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대
처음 국가 봉쇄(lockdown)가 끝날 것으로 예정되었던 2020년 4월 말, 네덜란드는 부활절과 King's Day를 지나면서 길거리의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실질적인 락다운은 5월 말까지 연장되었고, 공식적으로 모든 공공장소와 대중이 모이는 이벤트는 9월까지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람들은 이 생활에 익숙해진 건지 그저 지겨운 건지 국가 수준의 격리에 더 이상 개의치 않는 것 같다. 그것은 말도 안 되게 따사로운 햇빛이 가득하던 지난 5주 간의 날씨 덕분이기도 한데, 원래 봄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비가 와야 정상인 이곳에서 전 국민이 자가 격리에 들어가 있는 시간 내내 비 한 방울이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었을 정도이니. 자연에게야 고단한 일이겠으나, 사람들은 햇빛이 나는 것만으로 신이 나서 인당 1.5m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 3인 이상 모임 금지에 강력한 벌금을 내리겠다고 해도 다들 바깥으로 슬슬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하루만 800여 건의 벌금이 메겨졌다고 하니, 하.
아직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괜찮다 주장하는 정부를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정책에서 커다란 선회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당장 무역/상업 국가인 이곳의 경제가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없으므로 (심지어 바이러스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보다), 그들의 현 정책이 최소 그들에게는 최선이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밖에서 이러니 저러니 해 봤자, 이 나라에서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이 나라 국민들이고, 최소 더치들은 정부의 결정에 커다란 의문을 갖고 있진 않은 것 같다. 주로 본국의 정책과 비교 가능한 인터내셔널들의 항의와 불만이 더 큰 편이다.
코로나가 터진 후에 많은 사람들이 자국으로 떠났지만, 여전히 생활 기반이 이곳인 장기 거주자들은 남아있다. 당장 경제가 무너져 내린 이 상황에서 다들 자구책을 구하느라 바쁘고 여념이 없을 따름이다. 문화예술계는 완전히 무너져서, 다들 패닉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깎이는 것이 문화예술 예산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일종의 사치재일 테니까. 대부분의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프리랜서이거나 단기 계약을 하기 때문에, 모든 공공 이벤트가 금지되고 락다운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제 바이러스보다 당장의 끼니 걱정과 경제의 파산을 더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서양/유럽인들이 선진국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라는 단순화된 문장을 지지하거나 곡해하고 싶지 않다. 단순한 상황에 대한 묘사도 맥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느껴왔기 때문이다. 일단, 유럽은 사실 EU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이는 것보다 묶이지 않는 특성과 다름이 훨씬 더 많다. 또한, 이번 판데믹을 통해 생각보다 서구인의 시민의식이 낮더라고 단정 짓기보단, 그들이 살아온 삶과 사회적 인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 뿌리에 기반한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대응책은 우리와(동양/혹은 한국) 같을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당장 물량이 없어 마스크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는, 그리고 마스크를 쓰는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는 한국이나 중국처럼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감염 경험이 있는 나라와 애초에 대응 방식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리고 사회 특성상, 한국이나 싱가포르처럼 국가가 나서서 바이러스의 동선과 격리를 직접 관리하기도 어렵다. 실질적인 프라이버시 문제는 유럽에서 상당히 민감하고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오히려 싱가포르나 한국식의 효율 중심 방역에 '감시 사회'라며 클레임을 거는 것이다.
게다가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시작되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외의 한국, 홍콩, 대만 등의 주변 아시안들까지 싸잡아 인종차별적 언어를 쏟아내던 유럽인들은, 이탈리아에서 급작스럽게 확진자와 사망자가 늘자, #pray for italy라며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로남불은 어디나 똑같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차이나 바이러스라고 발언할 때, 속 시원하다 외칠 일이 아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그것이 단순히 중국인 만을 향하는 것이 아닌, 근처 동아시아 국가 출신 아시안들을 통째로 인종 차별하도록 만드는 구실이 된다. 안에서 보는 시선과 바깥에서 보는 시선의 차이는 이렇게나 극명하게 다르다.
그러므로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히 기사 몇 줄 만으로 어떤 나라의 정세나 정책에 대해서 속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쏠 때마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또 시작인가 싶은 마음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오히려 국제 정세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들은 전시 관련 위급 상황이 아닌지에 대해 궁금해하고 우려를 표한다. 유럽에서 테러가 날 때마다 한국에서는 당장 큰일이 난 것으로 생각하지만, 오히려 이곳 사람들은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테러리스트들이 원하는 일이니 순순히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평소 같은 삶을 영위한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실행되는 코로나 대응책과 관련 정책들은 이 나라의 맥락 안에서 소화시켜야지, 타국인의 눈으로 바라봐야 의미 없는 해석이 될 뿐이다.
종종 한국 포털에서 해외 뉴스를 보다 보면 자극적인 단어로 시선 끌기 하는 뉴스가 많은데, 막상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하게 맥락이 다르다거나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들이 묶여있다거나 하는 오류를 종종 목격한다. 유럽의 국경 봉쇄 및 격리가 시작되던 시점에 어떤 한국 미디어 기사에 이용된 텅 빈 거리의 가게 앞에 줄 선 더치들을 찍은 사진은, coffee shop으로 불리는 대마초를 취급하는 가게 앞에서 대마초를 take-out 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기자는 카페인 줄 알았나 보지만, 천만의 말씀. 네덜란드에서는 커피를 koffie로 부른다.
개인적으로 이 나라의 집단 감염(Herd Immunity) 이론에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무역과 교통의 중심지로 경제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들(그래서 심지어 신용카드 대신 현금 직불카드만 사용되는 나라다!)에게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지도 모를 일이다.-합리와 최선이 같은 의미일지는 모르겠지만- 다만, 그렇게 경제에 민감한 더치들이 5월 말까지 락다운을 연장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단 이야기인데도 이 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바이러스의 국가 재난적 심각성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락다운을 멈추고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집회가 열렸다. 드러난 현상을 비판하는 (특히 외국인의) 목소리는 많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자유방임'에 정점을 찍은 교육을 받으며 자라오기로 유명한 나라 사람들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타국에 오래 살아도 나는 그저 한국인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한국인일 수밖에 없겠지. 길거리 여기저기 쏟아져 나온 사람들에게, 저기요, 아직 안 끝났는데 이러지들 맙시다. 말리고 싶은 마음이 잔뜩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