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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Oct 25. 2019

글쓰기가 뭐라고,

더 잘 쓰고 싶어서 브런치를 읽다가 든 생각들.





한때는 책을 읽을 때마다 소설이나 에세이에서 사람을 '김'은, '박'은, 하고 성만을 부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A는, B는, 하고 한글과 그닥 어울리지 않는 알파벳을 붙이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심지어 'B'를 '비'라고 굳이 한글로 적는 글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에세이를 읽을 때면 입 속으로 '비는.. 비는..' 하고 중얼거리곤 했다. 낯선 느낌이라서. 그런데 요즘에는 그렇게 인물을 구분하고 정렬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특히 에세이의 경우라면 실명을 밝힐 수 없으니 누가 누구인지 구별하기 위해서겠지. 나도 어느새 글을 쓰면서 타인을 언급할 때에는 알파벳을 주로 쓰게 되었다. 




언제나 글을 쓰면서 감정을 토해내거나 써 내려가는 데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그것은 비공개로 남은 일기였으며, 누군가와 소통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감정을 비워내느라 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실명은 그대로 글에 적혔고, 나는 거리낌 없이 솔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었다. 


그러던 것이, 플랫폼을 옮겨오면서 조금 달라졌다. 글 속에서 누군가가 인간관계나 사정에 대해 호소할 때, 그 반대편의 상대를 잠시나마 생각한다. 그 사람은 자신이 글에 이렇게 소환되었다는 사실을 알까, 알면 어떤 기분일까. 그쪽은 그쪽 나름의 입장이 있겠지.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절대 보이지 않을 시선이겠지만. 글 속의 사연은 과연 한쪽 편만의 잘못이었을까. 현상의 이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인생의 많은 순간, 스스로가 피해자로서 상황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해자의 역할을 한 기억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러나,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인식하지 못한 순간들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었겠지.


피해의식은 나쁜 걸까. 자신이 피해자였음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될까. 피해자가 피해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 한들, 피해의식은 그저 변질된 고정관념 같은 걸까. 누군가가 그거 피해의식 아냐? 하고 지적을 한다면, 나는 꼼짝없이 멈춰서서 어,,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더 이상 나의 아픔과 힘듦에 대해서 불평하거나 이야기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림이 그려지듯 쓰인 이야기는 좋은 글인가. 그것은 소설이건 에세이이건 상관없이 같은 기준으로 판단될까. 작가로서의 쓰기를 생각해본 적 없는 나는 이 플랫폼에서 자주 작가로서의 글을 쓰려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역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게 필요하구나, 이렇게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생각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려 노력하는구나. 사람들이.


확실히 브런치를 시작하고, 블로그에 쓰는 일기의 내용이 줄어들었다. 좀 더 억울하거나 멜랑꼬리한 기분을 죄책감 없이 적고 싶을 때 쓴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싶다가도, 돌아서면 그 뼈와 살을 다 잊고 제목 하나만 생각난다. 다시는 그때 했던 생각을 그대로 할 수 없어서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얼마나 애달파지는지.




소셜 네트워크의 시대가 되면서 느끼는 죄책감은 그런 것이었다. 주변의 지인들이 나라는 사람의 우울한 면만을 보고 싶지는 않겠지. 어둡고 비관적인 면만을 자꾸 드러내면 사람들이 떠나겠지. 그런데 나는 밝고 천진난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럼 어떻게 해야 해? 좋은 사람이 되고자 웃는 얼굴의 가면을 쓰다가 지치면 벗어던지고, 다시 기운을 내어 가면을 주워 쓰고 나서도 아차 하는 순간에 집어던지기를 수십 번. 어떤 색도 아닌 회색의 인간처럼 나는 내가 누구인지를 잘 모르겠다. 공인이나 연예인처럼 대중에게 오픈된 사람도 아니면서, 죄를 짓지 않고 욕을 먹지 않고 튀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야 할 것 만 같은 압박을 느낀다.




책을 좋아했다고 해도, 국문과나 문창과를 생각할 만큼 문학청년이었던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시를 쓰는 동아리에 들어가려 했던 것은 동아리 선배를 짝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지, 시를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에세이나 소설 파였다. 대학생이 되어 '지식을 넓혀야지, 문학은 다 쓸데없는 거 아냐?' 하는 실용주의 언어를 주변에서 듣기 전 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소설가 지망생이나 실제 에디터/편집자나 방송 작가 출신의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의 디테일에 즐거워하면서도 아 나는 저렇게 까지는 쓸 수 없어 전문가가 아니니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일기는 누가 나를 판단하고 재단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즐거웠는데, 자꾸 더 잘하고 싶어 지면서 점점 망설이게 된다. 누군가가 넌 못해, 비난할까 봐. 그게 그렇게나 두려웁다. 글쓰기가 뭐라고.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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