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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Nov 10. 2019

그냥 아무나 되면 안 되나요?

사실 아무나 가 되는 것도 쉽진 않습니다. 





브런치는 글 쓰는 사람을 위한 플랫폼이라, 작가를 꿈꾸는 사람의 비율도 높다. 그래서인지 작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자주 무라카미 하루키 이야기를 하더라. 하루키도 이렇게 했다는데, 하고. 그에 비견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건축을 언급하는 사람들은 또 자주 안도 타다오 이야기를 한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도 저렇게 훌륭한 건축가가 되었다니! 하고. 


두 사람 모두, 평범하고 정석적인 교육을 밟지 않고, 독특한 이력으로 해당 직업의 최고로 꼽히게 되었다. 어느 방향에서건 정규 교육을 통하지 않고 어느 자리에 올라선 사람들은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다는 엄청난 특장점이 있다. 그러나 바꾸어 말하자면, 사실은 그렇게 정석을 밟지 않고 그 정도의 위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수만 명의 작가와 건축가중에 단 한 명씩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좋아하지 않았다. 선물로 뭐 사줄까? 하면 엄마 손을 붙잡고 집 앞의 동네 서점에 달려갔던 나는, 보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기를 좋아했다. 정말이지 재밌는 책만 보고 싶었으니까. 그래서 전집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위인전을 특히 싫어했다. 엄마, 나는 위인전이 너무 싫어. 그때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대체적으로 통용되는 위인전만의 세계관이 싫었다. 위인전 속의 모든 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남다른 천재였고, 그래서 잘 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 가끔은 노력 이야기도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인물의 사후에 그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 는 식이었다. 위인전 속의 여자는 현모양처의 대표인 신사임당과 장애를 극복한 퀴리 부인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평범한 사람들은 위인전에서 무엇을 배웠어야 하나. 그들도 저리 했으니, 나도 저렇게 되리라는 희망? 


글쎄, 오히려 천재로 태어나지 않았으니, 위인전에 나올 법한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절망에 더 가깝지 않을까. 애초에 별로 가능성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성공한 인생일까? 인구의 몇 %가 소위 성공한 인생을 살까. 1%는 커녕 0000.1%나 될까. 




유명한 누군가가 어떻게 했다고 해서 그들을 따라 가면 어떤 희망이 생길 거라고 믿지 않는다.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많이, 세상의 거의 모든 일은 상당히 결과론적이다. 그들이 특별한 성과를 이루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모든 평가는 사후에, 혹은 이르더라도 무엇이 결정 난 뒤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러이러한 고난을 이겨내고, 결과적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고난은 꼭 필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우연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가진 행운을 어떤 사람은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결코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는 내부의 어떤 심경 변화와 사정이 그들의 삶에 숨어있는지는, 그 사람의 가족 정도가 되지 않는 이상(혹은 그보다 가깝더라도) 알 수 없다. 


언젠가 예능에서 이효리가 꼬마 아이에게, 누군가가 '훌륭한 사람 되어라' 하는 얘기에, 뭐 훌륭한 사람이 돼, 그냥 아무나 돼. 라고 하는 말이 그렇게 속 시원할 수가 없었다. 아무나 되면 어떤가. 나쁜 짓만 하지 않으면 되지. 훌륭한 사람이라니, 그게 세상 사람 중에 몇 명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꿈을 크게 가져야 근처에라도 간다는 말도 있지만, 이제는 꿈이 꼭 필요한 거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게, 우리는 꼭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강요받으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 실은 안도 다다오나 하루키만큼 유명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훨씬 높은 확률로 가능한 시나리오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동시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다. 뭐야,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 같은 생각을 한다고? 그것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걸까, 아니면 남들이 다 그렇다니까 그저 동조하는 것뿐일까. 베스트셀러라면 굳이 읽어야 하나 싶어 진다. (물론, 베스트셀러 중에 좋은 책도 많다.) 사람들이 자꾸 하루키 이야기를 하고 안도 타다오 이야기를 하면 왠지 비뚤어진 시선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아니, 왜, 굳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 사례를 자신에게 빗대. 하긴, 그래서 소재거리가 되는 것이기도 하지. 



모르겠다. 커다란 꿈을 꾸며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꿈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도, 꿈이 뭔지 잘 모르겠는 사람들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자꾸 커다란 꿈과 이상향을 가진 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보니, 나는 늘 불행했다. 1을 얻어도, 이제 행복해?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아니, 아직 2도 3도 남았잖아. 하는 식이었다. 작은 성공에 기뻐하고 스스로를 위로할 줄을 몰라, 무엇을 이루고도 그다음 걱정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 이제 더 이상 스스로의 꿈에 잡아먹히지도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목적 없이 무의미한 인생을 살아가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공존할 수 없는 이상일까.


사지선다형의 정답에 길들여져서, 인생의 모든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하면 답과 비슷한 결론을 찾을 때까지 헤매곤 했다. 이해가 가지 않으면 이해가 될 때까지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일종의 강박증 같다. 인생엔 답이 없어. 어딘가 비뚜름한, 이가 맞지 않는, 흐릿한 무엇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하는 법이야. 매일매일 타이르고 다독여도 어림없다. 자로 재고 싶다. 모서리와 꼭짓점을 재어 아귀를 맞추고 싶다. 안개를 걷어 또렷한 상을 보고 싶다. A=A면 좋겠다. 



그래도 답은 없겠지. 안다. 그저 솔직히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허황된 꿈에 잡아먹히지도, 그렇다고 가라앉아 부유하지도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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