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왜 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담을 시작했다. feat. <마음의 구석>

by 틂씨




스무 살 즈음이었던가. 맑은 날이었다. 느지막히 일어나 자취방에서 학교로 가는 길에 식당가를 지날 때, 하늘이 파-아랗던 기억이 난다. 뜬금없이 제일 친한 친구 D에게 전화를 해서 이렇게 말했다.

- 있잖아, 나 왜 사는지 모르겠어, 사는 게 재미가 없어.

- 야,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지, 왜가 왜 필요해.


그 친구는 평소처럼 무심하게 답했지만, 곧 나에게 조심스럽게 혹시 상담 같은 거 받아 볼래? 하고 학교 심리 상담 센터를 추천해주었다.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직접 찾아가 본 적은 없는 곳. 그때만 해도 특별한 정신적 문제가 드러난 것이 아니라면 쉽게 갈 수 없는 곳이 정신과나 심리 상담 센터였다. 그러다 어느 날 무료 테스트라도 받아보자는 생각으로 교내 상담 센터를 찾아갔다. MBTI와 MMPI, TCI 였나, 그리고 몇 개의 심리 검사를 더 했다. 검사 결과는 사회성이 낮은 편이고, 우울의 정도는 보통보다 나쁜 편이지만 우울증 진단을 내릴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검사의 결과지를 들고 어떻게든 상담을 진행해보려는 상담 센터 직원을 뒤로한 채, 그깟 검사 결과만으로 나를 전부 안다는 듯이 말하는 태도에 불쾌해져서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그것이 나의 첫 상담이었다.



졸업 학기에, 다니던 학교의 대학병원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정신과 개방병동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술치료 수업을 돕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진짜 봉사를 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호기심이었다. 스스로의 마음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지 궁금했다. 개방병동은 폐쇄병동과는 달리, 심각도가 낮고 퇴원 후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 통원치료를 하는 사람들이 다닌다.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 그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나는 졸업 학기에 졸전 준비 때문에 잠이 모자라 아침마다 지각을 일삼으면서도 봉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매번 도저히 일어나질 못해 모닝콜을 부탁했더니, D는 그렇게 지각해가면서 힘들게 다니느니 그만두고 잠을 더 자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 음.. 나도 매번 지각해가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데, 그만두고 싶지가 않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아. 살아있는 것 같아.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D는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봉사자들은 뭔가를 대단하게 돕기보단 그저 뭔가를 함께 했다. 그뿐이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저 함께 하는 것 만으로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보람찼다. 스스로가 부족하기만 한 사람으로 느껴졌는데, 이런 나라도 도움이 된다니. 내어 준 것보다 배운 것이 더 많았다.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물고기를 그리는 사람을 보면서 마음에 아직도 화가 많이 남아있구나 생각했고, 옆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는 동안 탁하고 채도 낮은 색만 쓰는 나를 보며 역시 마음이 어두운가 보다 생각했다.





그 이후로도 진짜 상담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연히 친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다. 늘 가까운 사람들에게 쏟아내던 이야기들은, 실은 그들에게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상담사나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그걸 전부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운 좋게도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가까운 상담 센터를 추천받았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센터에 찾아갔다. 첫 상담에서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부모가 싸우면 아이가 그것을 불안해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것. 지금이야 관련 지식이 많이 보편화되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지만, 당시의 내게는 충격이었다. 전문가라는 제삼자가 나에게 공감해주었다. 어린 시절의 내가 잘못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라고. 아이가 부모의 싸움에 겁을 먹고 공포에 질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만으로 그동안 겪어온 수많은 불안의 어느 부분이 저절로 씻겨져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래, 아이는 무서울 수 있지. 나는 아이였고.


어떤 매체에서 읽었던, 칼럼의 서문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톨스토이의 글을 반박하며, 실은 불행한 가정에는 모두 비슷한 아버지가 존재한다고. 나는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부장제가 뿌리 깊이 박힌 한국 사회에는 '원래 남들도 다 그렇다'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하지만, 다수가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옳거나 괜찮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누구보다 성실했고, 바람, 도박, 보증, 술 그 어느 것으로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최악의 가장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자식은 부모의 싸움(이라 쓰고 부의 화라고 읽는다)을 마주할 때마다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야 했다. 메신저를 켜서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마음이 안정되는 음악을 들으며 억지로 뛰는 심장을 가라앉혔다. 한때 거의 모든 인디 음악에 해박했던 이유는, 다른 것이 없었다.


몇 회차의 상담을 받았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시기의 상담은 이후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아도 자신의 두 발로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었다 해야 할까. 그 후로 상담 전도사가 되었다. 힘이 들 때 혼자 감당하기 어려울 땐 꼭 상담을 받아 봐. 내가 해보니까 정말 도움이 많이 되더라. 옛날처럼 진짜 이상한 사람만 가는 곳이 아니야. 정신과가 꺼려지고 보험이 걱정되면, 심리 상담부터 시작해. 의료 보험 기록에도 남지 않거든. 대신 회차당 비용이 싸지는 않지만.

그때 상담비는 내게 꽤 큰돈이었지만, 결코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나는 나아지고 싶었으니까.






그 시절의 마음을 기억하면, 서늘한 여름밤 작가의 <그림일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매번 작은 응원의 마음과 공감하는 마음으로 좋아요를 누른다. 그러다 이 책 <마음의 구석; 소소하지만 시시하지 않은 이야기>를 발견했다. 서밤이 봄봄, 블블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를 통해 해오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행하는 수많은 우울과 힐링 관련 책 중에 어느 하나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없었는데, 이 책은 조금 다르다. 듣고 싶던 이야기를 대신 해주어서일까, 위로가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 모두 그래. 하면서 내 등을 쓸어주는 책. 그들처럼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한 적이 있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결정을 미루어 왔으며, 그래서 결국 아무것도 아닌 삶을 살게 될까 불안해했다. 부모와의 싸움이 힘겨워도 지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의 말에 잡아먹히고 싶지 않다. 온 힘을 다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그녀들의 이야기는 나와 생각의 구조와 시점이 비슷했다. 각자 자신을 알아가며 나아지려고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솔직하게 그려져서 좋았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의 근육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 까지도.



인디음악으로 묶인 음악을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모두 비슷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사실 모두 다른 것처럼, 글도, 책도 그렇다. 나와 궁합이 맞는지 아닌지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 취향의 선택은 절대 남에게 맡기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과 노력이 들어도 스스로 일일이 확인하고 내 것과 아닌 것을 골라낸다. 이 책은 여러 번 읽었고, 앞으로도 혼자가 힘이 든 날, 꼭 모국어로 된 위로가 필요한 날 읽으려고 한다. 그리고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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