 문을 두세개 스스로 열고 들어가면, 바로 다음 제품이 버젓이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이를 마음만 먹으면 들고 나가서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스르륵 빠져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습니다만, 모든 임직원의 머릿속에는 '이건 내 새끼나 마찬가지인 그런 제품이고 비즈니스인데 내가 왜 이걸 유출을 해?' 라는 양심+주인의식이 항상 같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삼성은... 에헴. 다음 편에 제대로 적어서 올릴게요. :)




이런 점들을 두루 고려했을 때, 애플에서의 시절을 회상해 보면, 한 마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에 대해서는 그 후에도 두고두고 생각을 많이 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애플 다녔었어요? 어땠어요?" 라고 하면 제가 이야기하는 여러 버전의 설명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제조업이니까 삼성 만큼 딱딱하고 타이트한 부분들도 있다, 야근이 적지도 않다" 등의 이야기로 넘어 가기도 하지만, 뭔가 본심을 이야기해 줘도 된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겐, 좀 더 고민의 결과값을 들려 주고는 합니다:

"정말로 제품 중심의 회사이고, 그런 마인드를 가진 탑중의 탑 인력들만 뽑아서 제품을 잘 만드려고 하는 게 위에서 아래 직원까지 꽉꽉 차 있는 그런 회사인 것 같았어. 즉, 'ABC 라는 제품의 제일 이상적인 형태와 구현은 이래야 한다' 의 고민의 결정체를 세상 누구보다도 더 깊게 생각하고 잘 만들려고 하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그런 회사인 것 같아. 그리고 그 것에 최적화되어 있는 그런 조직구조인 것 같고. 그 중심과 가장 위에는 정말로 Visionary 한 리더가 모두를 이끌고 있었고, 다들 우러러 보는 그런 기업이었어. 참 보기 힘든 그런 탑다운 이상적인 경영체의 표본인 것 같아."


정말 잘 할 줄 아는 것들을 깊게 팔 수 있는 수준까지 파들어 가서 만들어 내는 그런 일종의 신기를 발휘하는 기업은 세상에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또 뭐가 있을까요? Porsche? Leica? YKK? :)

참, 저는 삼성전자 반도체는 정말로 그 정도 레벨의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외계인들을 뽑아서 차세대 공정을 개발시킨다, 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요.

물론, 탑 리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록 그 리더가 없어지게 되면 리스크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잡스는 쿡이라는 너무나 훌륭한 후임을 잘 선택해서 애플의 미래를 맡겼던 것 같습니다.


기타 메모들, 추억들, 에피소드들


실제로 이런 문구가 적힌 웰컴 노트를 입사 첫날 오리엔테이션 때 줍니다.

정말 가슴이 벅차 오르는 그런 문구입니다. 실제로 저도 그랬습니다.

(요새도 주겠지?)


그리고 별 "교육" 또는 "온보딩" 없이, 첫날 점심 전에 바로 현업으로 보내고, 각 팀 매니저가 알아서 챙기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첫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크으. 이런 격려의 글 말고 또 무엇이 필요한가. (... 필요하긴 하지, RSU, 스톡옵션, 복지와 혜택 등...)




애플 다녔다고 하면, 제일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스티브잡스를 실제로 봤어?"


ㅎㅎㅎ. 실제로 3번 정도 봤습니다.

앞서 인턴십에서 전체 대상으로 강연을 해 줬을 때, 제 눈앞에서 진솔한 이야기들을 해 주셨고, 그 때는 정말 존경스러운 모습 밖에는 없었던, 그런 생업일치의 극치를 보여 주는 위대한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Q&A가 끝나고 나가실 때, 제가 복도 쪽에 앉아 있었는데, 지나가시는 그 분의 옷자락이라도 손을 내밀어 잡아 보고 싶은 그런 충동도 솔직히 살짝 있었더랬습니다.

그 외엔 카페테리아에서 한 번, 그리고 또 언제더라...


그 외에, 유명인사들 누구를 더 봤냐면, 쌩뚱맞은데, Maroon 5 를 봤었습니다.


1년에 한 번, 학교로 치면 운동회, 기업으로 치면 창립기념행사, 이런 느낌의 행사가 있었는데, 그 때  Adam Levine 과 멤버들이 날씨 쾌청한 South Bay 의 햇살을 쬐며,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불러 주던 그런 즐거운 추억이 있습니다. 정말 라이브공연을 녹음된 곡 마냥 잘 부르더군요. 미쿡 스타는 괜히 스타가 아닌가부다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애플이 진짜로 완벽한 직장이냐, 라고 하면, 절대 아닐 겁니다. 제가 더 오래 다녔었더라면, 어떤 견해나 또는 episodic learning 이 있었을 지는 모르죠. 하지만 너무 짧게 있었기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쓰지 않겠습니다. 뭐, 아직도 매니지먼트 레벨에서는 diversity 가 많이 보이지 않고, 또 소프트웨어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잡스옹이 살아 계셨을 때처럼 완벽에 가깝지는 않은 그런 이슈들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또한, 현재 다니고 있는 사람들 또는 최근에 다닌 사람들 이야기로는, 이제는 너무나 대기업화가 되었기에, 대기업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정치/비효율/실수 등의 에피소드도 많이 있다고는 합니다. 대부분은 사람이 많아지니 어쩔 수 없는 시스템 또는 휴먼에러에서 기인한 것들이라고 봐야겠죠.


다시 저로 돌아오면.

어쨌든 2년 반이라는 시간을 애플에서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전세계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에 속해 있다, 라는 그런 무언의 positive & constructive 압박이 항상 있었습니다. 진짜로 진지하게 일에 임하고, 사랑하고, 불량률 제로와 완벽의 품질이 아니라면 별로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믿는 사람들 속에서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말단 사원 수준의 Individual Contributor 였고, 코드를 많이 짜는 그런 기여도와 중요도 높은 사람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취업비자 H1B 와 나중에는 sponsored green card 신청 프로세스까지 받아 가며 오래오래 애플에 남고 싶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미국에 남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더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 이런 제품 만드는 회사에 있어요" 라고 설명을 하면, 아이팟이라는 제품이 그렇게 보편화 되어 있지 않는 한국에서도, 아 거기 들어 봤지 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업계 밖에서는 그렇게 인지도가 높지 않았기에, "카네기멜른대학 다녔어요" 라고 말했을 때보다 좀 더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팟 개발에도 참여했고 아이폰 개발에도 참여했어요 같은 부품과 비슷한 코드를 쓰거든요" 라고 하면, 아 진짜? 라고 해 주며 더욱 더 신기해 하는 그런 느낌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향후 풀렸던 커리어 상의 순서를 돌이켜 봤을 때, 첫 단추 하나를 정말 잘 꿴 느낌입니다.

그 덕에 지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운과 타이밍이 정말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애플 시절 모았고 받았던 memorabilia 사진들 입니다. 간만에 다시 페이스북에 올려 두었던 옛날 사진들을 찾아서 올려 봅니다.


제품 출시 후, 실제로 상업적 배포용으로 만든 포스터들을 회사 내에 넉넉히 나누어 주는 그런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니저들이 여러 장을 갖고 돌아 다니며, 아무나 집에 갖고 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집에서 벽에 걸어두거나 장식으로 쓰는 포스터들은 아지까지도 저들밖에 없네요. 아, 오바마 1차 대선 포스터도 하나 찜해뒀었지 참.


그리고, 저 밑에 보이는 작은 포스터가 뭐냐면요.

저의 가보라고 할 수 있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팟 사업부만의 특별한 전통인데, 위의 제품 포스터를 각 제품의 소프트웨어 PM 이 갖고 돌아다니며, 개발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서명을 받고, 그 포스터를 축소복사 해서 모두에게 가질 수 있도록 나누어 줬습니다.

정말 찐기념품 이라고 할 수 밖에 없죠? :)


저의 서명이 저기 둘 다 어딘가에 있습니다. 찾으시면 밥 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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