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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Mar 28. 2021

일기도 편지가 될 수 있을까요

[Letter Series] 당신에게





누구인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쓰고 있는 이 편지를 받을 사람, 당신.



타인에게 구원도 기대도 위안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그것들을 마음속으로는 바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걸 겉으로 대놓고 바라기엔 어쩐지 제대로 된 성인으로서 기능하지 못하는 것 같으니까, 속으로만 바라고, 몰래 적어요. 사람이니까, 이렇게 바라는 순간도 있지 하고요.


저는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인가 봐요. 기대감을 한껏 올렸다가 실망하고 마는 자신에게 실망한 지 벌써 n년째인데도, 왜 자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바랄까요. 저는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아 겁이 납니다.



손으로 직접 글씨를 꾹꾹 눌러서 편지를 쓰면, 타자를 치는 것과는 다른 글이 써져요. 왜 그럴까요. 생각의 흐름이 애초에 다르게 진행된다는 느낌? 그러니까 만년필을 잡고 종이를 골라 그 표면에 서걱서걱 글씨를 직접 써 내려가는 일에 쓰이는 뇌와 노트북을 켜고 손을 가지런히 키보드 위에 얹어 타다닥 타자를 치는 일에 쓰이는 뇌는 완전히 다른 부분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랄까요. 저야, 늘 글은 의식의 흐름대로 쓰지만, 그 두 가지 의식은 완전히 다른 인격체 같아요. 그래서 그때그때마다 생각이 날 때, 빈 엽서와 종이를 채워 편지를 썼어요. 오래되면 그 시기가 지나서 결국 못 보내게 될 테니까, 재빨리 주소를 묻고, 어쩐지 부족해 보이는 글을 무작정 보내고 맙니다. 매번, 제대로 국제 우편이 제대로 도착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을 하면서도 사진 한 장 찍어둘 걸 하는 그 마음은 잊어버리고 마니까. 그 사람들에게 막상 메일을 적으려고 한다면, 다른 이야기를 했을 거예요. 왜일까요, 진짜 궁금하다.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아주아주 작고 사소한 일에도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은 건드려지고요, 또 정말 우연치 않은 한 마디의 말에도 종일 방긋 웃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자꾸, 웃을 일을 찾고 싶고요, 그래서 자꾸, 말을 걸어요. 저기요, 오늘 하루 어땠어요? 한국은 어때요? 봄이 왔나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부쩍 영어를 대하는 일보다 한글을 그리워하는 빈도가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어쩐지 빈 마음을 그렇게라도 채우면 좀 나아질까, 싶지만. 배가 고플 때엔 건강한 재료로 뚝딱 요리를 해서 먹어야지, 불량 식품을 먹으면 안 되잖아요. 결국 배는 어떻게든 채워지겠지만 탈이 날 테니까.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방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경계선에 서서 양쪽을 자꾸 쳐다보게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그리고 그러는 스스로를 또 한심해하죠.


일기도 편지가 될 수 있을까요?

닿는 사람이 있다면? 몰랐는데 외로웠던가, 그런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건강하세요, 나 잘 지내세요, 를 대신할 다른 인사말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오늘은 별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아요. 내일부터는 유럽의 섬머타임이 시작되니까, 한 시간만큼이 사라지는 이상한 밤이에요. 조금 엉뚱한 기분으로 아침을 맞겠죠. 그 기분도 언젠가는 그리울까, 생각해요. 그냥, 그렇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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