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한 셈 친다면,
이러고 있는 거, 너무 우습다고 생각한다.
온라인으로 뭔가를 구매해놓고선, 택배가 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는 일. 나만 그런가.
'Track your record'가 분명히 떠 있는데도, 믿지를 못하고 메일을 자꾸만 새로고침 하게 된다. 물건을 내 손으로 직접 받는 순간까지, 아마 그럴 것이다.
네덜란드의 택배 시스템이 한국보다 느슨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만, 그보단 시대에 맞지 않게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뭐든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당장 내 손에 무엇이 들려있지 않으면 어쩐지 불안한 마음이 된다. 우편번호나 집 호수의 숫자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다시 확인한다. 주문한 물건들은 왜인지 몰라도 두 개의 패키지로 나눠져 오고 있다. 왜긴 왜야, 픽업 장소가 다른가 보지. 나는 혼자서도 별 걱정을 만들어서 한다. 이케아의 배송 시점은 꽤나 범위가 넓어서, 이런 식이다. 13시와 19시 사이. 아니, 하루 종일 집에서 택배만 기다리란 말인가! 내적 씅을 내보지만, 그뿐이다. 자잘한 것들을 시켰다면 근처 마트로 픽업을 가겠다고 선택했겠지. 하지만 이것은 매트리스와 베이스 프레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손으로 직접 들고 올 수 있는 무게는 아닐 것이다. 얌전히 집으로 오는 상자들을 기다릴 수밖에.
트럭 딜리버리의 가격은 49유로. 와, 비싸다. 하지만 살아 본 바에 의하면, 웬만한 생활용품은 근처 싸구려 매장에서 무엇을 사는 것 보다야 이케아가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 고급진 무엇인가를 살 것이 아니라면 이케아 압승. 이번에 큰 마음먹고 주문한 매트리스와 프레임의 가격은 적어도 내게는 꽤 큰돈이었다. 컨펌 버튼을 클릭하기 까지 오래 망설였다. 대학 새내기 때 자취방에 놓았던 첫 침대는 12만 원짜리 슈퍼 싱글이었다. 매트리스와 프레임을 합친 합리적인 가격의 침대. 매트리스는 딱딱하고 프레임 바닥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 침대를 10년 넘게 쓰게 될 줄은 그때는 몰랐었지.
정해진 것들이 제대로 제시간에 도착할지 걱정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이다. 바꿀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시스템을 믿고 편안하게 기다리던지, 혹시나 그렇지 않으면 이미 벌어진 일을 수습하는 방법밖에 없다. 뭐든 잘못될 수 있지. 그러면 고치면 돼. 하지만 머리로 알고 있는 이 일을 내 마음은 잘 감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고치면 돼' 그 마음이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능하면 고치지 않고 싶다. 틀리지 않고 싶다.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자로 잰 것처럼 똑 부러지면 좋겠어. (참고로, 침대는 정해진 시간에 제대로 도착했다.)
새 침대다, 침대! 오와아아아. 거대해.
20cm 두께의 포켓 스프링 더블 사이즈 매트리스. 살면서 이런 두터운 매트리스를 처음 가져본다. 그러니까, 자취생의 침대 이후에도, 잦은 이사만큼 여기저기를 떠돌면서, 남이 쓰다 넘긴 삐걱대거나 얼룩이 있거나 돌처럼 단단한 매트리스들을 물려받아 써왔다. 돈도 돈이지만, 미래를 알 수 없어서 그랬다. 예측할 수 없는 삶에 투자를 할 수는 없으니까.
가장 최근에 이사 온 집에는 바닥만 겨우 벗어난 슬래티드 베이스와 얇은 싸구려 싱글 매트리스가 방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밟으면 윗면이 바닥에 닿아서 함부로 풍덩 몸을 던지지 못하는 출렁거리는 오래된 매트리스에서는 잘 때마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되었다. 너비 90cm는 넓지 않아서, 관짝처럼 한껏 몸을 그러모아 잠에 들곤 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스프링 철사의 감각과 그 밑에 닿은 딱딱한 바닥이 어쩌면 내 삶의 지표인 건 아닐까, 서글픈 날엔 그런 생각도 했다. 금새 새 침대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래 버텼네.
가성비를 따지는 인간은 본넬 매트리스(포켓 없는 스프링 매트리스)를 거쳐, 결국 포켓 스프링 매트리스까지 도달했다. 이왕이면 철제보다야 원목 프레임이 낫겠지. 50유로를 더 내면 조금 더 나은 베이스를 선택할 수 있다. 언제나 그놈의 ‘조금만 더'는 막상 더하고 보면 '조금'이 아니라 ‘거대'한 돈이 된다. 정해둔 예산은 쉽게 넘었다. 나는 이 돈을 침대에 소비해도 되는 사람일까, 스스로 묻는다. 선택은 사실, 할수록 는다. 이쯤이면, 더 나은(더 싸면서도 좋은 퀄리티)의 선택지가 어느 순간 뿅 하고 생겨 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잘 안다. 선택을 미룰수록 마음속의 부채감만 늘어나겠지. 이 모든 프로세스를 머릿속에서 끝마치고 나서야, 이케아 웹사이트의 파란색 컨펌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실은 가끔, 돈의 값어치를 알 것 같으면서도 쉽게 무시한다. 무시하지 않으면 상처가 될까 봐, 그렇게 한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대게의 것은 정확하게 돈 값어치의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싼 데 좋은 것은 거의 없다. 비싼 것은 대게 더 좋다. 그걸 알면서도, 조금 비싸다 싶은 구매 결정은 언제나 나를 멈칫하게 만든다. 그거 정말 꼭 필요한 거야? 최선의 선택일까?
새 매트리스는 존재만으로도 이미 허접한 싱글 매트리스를 압도했다. 뭐야, 이거, 온몸을 던져 쿵쿵 뛰어봐도 흔들리지 않는다. 발이 바닥에 닿지도 않아. 굳이 기백만원 하는 시몬스까지 가지 않아도, 포켓 스프링의 존재만으로도 그렇다. 어린이들이 왜 매트리스 위를 뛰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우드 프레임은 다행히도 새 매트리스를 바닥으로부터 한껏 띄워주었다. 실버 피쉬가 매트리스로 기어 올라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군. 삶의 레벨이 리프팅된 느낌이라면 과장일까. 며칠간 어떤 매트리스와 프레임을 고를지 고민하던 시간이 무색하게, 거대하고 좋다. 이 든든한 매트리스에게 앞으로의 인생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어질 정도로.
네덜란드는 오미크론을 맞이하야 긴급 락다운에 들어갔고, 덕분에 일이 없어진 나는 평소에 하지 않는 온라인 구매 버튼을 여러 번 눌렀다. 십 년째 쓰고 있는 몰스킨 위클리 플래너와 <마이너 필링스>책, 침대와 커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하기엔 좀 과분하지만, 돈이야 또 벌면 되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