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이해해보려 했지만,

지식화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

by 틂씨




심리학 책을 읽고 정신 분석 이론을 공부해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되면 마음이 좀 편해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으니까, 어떻게든 이해해보고 싶어서.


하지만 어떤 증상의 이름과 정의 같은 것들을 이론적으로 알게 되었다고 해서 감정과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이것과 저것에 나를 끼워 맞춰 보느라 혼란했다. 이걸 말하면 이것 같고, 저걸 말하면 저것 같다. 어떤 특징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흐릿한 경계를 가져서 누구나 그렇다고 하면 그렇게 느껴진다. 사람은 저마다 성격적인 성향과 불완전한 모습을 어느 정도는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진단과 증상은 이론을 이해한다고 해서 특정 답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항상 '이런 성향으로 인해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현저하게 방해받는 경우'가 기준이 되었다. 전문가의 영역이다. 나같은 사람은 단순히 그렇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매사 확실한 것이 좋은 나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렇다. 나는 어느새 '지식화'의 함정에 빠져있었다.


불편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생각에 몰두하는 것. 그것이 생산적인 활동이라 믿고 관련 지식에 몰두하는 것조차 '지식화'라 불리는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고 한다.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 생각에 집중한다. 이론적인 지식으로 셀프 진단을 내리거나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감정이 처리되지는 않는다. 이런 사이클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었다. 스스로 지식을 쌓는 것에 몰두하며 감정을 회피한다. 뭔가, 거기 어떤 마음들이 남아 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들여다볼 수가 없다. 엄두가 안나.





나를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하면 친구는 쯧쯧 혀를 찼다. 자가 진단은 위험할 뿐 아니라 정확할 수도 없다는 말을 남기고. 그러면 금새 머쓱해져서 아니, 그래도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뿐인데. 라고 말했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을 3인칭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를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전문가가 존재하겠지.


매번 무엇인가 지식을 알아갈 때마다, 이거 난가, 저거 난가, 하는 마음에 혼란스러웠다. 이건 오히려 심리 버전의 건강 염려증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많다. 현실 회피의 일종으로 지식 탐색에 몰두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핑계로 다른 것들을 자주 미뤄왔으니까.


감정일기를 쓰면 실제로 도움이 된다고 한다. 사실과 생각, 감정을 나누어 보는 것. 엄밀히 말하면 사실과 감정 사이에 이루어지는 편향된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동안 알아낸 것이라고는 모든 것들이 불안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뿐이다. 정작, 그 불안을 어떻게 잠재우고 진정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이론적으로 접근해봐도 실행이 잘 안된다. 아는 것만으로는 감정이 잠재워지지 않더라.





심리학적 이론과 지식 탐색을 이쯤에서 멈추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지에서 비롯된 궁금증들은 어느 정도 해결된 것 같고 그것만으로는 감정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불안에 직면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식화'의 한계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제 그것을 멈추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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