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OW ARE YOU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틂씨 May 03. 2021

잊고 있던 활기의 감각

[Lockdown days - epilogue]





산책하는 김에 숨을 쉰다.

정말로 크고 깊게 시간을 들여서 후- 하고 불고 흡- 하고 들이마시는 숨.


하우스메이트 없이 텅 빈 집이 오랜만이라 자꾸 게을러진다. 이런 날은 흔치 않으니까 혼자만의 시간을 실컷 갖고 싶다. 막상 그렇다고 해서 딱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고 싶다.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아무래도 뭉그러지기 쉬우니까,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한다. 오늘처럼 맑고 해가 쨍한 날에는 어떻게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강가로 산책을 간다. 일단 주섬주섬 겉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는 현관문을 여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하다.


6개월여의, 사실 처음엔 한 두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유럽의 두 번째 락다운이 드디어 끝나간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상점이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할 수 있게 되었고, 제한된 오후 시간(12:00-18:00) 만이지만 테라스도 오픈했다. 작년, 아니 재작년의 어느 때처럼 길거리에 사람이 가득하고 자전거 도로에도 자전거가 가득 찼다. 오랜만이지, 이런 기분.




사람의 감각이라는 것은 미묘하고도 섬세해서, 이제야 기억이 난다.

이 나라의 좋은 점이 무엇이었나. 나는 왜 이 나라에 살고 싶었나. 그런 것들.


비가 오는 보통의 날씨는 이제 지겨워졌으면서도, 가끔씩 이렇게 햇빛이 반짝이는 날엔, 다시 생각이 난다. 맑은 하늘을 구경하고,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고, 잔디를 실컷 밟고 막 잘린 잔디의 푸릇한 풀냄새를 맡는다. 30분 이내의 도보나 자전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돌아보면 공원이고, 또 둘러보면 물이 흐르는 나라. 일 년에 한 번 한강 공원 가는 날을 미리 잡지 않아도, 생각나면 언제나 강을 볼 수 있는 곳에 사는 일. 테라스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커피나 맥주, 와인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을 보며, 인간의 활기라는 것은 삶에 얼마나 큰 요소인가, 다시 한번 생각한다. 그동안 텅 빈 거리가 낯선 줄도 모르고, 또 그러려니 적응한 채로 살았다. 맞다, 이런 거였지, 이 동네 일상적 삶의 즐거움이라는 것이.




강가의 풍경은 대게 시원하고 시원해서, 다른 도시보다 현대식 건물이 많은 이 도시의 뷰는 한강 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 달리는 워터 버스나 화물선 컨테이너의 색깔이나 혹은 그들이 물결에 튀기는 리듬만 봐도, 사라졌던 활기가 갑자기 오늘의 나에게 덮쳐오는 느낌이다. 이번엔 뛰어들고 싶은 마음보단,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라 다행이야.



이 활기가 기쁜데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 두려운 마음이 얽혀 복잡한 마음이 된다. 남들도 다 이렇게 힘겨운 시간을 지나고 있으니, 나도 좀 늘어져도 괜찮다고 다독였는데, 핑계 없이 다시 '보통의'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시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는데, 완연한 봄을 지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입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