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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Apr 15. 2021

싸구려 초코 아이스크림을 꾹꾹 눌러 넣는 오후

들키고 싶지만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




어느 날엔가는 내가 원래 이런 걸 뭐 어떡하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적고 

어떤 날에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으로 글을 적는다. 

들키고 싶지 않으면 쓰지 않으면 될 일인데, 또 뭐라도 쓰고는 싶으니 아이러니한 마음이랄까.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다. 재고 따지고 생각하지 말고 일단 그냥 하면 되는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는데, 그냥 하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써놓고 보니 지독한 자기변명 같지만, 맞는 말이니 숨기지 않겠다. 도전을 하려 해도, 하던 무엇을 멈춰보려 해도, 하고 싶은 말이나 억울함을 따지려다가도, 안부를 전하려다가도 문득문득 멈춰 서게 된다. 이게 맞나, 스스로 확신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타인에게서 구원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위안을 받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구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런데도 잘 안돼.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어서, 작업실 냉동실에 넣어둔 싸구려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날씨가 무척 더운 것도, 막 찬 무엇인가가 땡기는 것도 아닌데, 마음을 어쩌지 못해서 멤멤 돌다가 그걸 발견하고 퍼먹었다. 


작업실의 냉장고는 아주 작고 비실거려서 늘 무엇을 미지근한 온도보다 약간 서늘하게 만든다. 이건 그냥 상하라고 맞춰둔 온도가 아닐까 싶은 정도. 보통 냉장고가 4도 정도라면, 이 냉장고는 한 7-8도, 아니면 한 10도 정도쯤은 되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게 구체적이지만 그냥 느낌적 느낌일 뿐) 그래서 웬만한 것들은 넣어두면 금세 곰팡이가 생기므로 딱히 이용하고 싶지 않지만, 급할 때는, 그러니까 실온에 두면 뭔가 당장 상한다던지 하는 것들을 잠깐 넣어둘 때는 이용할 수 밖에 없다. 그 작은 한 칸짜리 냉장고에도 맨 꼭대기에는 작은 서랍처럼 생긴 냉동실이 있다. 냉장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냉장고가 냉동실이라고 제대로 작동할 리가. 그래도 뭔가 녹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얼마 전에 마트에 갔을 때 1+1 하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충동적으로 구매해서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먹을 일이 있겠지. 이제 봄이니까.


역시나, 통에 담긴 떠먹는 아이스크림은 완전히 녹아버린 것은 아니지만, 아이스크림이라기보다 차가운 초코 생크림에 가까운 질감이었다. 평소라면 고르지 않았을 초코맛. 나는 대게 어떤 맛을 고르라면 딸기나 바닐라 맛을 고르는, 기본에 충실한 인간이니까. 여간해서는 초코맛을 고르지 않는데도, 이번에는 그냥 눈앞에 보이는 할인 품목을 집어 들었다. 


엄마는 늘 동네의 할인 마트에 가서 그날 할인하는 식재료를 사 오곤 했다. 뭘 먹고 싶다거나 하는 것 없이 그날 제일 싼 재료. 팽이 버섯이나 오이, 어느 날에는 숙주나물이나 콩나물, 간혹 오징어 같은 것들을 사 왔다. 그럴 때면 나는 1원 한 장 생활비를 보태지도 않았으면서, 그거 얼마나 차이 난다고 꼭 먹고 싶지도 않은 세일 품목을 사느냐고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이것을 살림이라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1인분의 주거와 식 생활을 스스로 꾸려가는 시간 동안 이제 그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어차피 끼니를 채우려면 뭔가 요리를 해야 하고, 그건 매일 해야 할 일이라서, 딱히 뭘 먹고 싶은지가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달까. 할 수 있는 음식은 어차피 거기서 거기고, 게다가 쉽게 상하는 재료를 다 먹지 못해 썩어나가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므로 주로 오래 두어도 상하지 않는 야채를 고르게 되고, 그러니 늘 비슷한 음식을 먹게 된다. 내일 먹든 모레 먹든 큰 차이가 없는 식단에서, 굳이 제 값을 주고 무엇을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마트 할인코너에서 오늘의 끼니가 결정된다. 브로콜리나 새우가 할인하는 날엔 브로콜리 새우볶음을, 애호박이나 파프리카가 할인을 하는 날엔 야채 구이를, 버섯이 할인을 하는 날엔 버섯 파스타를 해 먹는 것이다. 영수증에 오늘의 할인 금액이 얼마인지, 그 숫자가 높을수록 뿌듯한 마음으로 장을 본다. 그러니까 이 초코 아이스크림은 그렇게 얻어걸린 메뉴 중 하나였다.




요즘에는 감정의 격차를 견디지 못해 혼자 허덕댈 때가 많다. 이럴 때 사람을 잘못 만나면, 나의 불안을 떠넘기게 될까 봐, 내 감정을 전가하게 될까 봐, 사람 만나는 일에 주의하고 있다. 불안을 시한폭탄처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싶지 않으니까. 코로나의 시대를 건너는 동안 감정을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정적 허기를 타인에게 위탁하고 싶지 않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내가 그렇게 할까 봐 겁이 나서 스스로 몸에 쇠사슬이라도 감은 기분이다. 친구를 만나서 커피라도 한 잔 할까 싶다가도, 결국 내가 할 말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말뿐이 아닐까 상기해내고 나면, 용기가 수그러든다. 타인에게 내 안에 담긴 불안과 긴장을 토로하는 것은 일시적으로는 기분이 나아지거나 환기가 될 수는 있지만, 돌아서면 그뿐이라서. 그렇지 않으려고 창 밖을 멍하니 구경하거나 산책을 한다. 안 그래도 몇 없는 친구를 물귀신처럼 잡아먹으면 안 되니까.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어서 망설이다 보면, 결국 그 사람이 나의 친구인가 싶은 심정이 될 때도 있다. 취약성을 나누는 유대감은 꽤 끈끈하지만, 그런 형식의 유대감은 결국 칼이 되어 돌아와 내 뒤를 찌르기도 하니까. 생각을 안 해야 되는데, 또 생각을 하고 말았네.  


생각을 멈추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막 생크림이 되어 녹을 것 같은 눅진한 초코 아이스크림은 이상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달고 진하고 차가운 무엇인가가 내가 토하려던 무엇을 막아 준 것도 같다. 사람을 소모하지 않으려고 먹을 것으로 목구멍을 채운다. 어쩌면 이것도 임시방편으로 언발에 오줌 누기 같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스스로를 한심해하지 않고,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잘 안돼. 그렇다면 그건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걸까. 노력의 문제인가, 인정의 문제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이생망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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