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무쓸모 하더라도,
늘 온갖 백팔 번뇌로 고민에 빠져 사는 내게, 친구가 말했다.
- 언니는 먼저 존재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맞다. 틀린 말이 아니다. 너무 옳은 말이라, 대꾸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효용 가치가 떨어지면 가차 없이 버림받는 세상이잖아. 무용하더라도 존재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당장 나부터도, 자신에게 관대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그 말에 문득 돌아본 나는, 불안을 먹고 자란 괴물이 된 것 같았다. 어딘가가 잔뜩 엉켜버린 것 같아서 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편안하다'는 상태를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좋은 일이 생겨도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묵직한 것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항상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서 자꾸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빅 브라더가 어느 높은 곳에서 전지전능한 시점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뭐라고 한 적이 없는데, 모두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는 것 같아 겁을 먹은 적도 있었다. '겨우 그 정도밖에 안돼?' 결코 만족한 적이 없는 머릿속의 자아가 계속해서 나를 쪼았다. <깊이에의 강요>는 소설이나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에서 매일매일 일어나는 전투였다. 그 전투에서 나는 매번 지고, 상처투성이가 된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황량해진 벌판에서 자주 쓰러졌다.
잡을 수 있던 많은 기회들을 사실 행동하지 않아서 잃었다. 언젠가는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전부 손에 닿지 않았다. 내가 그곳까지 손을 뻗고 달려 나가지 않았으므로. 눈앞에 있는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목표들만을 쫓는 순간 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카테고리를 자주 벗어나지 못했다. 숲이 잘 보이지 않아. 멀리까지 보기엔 이미 늦어버린 것 같다. 난 틀렸어, 먼저 가, 싶은 마음이 수시로 들었다. 이런 잦은 포기들을 극복하고 싶었는데, 진심으로.
어릴 때 미술학원에서, 나는 형태가 곧 어그러질 것 같거나 선 하나를 더 긋는 순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그림의 끝을 내지 못했다. 대신 불쌍한 눈빛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다. 틀리고 싶지 않아서. 아마도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확인받고 싶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해도 돼요? 확인받고 나서야 다음 스텝으로 넘어갔다. 그림에는 답이 없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정답에 가까운 무엇인가가 있겠지. 가끔은 이상한 부분을 선생님이 그럴듯하게 복구해주기를 기대했다. 스스로 완성해서 끝을 보는 성취감보다 지금 실패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실패는 부끄러운 거니까.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그런 작은 실패의 경험들을 딛고 일어나는 연습을 많이 했어야 했는데, 나는 오히려 아주 작은 실패마저 경험하지 않으려는 쪽으로 노력해왔다. 결국 지금도 여전히, 어찌할 바를 모를 때에는 눈을 딱 감고 뛰어드는 대신 그 자리에 자주 멈춰 서게 되는 불완전한 어른이 되었다.
무엇을 해내거나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저 존재만으로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실 모두의 밑바탕에 깔려야 하는 기본 가치 아닐까. 그런데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이. 남들은 몰라도, 나는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뭘 해내야만 인정받을 것 같다. 그런 마음들이 불안이 되어 나를 좀먹고, 그런 나를 주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내 안의 불안에 대해 탐구해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