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모여 내가 되었다

강박(OCD)과 통제 이슈

by 틂씨





어른이든 아이든, 심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을 잘 지나치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그 안에서 나의 흔적을 찾게 된다. 나를 더 이해하고 싶다. 뭔가를 바꾸거나 혹은 더 나아지고 싶다. 끊임없는 불안을 견디기가 어렵다. 마음을 안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 노력이 늘 생산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강박(OCD)과 컨트롤 이슈가 이어지는 문제인지 예전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심리적 기제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읽고, 스스로의 행동을 분석하고 반성하며 왜 그럴까, 왜, 왜, 왜, 하는 물음을 오랫동안 놓지 못하면서 천천히 깨달았다. 프로그램 속의 소아 강박을 가진 아이의 행동은 나의 어릴 적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어렴풋했던 모습이 전문가에 의해 구체화되어 언급되면서, 또 그때의 나를 한 뼘만큼 더 이해한다. 그랬구나.


아이에게는 컨트롤 이슈가 있고, 그 컨트롤 이슈는 불안에서 온다. 주변 환경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을 때에 몹시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아, 강박 행동으로 나타난다. 아이는 본인의 불안과 강박을 잠재우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에게, 특히 엄마에게 확인을 받으려고 애썼다. 자기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강도와 빈도가 잦아질수록 아이 엄마는 지쳐가고,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미안해하면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힘들어했다.






엄마는 오랫동안 나에게 최대한 맞춰주고 채워주려 노력하는 부모였다. 하지만 어느 날, 지친 엄마의 ‘너는 내 딸이지만 너무 어렵고 힘들다'는 고백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엄마에게 기댈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내게는 확인받을 대상이 필요했으므로, 그 몫은 만나는 사람에게로 옮겨 갔다. 그러나 그들은 궁극적으로 가족도 아니고, 끝없는 인내심을 가진 대상이나 상담사도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끝났다. 나는 네가 좋지만 너무 힘들어서 안 되겠어. 비슷한 시간이 지난 후의 비슷한 결론들.


그다음의 대상은 동생이었다. 때로는 적처럼 싸우고 때로는 세상 가까운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사실이 나를 안심시켰다. 지난한 가족사와 고민을 매번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동생은 나를 이해해주었으니까. 그가 내게 언제나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매 순간 자신을 믿지 못해 동생에게 묻고 확인받기를 오래도록 멈추지 못했다. 홀로서기의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떤 벽에 가로막힐 때 동생의 컨펌이 필요했다. 가족인데도, 어느새 관계의 균형은 일그러졌다. 나는 그 친구가 필요하지만, 그 친구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여태껏 지나온 나의 다른 관계처럼.




나는 왜 늘 불안할까. 그건 인생의 화두였다.

불안을 떨쳐내지 못해 늘 에너지가 모자랐다. 사람들은 왜 늘 지쳐있냐고 물었고, 나는 늘 피곤했다. 강박은, 혹은 그 이전의 불안은 언제부터 내 삶에 들어왔나. 프로그램 속 아이처럼, 어린 시절의 나는 밤에 복도형 아파트의 창문을 잠가도 누군가가 방에 침입할까 봐 두려움 속에 잠들었다. 이불을 덮지 않으면 벌레들이 어디선가 기어 나와 내 몸에 뒤덮일 것 같았다. 조금의 이물질도 몸에 닿는 것이 싫어서 놀이터의 모래 놀이도 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것이 닿으면 찜찜한 기분이 사라질 때까지 씻었다. 쓸데없는 걱정과 겁이 많고 까다로운 아이. 그것이 늘 평가받은 어린 시절의 정체성이었다.


그 시절의 불안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다. 방송에서 오은영 박사는 아이를 이대로 두면 객관적으로 문제가 없어도 결국 자기 효능감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느새 그 아이가 솔루션을 받지 못하고 자란 버전처럼 자기 효능감에 문제가 생긴 어른이 되었다.


가진 능력이나 상황이 나쁜 것도 아닌데, 왜 스스로를 믿지 못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었다.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결국 그 끝은 능력이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나’의 문제로 돌아왔다. 서로 다른 사람들에게 비슷한 피드백을 여러번 받았지만, 인지하는 것과 극복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불안은 언제나 공기처럼 내 마음에 침습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것에 붙들려서, 불안을 없애기 위해 최적화된 모드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렇게 늘 수많은 일기와 글 속에는 누군가가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기를, 오래도록 간절하게 바라 왔는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는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 내가 아닌, 제 3자가 확인시켜주어야 했다. 괜찮다, 는 말이 그렇게 목말랐다.


오랫동안 동생은 내게 불안을 경감시켜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그가 괜찮다고 말해주면 한동안은 편안해졌다. 나보다 똑똑한 아이니까, 믿을 수 있는 가족이니까, 어떤 객관성을 부여받는 느낌이었다. ‘누나는 누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어도 돼, 왜냐면 누나는 괜찮은 사람이니까.’ 하는 말을 듣고 나면 그제야 조금 자신을 믿을 여력이 생겼다. 하지만 효과는 늘 일시적이었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고 다른 고비가 닥치고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면 나는 다시 나를 믿지 못했다.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하면서. 이런 경향은 내게 다른 지지자가 옆에 있어 언제나 무엇인가를 의논하거나 확인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 한껏 연해졌다가, 다시 혼자가 되고 나면 선명해졌다.




상담사는 이 아이에게는 인지적인 지적 대신 정서적인 지지를 해주는 부모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의 가족은 정서적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식탁이 모여 앉아도 별 대화가 없으며,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았다.


불안의 정서를 지지받지 못한 사람에게 남는 것은 짜증이나 화 같은 부정적인 마음들이다. 너는 불안하면 꼭 짜증을 내더라, 불안하다고 말을 하면 되잖아. 왜 화를 내? 하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하지만 그때엔 그 마음의 정체가 불안인지 이렇게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네가 그렇게 불안했구나, 안됐네. 하는 마음을 공감받고 싶었는데. 그 공감받지 못한 마음들은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아 내면에 여전히 남아있다.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 두렵고, 못 견디겠다.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은 너무 큰 스트레스라서 최대한 피하고 싶다. 그것은 주변과의 트러블로 이어졌다. 당연하다. 세상의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없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대쪽의 스트레스가 더 컸기 때문에 어떻게든 주변을 통제가 가능한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그 영역은 좁고 깊었고, 그것이 인간관계의 경계선이 되었다.


불안이 이토록 깊고 넓게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줄은 몰랐다. 단지 의학적으로 질병의 진단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일종의 마지노선처럼 나를 지켜왔다. 그런데 어쩌면 진즉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불확실한 타국의 삶이 지속될수록, 스스로의 삶에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것은 내게 일종의 무기력을 선사했다. 불확실성은 누군가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일 수도 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끝나지 않는 불행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지난 시간을 생산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하고 나면, 그 주체인 자신을 비난하는 악순환이 쳇바퀴처럼 계속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처리하면 된다. 아이에게는 그 처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면 되는 건데,

문제가 생기지 않기 위한 방법을 자꾸 논의하니까, 오히려 문제가 되고 강박적 사고가 생기는 거라고 한다.

그래 왔던 시간들이 쌓여 평생의 시간을 자꾸 갉아먹는다.


아이는 마지막 인터뷰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엄마에게 확인 받고 싶은데,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니까. 그렇지만 매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니까, 엄마가 답답할 것 같다고. 아이도 다 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답답하게 만들어왔을까. 왜 나보다 그 일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남들의 말에 귀 기울였나. 그것이 보장해주는 것은 순간의 안심일 뿐인데. 언발에 오줌누기처럼, 그 짧은 마음의 평온을 얻고 싶어서 묻고 또 물었다.




너의 마음이 제일 중요해, 네가 원하는 대로 하면 돼.

누군가가 정의해주는 믿음의 확신. 상담사는 아이에게 이렇게 명료하게 말해주었다.

아이에게는 이제 뭐든 괜찮다고 말해줄 엄마가 있지만, 이미 자라 버린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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