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Invisible Differences>
오랫동안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현재 내가 가진 것이 일종의 증상이라면, 그것의 원인이 무엇일까 파악하고 싶었다. 알면 고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이런저런 학술적 카테고리를 대입하다 보면 때로는 나 자신을 어떻게든 정의하고 싶어 진다. 심리적 양상에 대한 지식이 늘수록, 혹시 내가 그런 증상을 가진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문자 그대로의 정의라면, 사실 현대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어떤 카테고리의 최소한 일정 부분에 포함될 것이다. 사실 많은 경우 진단의 결정은 '그것으로 인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지장이 있는지, 그리고 빈도와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로 판단되기 때문에,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걱정은 어쩌면 심리적 건강 염려증 같은 것일까.
자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한 종류의 병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를 가진 자폐 스펙트럼으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아스퍼거 증후군은 자폐와 어떻게 다른가. 고기능-자폐(high-function Autism)의 일종이라고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천재나 똑똑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IQ 70 이상의 일상생활을 겨우 영유할 수 있는 정도보다 나은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학문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안에 완전히 포함되어서 구분이 무의미해졌다고도 한다.
사회성이 남들보다 떨어지고요,
종종 농담을 맥락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 말을 책에서 읽고, 어, 나도 이런데, 그러면 나도..? 잠시 생각했다. 어릴 때는 말을 무척이나 빨리 시작해서 이웃들이 똑순이라고 불렀다는데, 그럼 언제부터 나는 내향적인 인간으로 자라온 걸까.
나는 엄마 손을 붙잡고 그녀의 무릎 뒤에 숨어 쭈뼛거리는 아이들 중에 하나였다. 처음 유치원에 가서는 적응을 못하고 남들이 다 의자에 앉을 때에도 혼자 바닥에만 앉아 있다가 한 번은 화장실에 가지 못하고 오줌을 싼 적이 있다고 했던가. 엄마에게 들어서 기억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드는 건지, 정말 희미한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돌아보면, 강박도 꽤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주로 고집으로 불렸지만) 그러나 엄마는 특별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이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고 싶어 했다.
집에서는 손잡이 끝에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낡은 어린이용 스테인리스 수저 세트를 오래도록 썼다. 그날 아침에 먹은 수저 세트가 설거지되어 있지 않으면 다음 끼니에 그것만 씻어서라도 꺼내어 썼다. 먹는 것도 그랬다. 유치원에 점심 도시락을 싸 가는 날에는, 엄마는 나를 위해 꼭 꼬마 김밥을 따로 만들어 싸주었다. 익은 김치를 먹지 않으면 나를 위한 겉절이를 새로 만들어주었다. 고기에서 고기 냄새가 나면 입도 대지 않는 아이에게 엄마는 열심히 양념한 고기를 볶거나 살코기만 발라 기어코 입에 넣어주었다. 입맛 까다롭고 고집 센 첫째를 키우느라 엄마에게 둘째는 아마 더없이 무난하고 예쁜 짓 많이 하는 아이로 보였을 것이다. 혹은 둘째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자랐거나.
화가 나거나 분할 때, 억울하고 눈물이 나면, 말문이 막혔다. 어서 말해보라고 멍석을 깔고 기다려 주어도, 자주 혀 끝에서 맴도는 언어들은 말이 되지 못하고 삼켜졌다. 말들을 토해내지 못하고 나면 남은 감정들을 어쩌지 못해 끅끅대거나 괜한 이불을 찼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말하지 못하는 내 마음까지 알아주었으면 자주 바랐다. 사춘기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호되게 지났고, 결국 십 대의 끄트머리에 너는 내 자식이지만 너무 어렵고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야 말았다. 왜 인간은 가장 가까운 이에게 어깃장을 부리게 되는 걸까. 믿으니까, 그래도 나를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으니까 그렇겠지. 사실은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남자 친구로 바뀌었을 때에도 소통에 목이 마른 것은 비슷했다.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말들을 쉽게 내뱉지 못했다.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말 전해도 되는 걸까. 저 사람을 믿어도 될까. 나는 나 자신으로 상대에게 수용될 수 있을까. 정리되지 않은 말들을 꾹꾹 눌러 삼키고 나면 목이 뻐근해졌다. 집으로 돌아가 길고 긴 메일을 적거나 문자를 보냈다. 그런 긴 메시지가 고역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으나, 당시에는 하지 못한 말을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글은 늘 말보다 편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면서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한번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돌이킬 수 없다는 압박감은 내 입을 자주 막았다.
나는 내가 안되어 보이는 걸까. 안쓰러운가. 적당히 어떤 이름이라도 지어주고 나면 마음이 조금 편안해질 것 같은가. 그래서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마음으로 이리저리 대입하고 들춰보는 걸까. 자기 연민은 갖고 싶지 않았는데. 이제는 인간이 완벽하리라는 상상을 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내가 완벽하지 않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진다.
성인 아스퍼거 증후군에 관련된 책인 <제가 좀 별나긴 합니다만>의 영문판 제목은 <Invisible Differences>이다. 보이지 않는 차이. 당신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다름에 관해 자꾸 개념 짓고 정의하고 이름을 지어보려 노력하게 된다. 나아지고 싶어서, 이해하고 싶어서, 만족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극복해보려고. 주인공 마그리트처럼, 나에게도 어떤 이름이 주어진다면 조금 마음이 편안해질까 싶어서.
그렇지만 특별히 이름 붙이고 정의하지 않아도 내가 이미 가진 것이 없던 것이 되거나 없던 무엇을 새로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어떤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이유는, 그 마음들이 그만큼 특별하거나 이상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평범과 보통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는 사람일 확률이 더 높겠지. 더 이상 이름을 짓고 정의 내리려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믿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