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 어느 이방인의 산책 일기
강물을 계속 오래 쳐다보면 빠지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어디서지, 책에서 읽었던가.
굳이 따지자면 물가보다는 하늘을 바라보는 편이다. 집 바로 근처에 강이 있는데도 생각만큼 자주 들여다보지 못했다. 좋은 산책길이 가까운 곳에 있어도, 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전에 살 던 집은 시내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고, 새로 이사 온 집은 강에서는 가까워졌지만 코로나와 추위에 져서 겨울 동안 자주 와 보지 못했다. 요즘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강가를 걷는 일이 잦아졌다.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겨우 이틀에 한 번 발도장을 찍을 수 있다. 가까운 강가를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는, 사실 또 다른 먼 곳에 이사를 가고 나서야 알 테다. 처음에는 이 강이 바다인 줄로만 알았는데.
가만히 강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특히 오늘처럼 빛이 좋은 낮이라면, 물가에 비쳐 반짝거리는 물결을 볼 수 있다. 그걸 찬찬히 쳐다보고 있노라면 문득 그 말이 생각나는 것이다. 강물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 속에 들어가고 싶은 이상한 마음이 든다고. 그런 마음이 들 때까지는 쳐다보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왜 그런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그런 마음이 들 것도 같다. 끊임없이 울렁이는 물결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러기 전에 하늘을 본다. 황사가 없는 맑은 하늘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지, 사실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다. 이 나라의 하늘은 대체로 뿌옇지 않고 맑아서 날씨가 좋기만 하다면 선명한 파란색을 실컷 볼 수 있는데도. 맞네, 내가 여기에 살면서 느낄 수 있는 장점, 맑은 공기와 강가의 산책길 같은 것들을 잊을 뻔했다. 잊지 말아야지, 얼른 기억을 상기시킨다. 누릴 수 있을 때 더 누려야해. 놓치지 말고.
꿈꾸는 삶이라는 것은 대체적으로 거대하지 않았다. 그냥 이 나라 사람들이 사는 모습 정도다. 9 to 6의 리듬을 지킬 수 있고(9 to 5면 더 좋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맥주나 와인을 한 잔 하는 것, 가끔 낮에도 커피를 마시며 공원을 산책하는 것, 건강한 먹거리와 맑은 공기,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만큼의 벌이. 그게 (특히 한국사람에게) 거대한 꿈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이미 가진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도, 나는 가지지 못한 것의 불안에 목이 메어서 가만히 구석에 앉아 있는 날이 잦았다. 라디에이터 옆에서 몸에 온기를 강제로 입혀가며. 한낮의 강가 산책에 감탄하다가도 모국어의 섬세한 기쁨을 떠올린다. 그렇다, 내가 지금 갖지 못한 그것. 그럴 필요 없잖아. 가진 걸 보는 편이 좋지.
워터 택시와 워터 버스가 텅 빈 채로 달린다. 이름만 그렇지 실은 차가 아니라 배라는 것은 함정. 타 볼까, 그러고 보니 이 도시 생활이 몇 년째인데도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다. 관광객들이나 타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관광객과 크게 다를 건 또 뭔가.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영수증 줄까'를 더치로 알아듣는다고 해서, 대답 대신 한쪽 눈을 깜빡이거나 여유로운 미소를 지어 줄 수 있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이 사회에 소속되었다는 의미는 아닐지도 모르는데.
코로나는 아직 끝을 보이지 않고, 어떤 이방인은 이렇게 지난 시간을 버텨왔다. 이 시간은 지나고 나면 어떤 의미와 배움으로 남게 될까. 실패로 기록되는 것은 아닐까. 미래는 알 수 없어서, 오늘도 나는 그저 햇빛을 보러 강가에 나가 산책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