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일상의 유일한 낙(樂)입니다

2020.05. feat. 스콘, 치즈 케이크, 레몬 머랭 타르트

by 틂씨





지금 누가 내게 일상의 기쁨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햇볕을 일정량 이상 받을 수 있으며 밥을 굶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삶이 단조로워졌다. 인생의 낙(樂)의 다채로움도 함께 줄어들었다. 즐거움을 얻기가 어려워졌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 낙은, 대게 미술관 같은 문화 예술 공간에 가거나, 어딘가에서 흥미로운 작업을 보고 왜인지 분해하며 나도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면서 영감을 얻거나, 아니면 빛이 쨍한 카페 테라스에 앉아 진한 카푸치노나 라테를 마시는 것 정도였는데, 그 정도도 지키기 어려운 락다운(lockdown)의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대신 요즘 당에 집착하게 되었다.




얼마 전부터 다행히 베이커리들이 테이크-아웃만 가능한 옵션으로 가게를 열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파는 케이크가 아닌 베이커리 케이크가 급 먹고 싶어 집 근처의 베이커리를 찾았다. 레드 벨벳 케이크를 한 조각 사 먹었는데, 너무 오랜만이었던지 갑자기 몸에 설탕을 들이부은 느낌-슈가 크래시(Sugar crash)-이었다. 케이크를 만들어봐서 이제는 안다. 달달한 케이크에 설탕이 얼만큼 들어가는지. 그러니까 맛도 있는 거겠지만. 그래도 그 느낌을 받는 순간 설탕을 좀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은 샌드위치용 빵을 제외하고는 쿠키도 초콜릿도 몽땅 끊었었는데, 결국 차오르는 당을 향한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시 베이커리에 들렀다. 플레인 냉동 스콘 두 개와 치즈 케이크, 그리고 레몬 머랭 타르트. 1.5m의 사회적 거리두기에 기반한 줄 서기 끝에 십 분이나 기다려서 사온 나의 최애 디저트들이다. 당을 끊기는, 이제 다른 인생의 낙도 없는데 당까지 끊으려고 하다니, 먹힐 리가.


실컷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케이크는 내일의 간식으로 미뤄두었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어가도 머릿속에 레몬 머랭 타르트가 계속 어른거린다. 곧 잘 시간이니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다짐은 아까 한 입 맛보고 혀에 남은 레몬향 덕분에 자꾸 흔들린다. 바스라지는 눅진한 타르트지와 레몬향 가득한 커스터드, 그리고 부드러운 머랭의 맛이 어우러진 그 맛.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코끼리를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는 그 아이러니처럼, 부드러운 레몬 머랭을 내 입에 꼭 넣어야 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레몬 머랭 타르트 (저의 최애)







생각해보면 나라는 인간은 뭔가 생각나면 꼭 먹어야 하고, 뭔가 생각나면 결국 해봐야 한다. 똥인지 된장인지 굳이 찍어먹어 보려는 타입이랄까.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게다가 리스크가 엄청난데! 그래도 호기심을 참지 못해 굳이 먹어보고 나서야 아, 으, 씨. 하고 미련 없이 돌아서는 것이다. 내일 아침엔 잠에서 깨자마자 레몬 타르트가 일단 먹고 싶어서 입에 한 입 꾹 넣고,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아침부터 슈가 크래쉬가 뇌를 울릴지도. 그러고 나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입맛을 잃은 자가 될 것이다. 집이었으면 엄마가 와서 등짝을 한 대 치면서, 어이구, 밥 먹기 전에 과자 먹으면 입맛 떨어져!! 하고 질색을 하셨을 텐데. 지금의 내겐 뭐랄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스스로 조절하지 않으면 아무래도 엉망진창이 되기 너무 쉽다.


프리랜서는 일과 삶을 구분하지 못해서 힘들고, 집에서 일하는 인간의 삶은 경계가 없어서 힘들다. 설사 낮과 밤이 거꾸로 돌아가고 끼니를 쿠키와 감자튀김으로 때워도 뭐라고 할 사람 하나 없다. 그냥 내 위와 간만 상하겠지. 그러다 아프면 구제해줄 사람도 없으니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귀를 쫑긋거리며 영어로 의사와 열심히 대화를 해야 한다. 설명해준 걸 묻고 또 묻고, 이해가 될 때까지 같은 질문을 반복하면서. 아니, 이게 여기까지 올 일인가 싶은데, 또 생각은 부풀어 올라 어느새 저 멀리 가 있다. 이 밤에 케이크 한 조각 먹지 않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타자를 쳐 대고 있는 것이다. 사라져라 그 맛, 내가 아는 그 레몬 머랭 타르트 맛.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너무 안간힘을 써야 해서 이렇게 딴생각을 하고 있다. 달달한 당, 레몬 머랭 타르트에 집중하기는 너무 쉬우니까. 그래도 내일 아침은 참아 보기로 한다. 입맛을 잃고 후회할 테니까. 오후에 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먹어야지. 락다운으로 인해 몇 개월간 사람의 활동 반경이 줄어들고 제한이 늘어날수록 별것 아닌 일들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다. 고작 케이크 한 조각을 가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감정과 내내 씨름하다 잠드는 하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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