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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Mar 17. 2021

시와 다른 사람의 글을 기웃거린다

다른 세상으로 도피하는 방식




귀가 얇은 사람은 무엇이든 보고 듣는 것에 어떻게든 영향을 받고야 만다.

오래전에 나는 시처럼, 은 전혀 아니지만, 짧은 단문에 문장마다 띄어쓰기를 한 글을 자주 썼다. 그런데 계속 다른 사람들의 글을 구경하다보니, 제대로 된 글이라는 건 저렇게 길게 문단을 지어 써야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 그렇게 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요즘은 다시 시 같은, 함축적인 글을 쓰고 싶어 졌다. 

 





브런치 베타시절에 발견한 최애 작가는 고수리 작가님이었다. 초창기의 브런치에는 방송작가, 드라마 작가 등의 직업 외 글쓰기를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요즈음에는 문창과 출신이라던지, 문학적 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닌가, 그냥 내 취향이 바뀌어서 그런 글에 공감하게 되고, 결국 AI 알고리즘 때문에 더 많이 눈에 띄는 걸까. 여하튼 방송작가 식의 글과 문학을 향한 글은 묘하게 좀 다르다고 느끼는데, 뭐라고 표현해야 하지. 작가의 글은 좀 더 일상적인 표현이나 단어를 쓰는 느낌이라고 한다면, 문학을 향한 글은... 뭐야, 이게 이렇게 표현하기 어려울 말인가, 더 문학적이라 해야 하나, 예술적이라 해야 하나. 물론, 그걸 내 멋대로 통칭해서 묶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이 들더라는 말일뿐.




시에는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는데, 그것은 시는 고전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읽어도 잘 모를 때가 많고, 함축이 많이 된 언어들은 미술을 모르면서 현대 미술을 감상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나는 이해가 선행되지 않으면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더불어 재미도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시인이 늘어나고, 그들의 시나 글을 읽으면 재미있다. 내겐 새로운 사실이다. 시가 재미있다니? 운문이 즐겁다니? 이전의 시가, 한자가 섞인 일종의 고전문학처럼 느껴졌다면, 요즘에 나오는 꽤 많은 시들은 더 편하게 읽힌다. 흥미롭다. 내가 바뀐 건지, 현대시의 지향성이 바뀐 건지 나는 잘 모른다.


무엇보다 위트 앤 시니컬이라는 시집 서점을 알게 된 이후로, 서점 주인 유희경 작가님의 글을 즐겨 읽게 되었다. 뭐야 무슨 글이 이렇게 재밌어, 매일매일. 하는 기분이 든다. 하루치의 글을 읽으면 다음 글이 아쉽다. 그 속에 적힌 편지들을 보면서, 나도 어딘가에 편지를 쓰고 싶어 졌다. 이 정도면 엄청난 영감 아닌가. 무엇인가를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무엇을 꺼내기가 점점 더 꺼려진다. 글은 나의 일부인데, 내가 글의 전부가 되어,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손가락질당할까 봐 두려운 마음이 든다. 사실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도,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픽션을 쓰는 걸까. 자아를 다른 방식으로, 특히 외부의 시선으로 보고 싶어서. 작년 여름 문득 소설이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후 처음으로 요즘엔 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가끔 싱어송라이터들의 곡 가사를 필사하면, 잘 쓴 가사는 시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림보다 말보다 글이 편한 나라는 사람은, 이것으로 뭔가를 해낼 수 있을까. 사람의 불안에는 총량의 법칙이 없나, 내 불안의 총량은 시간이 갈수록 줄지 않고 늘어만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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