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증상이 있습니다.

by 틂씨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이 다시 시작됐다. 요즘도 나는 강아지와 아이가 전부인 예능을 자주 본다. (개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보며 인간으로서 얻는 위안) 미디어에 나오는 의사의 모든 쇼맨쉽을 완벽하게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으로 전송된 정보들이 모여 어떤 지식이 되기도 한다. 셀프 진단을 신뢰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내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찾아 들여다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이해되면 좀 더 나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번 편은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진단을 받은 한 일곱 살 아이의 이야기였다. 사회적인 환경에서 말을 하고 싶어도 긴장해서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증상을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대부분의 증상을 가진 아이들은 집에서는 상대적으로 말을 잘하기 때문에 가족들은 쉽게 눈치채지 못한다고. 아이의 엄마는 육 개월 후에 학교에 가게 될 아이가 친구들과 있을 때 말 한마디를 잘 못하고, 낯을 가리며, 게다가 어른들마저 인사를 잘하지 않는다고 버릇없는 아이라고 낙인찍는 통에, 애가 닳아 전전긍긍 중이었다. 그 아이 엄마는 적어도 이 아이가 버릇이 없어서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어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나마 엄마라도 그 마음을 알아주니 얼마나 다행인지.


오은영 박사는 아이의 불안도가 너무 높아서 나타난, 불안과 연관된 증상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도 사람들의 주목에 얼어붙는 편이고, 학창 시절 십여 년간 발표 한 번을 하지 못하고 지나왔다. 손을 들면 모두가 나를 바라보게 될 상황이 익숙치 않아 공포스러웠다. 싸우거나 울고 나면 말이 잘 나오지 않아서, 억울한 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하고 입을 다문채 울거나 떼를 썼다. 엄마는 프로그램 속의 아이 엄마처럼 내 옆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맞춰 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쭈뼛거리며 자신의 뒤로 숨는 나를 버릇없다고 단정 짓고 혼내는 대신,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요, 하고 사람들에게 지레 먼저 사과를 할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나는 낯을 가리는 아이구나, 곱씹었다.




낯을 가리는 아이와 선택적 함구증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간극이 있을까. 이제는 세상의 거의 모든 일들이 흑과 백으로 딱 떨어져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검정부터 흰색까지 사이에 수많은 회색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내가 어느 정도의 회색인지 헷갈리는 아이였다면, 중학교 때 내가 만난 한 친구 C는 나보다 좀 더 어두운 회색을 띄었다.


얼굴이 둥글고 교칙에 맞게 귀 밑으로 밭게 자른 머리의 곱슬이 무척 심해서 양배추 인형 같은 모습을 한 친구가 있었다. 까만 눈동자를 동그랗게 뜨고 깜박거리거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했다. 웬만해선 누가 물어도 답을 잘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거나, 같은 질문을 반복해서 하면 겨우 한 번쯤의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조용해서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고, 누구의 비위도 거슬리지는 않았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친구가 많지는 않았다. 말을 잘 안 하니까. 답답하니까. 쟤는 말을 안 해, 악의는 없지만 그 애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말을 하면서, 아이들은 이내 말 걸기를 포기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좋아서 부러 가서 말을 걸었다. 귀엽고 착한 친구였다. 천천히 기다려주면 아주 작은 목소리기는 해도, 느리더라도,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 말을 하기 어려울 땐, 고개를 끄덕여주기라도 했다. 질문의 답을 기다리며 친구의 까만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좋았다. 가끔은 친구의 작은 대답을 커다랗게 다른 이들에게 대신 전해주기도 했다. C가 ‘OOOOO’래! 그 친구는, 그때 나보다 더 힘들고 긴 시간을 지나고 있었을까?






- 네가 말을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알아.

- 불편하면 안 해도 돼.


오은영 박사의 이 한 마디에, 아이는 당시에는 눈을 피하고 모른 척했지만, 집에 가서 ‘선생님은 어떻게 내 맘을 알았지?’ 하며 공감받은 것을 기뻐했다. 이해와 공감을 받는 일은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 아이와 내게는 꽤 긴 시간의 갭이 있다. 강산이 몇 번이나 변하는 동안, 육아도 정신세계도 연구와 발전을 거듭했겠지. 마음이 닳아 발을 구르는 아이 엄마를 보며, 나의 엄마도 저런 시간을 보냈을까 싶어 마음이 짠해졌다. 우리는 어떻게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디고 지나왔구나.



말이 하고 싶은데 말이 잘 나오지 않는 경험을 모두가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안다. 왜 그럴까 늘 궁금했다. '말이, 흡, 잘.., 쓰흡, 흑, 잘 안나와.' 하면서 울었다. 불안해서 그렇다니. 근육이 긴장해서 그런 거라니. 그래서 매번 말이 나오지 않을 땐 목이 뻐근했던 거구나. 정말 안 되는 거였어. 그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얼마나 스스로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는지 생각해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니까. 남들이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나는 불안을 다스리고 견디느라 온 힘을 다해서 다른 여력이 별로 없었다.


엄마가 자신의 뒤에 숨은 나를 ‘낯을 가리는 아이'라며 도닥일 때, 부친은 나를 ‘버릇없고 예의 없는 아이'라고 다그쳤다. 눈을 부릅뜨고 인사를 하라고 호령하거나, 울면서 숨을 헐떡이이고 있으면, 뚝 그치고 말을 하라고! 넌 왜 어른이 묻는데 답을 안 하느냐고! 혼을 냈다. 오래도록 나는 내가 답답한 사람인 줄 알고 자랐다. 그런 게 아니었다니.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삶이 좀 달라졌을까?



아이야, 너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있어. 전문가 집단과 연구 데이터가 있단다.

너는 그래서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보다는 빨리. 발전된 시대잖아.


아이가, 그래서 나보다는 더 스스로에게 관대하게 자라기를, 그래서 조금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이전 05화인정해주자, 회피하려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