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기본 욕구인 '안전'이 사치가 될 때
쓰는 것은 대게 고통의 회고였다. 주로 부정적인 감정들을 마음 가는 대로 한풀이하듯 적었다. 들어주는 사람도 검열하는 사람도 없는데, 비공개 글은 결국 다짐으로 끝났다.
그러지 말자. 더 나아지자. 극복하자.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더. 더. 더.
그런 다짐을 수만 번씩 해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작심 3일을 3일마다 다시 하기도 수 백번, 작심 3일은 작심 하루도 되고 작심 10분도 되었다. 돌아서면 바로 잊기도 했다. 그러고 나면 다시 후회의 반복. 나는 왜 이런가. 나라는 인간은 왜 이 정도밖에 안되는가. 그렇게 다짐을 적던 시간에, 마음을 한탄하는 시간에, 울적한 마음을 달래지 못한 시간에, 왜 더 생산적인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나아지지 못하는가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그래도 글 속에서는 안전하고 싶었다. 실제의 나를 노출시키는 일은 최대한 자제하면서, 감정에 대한 솔직함만 남기려고 애썼다. 실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는 부러 공유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보호받지 않는다면 어떤 이야기들은 영영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집은 내게 안전한 공간이 되어주지 못했다.
쉐어하우스에 이사를 다니면서,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집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하는 공간이다.'
이 기본적인 명제를,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부모님의 집에는 부친이 있었고, 혼자 자취를 할 때엔 늘 수상한 사람이 침입하진 않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았다. 쉐어하우스에서는 온전한 프라이버시를 갖기 힘들다.
가부장제 사회의 가족 이야기가 비단 나만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특별히 악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대의 평범한 가장이었다. 남들처럼 돈 버는 자로서의 권위, 부모로서의 권위, 연장자로서의 권위 같은 것을 붙잡고 자식과 배우자 위에 군림했다. 어떤 에세이에서 읽은 묘사처럼, 그가 나방처럼 날개를 펼치고 집안 곳곳을 퍼덕이며 날아다닐 때마다 나머지 가족들은 그가 흩뿌리는 가루에 닿지 않기 위해 피하거나 숨었다. 운 좋게도 작은 방 하나가 내 것이 되었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자주 숨죽이고 바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또 나 대신 엄마에게 자식 교육 잘못시킨 죄를 묻고 있지는 않은지, 혹은 분풀이를 하거나 내 욕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는 명령이 아닌 말을 할 줄 몰랐고, 나는 공포와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자식이었다. 우리는 오래도록 부딪히다 언젠가부터는 서로의 존재에 침묵했다. 아니, 침묵으로 회피한 것은 내 쪽이었다. 의미 없고 가치 없는 것에 더 이상 쏟을 에너지가 없었다.
오래도록 남의 집을 전전하다 처음 생긴 우리 집은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였다. 언제부터인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건물 입구에서 집에 불이 켜져 있는지를 살폈다. 불이 여전히 켜 있으면 마음을 졸였다. 그럴 때면 마지못해 집까지 올라가 어둡고 긴 복도에 서서 현관문의 작은 돋보기 구멍에서 빛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깨어있는 부친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고운 말이 오갈 리 없다. 그러다가도 같은 층의 다른 집으로 향하는 이웃의 발자국 소리가 들릴라치면 숨을 죽이고 몸을 피했다. 도둑도 아닌데, 왠지 눈에 띄면 안 될 것 같았다. 늦은 시간 현관문 앞에서 멈춰 서 있는 사람은 수상해 보일 테니까. 대개의 경우에는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렸다. 가끔은 그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나는 왜 우리 집이라고 불리는 곳엘 마음 편히 들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서 있나, 서글펐다. 그래도 좀 더 기다려서 불편함을 피할 수 있다면, 그쪽을 택했다. 불이 꺼지고 나면 잠시 심호흡을 하고 끼이익 소리가 나는 무거운 철로 된 현관문을 천천히 열고 들어갔다. 학교에서 동기 중에 막차를 타고 학교를 가장 늦게 떠나는 사람은 나였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무거웠으니까.
일요일 아침은 시간이 느리게 갔다. 엄마는 늘 새벽같이 교회에 갔고, 동생은 주로 늦게까지 늦잠을 잤다. 침대 안에 가만히 누워 부친이 현관문을 나설 때까지 기다렸다. 집 안에서 엄마나 동생 없이 그와 숨 막히는 둘 만의 시간을 갖고 싶지 않으므로. 어쩌다 눈이 일찍 떠지더라도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있곤 했다. 시간아 지나가라, 지나가라. 속으로 바라면서.
학창 시절 집을 떠나 짧은 여행을 다녀오면, 그것이 극한의 극기훈련이었더라도 집에 오는 시간이 되면 저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부친은 내 얼굴을 마주하면 따지듯 추궁했다. 너는 왜 집에만 오면 얼굴이 죽상이냐, 기집애가 되가지고, 좀 웃어라, 너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다. '당신 때문에'라고 답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용돈이 끊기거나 컴퓨터를 못 쓰게 하는 대신, 다리 하나가 부러지거나 뺨 몇 대에서 끝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곰살맞게 굴며 네, 하고 웃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늘 무표정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의사표시였다.
성인이 되자마자, 집 밖을 떠돌기 시작했다. 그것이 여행이든 타향살이든, 그가 없는 곳이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낡은 원룸이나 기숙사는 그것 대로, 남의 집 침대나 방 한 칸은 그것대로 애로 사항이 있었지만, 그래도 숨은 쉴 수 있기를 바랐다. 언제쯤 온전하고도 안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을까.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지낼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에도 없는 누군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쉽게 나를 부정하게 된다. 안전지대 없이 살아온 사람의 삶은 언제나 불안하다. 24시간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산다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이다.
안전한 공간이 어렵다면, 사람이라도 안전한 사람들로 곁에 두고 싶었다.
말을 가려하고, 신뢰를 쉽게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안전하면 좋겠다. 내가 하는 말들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가 닿을지 그 시물레이션을 매번 반복하지 않아도, 안전하게, 그 말에 다른 뭔가가 더해지지도 빠지지도 않고 그대로 가 닿으면 좋겠다. 그래서 진심이 통하고, 관계 안에서 편안하고 싶다.
그러다 이런 마음이, 이렇게 사치처럼 느껴지는 삶이 너무 고단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저, 안전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