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종의 신경안정제를 먹는 기분으로

버티던 시간. feat. <민물장어의 꿈>, 故 신해철

by 틂씨




한때 친구들은 나를 짱어야, 하고 불렀다. 온라인 활동의 닉네임이 주로 <민물장어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영어로 된 ID에는 신해철 앨범 이름을 적고, 새벽이면 방에 혼자 앉아 해적 방송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을 열심히 들었다. 그가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종종 어둠의 자식을 보는 듯 한 눈빛을 했다. 그러게, 내가 언제부터 그를 그렇게 좋아했었나.





나의 부모는 자주 싸웠다. 사실 싸웠다는 표현은 무색하다. 부부 사이는 평등하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모의 불만은 부의 화를 불렀다. 본인에 의하면 자신은 법 없이도 살 법한 괜찮은 사람이며, 가정 내 서열 1위의 가장이었으므로, 늘 그 권위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의 화는 언제 터질지 대중이 없었다. 태풍이 지나갔나 싶어, 그를 미워하는 마음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연민과 죄책감에 휩싸일 때쯤이면 어김없이 다시 터졌다. 우리는 주인에게 언젠가 걷어 차인 적 있는 강아지처럼, 눈치를 봤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활화산 같은 사람과 함께 사는 기분이란. 명절이면 백프로 사단이 났다. 나의 십대는 어떻게 하면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지났다.


모의 말은 대부분 옳았다. 참고 참고 참다가 꺼낸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싸움에 어린 나와 동생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말려야 하나, 대들어야 하나, 또 저러네, 하지만 우리가 말한다고 한 들 들어줄 리가 없다. 엄마가 하는 말도 귀 막고 안듣는데. '편을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고, 일단 들어만 달라'고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았다. 나는 그저, 엄마가 무사했으면 좋겠다, 아니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한바탕 전투가 끝나고 난 자리에는 그들의 감정들이 폐허처럼 흩뿌려져 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 옆에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안간힘을 써서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걸었다. 엄마, 엄마, 있잖아~. 그러면 엄마는 지치고 슬픈 눈으로도 우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언젠가부터 그 화는 내게로 옮겨왔다. 나는 엄마나 동생처럼 아이고, 예, 예, 하며 순응하지 않는, 버릇없는 자식이었으니까. 고분고분하게 어른의 말을 듣지 않는 성질머리 더러운 계집애. 그게 이 집에서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나의 역할이었다. 언제나 집에는 감정의 살얼음판이 멤돌았고, 대게의 경우 그것은 내 탓이 되었다. 분출되지 못한 감정이 묵직하게 쌓여서, 나중에는 그저 눈 감고 귀 막고 최대한 모르는 척, 피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가능한 한, 그 세상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못 견딜 것 같은 시간이 되면, 방 문을 닫고 들어가 귀를 이어폰으로 막고 음악을 크게 틀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저 성난 목소리를 어떻게든 지우고 싶다. 컴퓨터를 켜고 메신저에 있는 친구에게 말을 건다.

- 부모님이 또 싸워. 나는 정말 못 견디겠어. 숨을 못 쉬겠어.

그러면 그 친구는 상관 없는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오늘 학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바를 하면서는 어땠는지, 가끔은 즐겨보던 멜로 드라마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다. 무슨 세상 무뚝뚝한 애가 멜로드라마를 보느냐고, 안 어울린다고 핀잔을 주면 말했다.

- 너도 봐봐. 세상이 팍팍한데, 그런 거라도 보고 웃어야지. 하면서 재밌는 드라마를 골라주기도 했다.

좋은 음악도, 드라마나 영화도 그렇게 공유했다. (그때는 스트리밍과 OTT가 없던 시절이다) 그때 내가 제일 많이 재생한 음악 목록의 1등은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이었다.


왜인지 모르겠다. 불안하고 위태로운 마음에 심장이 쿵, 쿵, 쿵, 뛰다가도,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음이 잔잔해졌다. 차분하게 다시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듣다가 마지막 리프가 끝나고 나면, 그렇게 평온해질 수가 없었다. 괜찮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볼륨을 한껏 올리고 음악을 들으면, 나는 오직 그 음악만이 존재하는 세상에 홀로 유영하는 기분이 되었다. 여기는 다른 세상이다. 부모의 싸우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세상. 음악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하는 말 누가 했더라. 그 말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m3yLd3dHkc






오래도록, 타안의 사망 소식에 내 일인 것 같은 마음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해왔다. 나와 타자는 명확하게 분리해야 한다. 동일시는 위험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식이 미디어에 오르는 날에는, 이십 대의 기억이 온전히 남겨진 흔적과 그 시절의 내가 떠올라서 애잔해진다. 그때 당신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시간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진 빚이 많은데 알려나 모르겠어요. 하고.


언제부터 이 노래가 더 이상 마음의 안정제 노릇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더는 약발이 받지 않아 다른 음악을 들었던가. 기숙사로 독립 하면서 상황이 조금 나아졌던가. 다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무엇을 부딪혀 해결해 나가는 대신 회피하는 방식이 익숙하다. 옳지 않음을 머리로야 알지만 성향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뭐랄까, 이제 더 이상 갈 곳 없는 곳 까지 간 것이 아닌가 싶어 스스로를 똑바로 마주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과연 내가 무엇을 직면할 용기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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