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해도, 어쩔 수 없지
탁탁, 주말 오후에 빨래를 털어 널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왜 이렇게까지 빨래에 집착하게 된 거지. 그걸 이렇게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나. 이거 너무 시시한 삶은 아닌가. 하고.
바싹 마른빨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빨래의 조건이 꽤나 까다롭다.
이 집의 세탁기는 표준 세탁을 돌리면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이 걸린다. 세탁 후에 젖은 빨래를 세탁기 안에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대게는 세 시간 후에도 내가 집에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려면 아침 일찍부터 세탁기를 돌리던지, 아니면 이른 저녁에 돌려야 한다. 아침에 돌리면 점심쯤에 말려두고 나가거나, 하루를 일찍 마치고 돌아와 미리 세탁을 시작해두어야 밤 12시에 덜덜거리는 탈수 소리로 모두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우스 메이트들과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빨래를 돌려 널어놓은 시간도 피해야 한다.
어쨌거나 일인용의 빨래를 돌리기 때문에 아주 세세하게 구분을 하지는 않지만, 흰 빨래와 어두운 빨래는 확실히 나눈다. 그렇지 않으면 색이 서로 섞여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해외 살이가 길어져도, 색깔이 화려한 옷이나 세탁하기 까다로운 재질은 애초에 구매하지 않게 되었다. 내 빨래는 수건과 침구를 비롯한 흰색 계열과 짙은 색 바지들을 중심으로 한 어두운 색 -버건디, 네이비, 그레이, 블랙- 의 옷으로 구분된다. 울 샴푸나 손빨래, 드라이가 필요한 재질도 거의 없다. 이 동네는 드라이클리닝이 한국만큼 싸고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재질은 주로 면, 아무 때나 쓱싹 빨아도 괜찮은 옷들만 남았다.
그래도 속옷과 양말 등은 개수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양이 많이 쌓이지 않아도 정기적으로 빨래를 돌려주어야 한다. 사춘기 땐, 엄마에게 속옷이나 양말이 떨어질 때까지 빨래 안 해줬다고 어찌나 성질을 냈었는지... 엄마 죄송합니다. 네 식구 밥 해먹이고 청소하기도 벅찬 사람에게. 엄마가 너 빨래해주는 사람이냐고 한탄을 하면서도, 손빨래를 해서라도 자식의 요청을 들어주었던 엄마에게,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그냥 양말 몇 개 속옷 몇 개 더 샀으면 됐을 것을 하지만, 그건 다 지나고 나서 하는 생각이다. 교복 입고 제 삶에 부대끼는 사춘기 때에는 드러나지 않는 엄마의 노고까지 알아줄 깜냥은 안 되었던 것 같다.
여튼, 그렇게 매번 빨래를 할 때면, 생각보다 고려해야 할 것이 많다. 이 집은 창이 크지 않아서 대체로 어두운 편이므로, 해가 들고 나는 시간도 시간대마다 다르다. 그리고 악명 높은 북유럽 답게, 비가 오는 날도 잦다. 나는 빨래통이 어느 정도 채워지면 몇 일간의 일기예보부터 살펴본다. 한참 비가 내리는 시즌에 빨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비가 오는 날에 빨래를 해도 한국의 장마철처럼 빨래가 아예 안 마르지는 않지만, 그런 날에는 아무래도 뭔가 꿉꿉한 느낌이 든다. 무조건, 해가 나는 날 빨래를 해야 해. 맑은 날, 향후 12시간 정도는 비가 오지 않기로 예정된 날을 잡아 3시간을 비워두어야 한다.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그리고 해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추어 건조대를 햇빛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맞춰 둔다.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신경을 써서 빨래를 해도, 예상치 않게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이어져 발을 구르게 되는 일들은 종종 생긴다.
그러려면 적어도 남-서향의 창이 집의 어느 한 곳엔 꼭 있어야 하고, 그곳에 빨래를 널 만한 빈 공간도 있어야 한다. 어떤 집은 북향이기도 할 것이므로, 이것은 생각보다 더 까다로운 조건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그 모든 조건이 너무 중요하다. 햇빛에 바싹 말린 옷을 입고 싶으니까. 어쩐지 물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은, 말라도 마른 것 같지 않은 눅눅한 옷을 다시 접어 옷장에 넣고 싶지 않으니까.
볕이 좋을 자리에 건조대를 들이며 생각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매번 할 필요가 있어?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야? 그보다는 커리어에 생산적인 일이나 대인 관계를 넓히는 일, 아니면 맛있고 영양가 있는 무엇을 먹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하찮은 일에, 이렇게나 신경을 쓰는 이유가 뭘까.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젓는다. 내게 이것이 중요하다는 데, 내가 그렇다는 데 뭐 어쩌겠나. 내게는 좋은 향수를 쓰는 것보다 눅눅하지 않게 건조된 빨래를 입고 쓰는 일이 더 중요하고 행복한 걸. 볕이 쨍한 날, 고소하고 바스락 거리는 햇빛 냄새가 날 것 같은 빨래를 걷는 일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시시하면 시시하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