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강형욱 훈련사와 오은영 전문의
아이와 강아지가 나오는 예능을 즐겨 본다.
강형욱 훈련사가 멘토이던 시절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나 오은영 박사가 조언을 해주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두 전문가 모두 지금은 후속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여전히 그 프로그램들도 빼놓지 않고 클립으로라도 챙겨본다. 비혼주의자인 나의 예능 취향은 언제부터 이러했나 모르겠지만, 그들의 멘토링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아이나 강아지의 문제 해결을 의뢰한 부모나 보호자를 교육시키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 뭐랄까, 분명 촬영 대상에는 잘못된 행동이나 문제가 있다. 그러나 특별히 예민하거나 공격성이 투철한 몇몇 경우를 제외하면, 많은 경우 문제는 부모나 보호자의 행동이나 태도로부터 비롯된다.
한 시간 가량의 문제 확인과 해결 방안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부모나 보호자의 역량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나 강아지의 온 세상이 그들로 인해 어떻게 만들어지고 결정되는지를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저게 저렇게 커다란 일이구나, 알고 있었지만 또 새삼스럽다. 그 무게감. 사실 그동안, 이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그저 삶의 당연한 수순으로, 강아지를 그저 살아있는 소유물로 단순히 생각해왔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많은 책임감과 무게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그렇게 쉽게 선택하지 않았겠지.
무엇보다 그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이유라면, 멘토들이 하는 말과 태도에서 느껴지는 은근한 위로감 때문이다. 특히 강형욱 훈련사의 흥분하지 않고 단호하되, 찬찬히 대상에게 위안을 주는 목소리는 그저 시청자일 뿐인 나에게까지 자주 와닿는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가끔은 아직 내가 아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이 아직 작고 좁아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세계의 전부인 어떤 어른이나 초월적인 존재가 늘 내게 괜찮아, 괜찮을 거야, 괜찮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 사납기보다는 오히려 겁이 많고 예민해서 불안한 강아지들이 더 격렬하게 짓고 뛰고 흥분하곤 한다. 이쪽으로 오지 마, 저리 가, 무서워! 하는 신호로. 나는 그 불안한 강아지들처럼 사람들을 자주 경계했다. 그러고 나면 까다롭고 별나다고 혼이 났다. 만약 그때 누가 다정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 봐 주고 괜찮다고 말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좀 더 사회성이 발달한 강아지처럼 마음이 안정되어서, 더 쉽게 사람에게 꼬리를 치고 금세 누군가를 믿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사실 나는 개가 아닌 인간이므로, 완벽하게 끝난(것처럼 보이는) 그들의 훈련처럼 단순하게 끝을 맺을 순 없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한 흑백논리로 규정지을 수 없는 다양한 배경과 환경이 있었겠지. 그렇지만 여전히, 그런 목소리를 듣고 싶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안심해도 돼. 하는 말들. 개를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인간으로서 얻는 위안.
사회적 기준의 어른이 된 지가 한참인데, 아직도 그런 작은 것들에 위안을 얻는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심지어 어린 시절의 어떤 트라우마가 있었다 한들 진즉 벗어났어야 하는 때가 지난 것 같은데.
세상에는 교과서나 동화 속의 어느 완벽한 가정 신화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결국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결핍이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다. 서로, 그걸 알아봐 주면 안 되는 걸까.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 마음 같지는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