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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틂씨 Jan 15. 2022

당신이 생각해 보지 못했을 어떤 꿈들

어떤 악몽에서는 침대 프레임을 도둑맞기도 한다





아니, 오늘 아침에 새벽같이 깼어. 이상한 꿈을 계속 꿨거든.



얼마 전에 오은영 박사님이 멘토로 나오는 프로그램에서 정수리 쪽 머리가 많이 빠져서 고생하는 아이를 봤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를 진정시키려고 자기의 신체를 자극하거나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친구는 머리카락을 뽑는 걸로 마음을 달래려고 해서 그렇대. 그 모습이 꽤 충격적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나도 사실은 종종 손을 가만두지 못하고 돼지털이라고 부르는 거칠거칠한 머리카락들을 골라 뽑는 버릇이 있어서 제 풀에 놀란 건가.


아무튼 꿈속에서 내가 탈모의 주인공이 된 거야. 아침에 눈을 떴더니 오른쪽 이마 반쪽이 훤히 벗겨진 거지. 뭔가 휑한데 머리카락이 한참 뒤에서 시작돼. 그것도 반쪽만. 너무 놀라서 의사한테 찾아가 머리를 들이밀면서 이게 탈모가 맞느냐,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 당장 고쳐내라 따지는데 갑자기 의사가 사라진 거야. 그래서 한참 기다리다가 병원에서 나와 그 옆에 '러쉬'처럼 생활용품이랄까 그런 걸 파는 가게에 들어갔다? 유기농 샴푸도 팔고 그런 곳이었는데, 주인 여자에게 꾹 눌러쓴 모자를 벗으면서 반 정도는 까진 내 이마를 보여줬더니 당황하더라. 그러면서 이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일단 와서 앉아 보래. 머리 감겨주겠다고. 아니 이렇게 머리카락이 잔뜩 사라졌는데, 어떻게 샴푸로 해결이 되겠어. 미심쩍은 마음이 잔뜩 들어서 그 가게 주인을 빤히 바라보는 중인데, 깼어. 잠에서. 웃기지.




사실 그보다 더 웃긴 건 다음 꿈이야. 최근에 내가 침대를 샀거든. 그 후로 꽤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잠들곤 했는데, 꿈속에서 눈을 떠 보니까 그 침대 프레임만 사라진 거야. 그래서 하우스 메이트들에게 물어봤지. 내 침대 프레임 봤느냐고. 못 봤대. 너무 어처구니가 없잖아. 그렇게 커다랗고 무거운, 혼자서는 들 수도 없는 2m짜리 나무로 된 침대 프레임을 누가 쥐도 새도 모르게 들고 갔느냐 이거야. 내가 그거 배송 왔을 때도 40kg가 넘어서 박스에서 나무 프레임을 하나씩 꺼내서 일일이 계단으로 나르고 그랬는데. 갑자기 몹시 억울한 마음이 들더라. 왜, 하필 내 침대, 그것도 프레임을! 동동거리는 기분으로 잠에서 깼지.


근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거야. 지금 내 생활의 안정성이 딱, 그 정도 인 건 아닐까. 그렇게 쉽게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는 정도인 거 아닐까. 나를 어딘가에 '정착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집 주소에 등록되어 있고, 세금을 내면 그렇다고 할 수 있나. 그런데 사실 나는 비자가 만료되면 언제든지 쫓겨 날 수 있는 비유럽-외국인인걸. 지금을 제대로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실질적으로 내 손에 쥐어진 목표나 가치 같은 게 있나. 그것도 아니라면, 나는 왜 사는 거지. 이런저런 혼란스러운 생각이 밀려오더라고. 불안한 마음들을 그동안 조금은 극복하지 않았나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이 삶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 같은 존재인지 떠올리곤 해. 외국인은 내국인이 당연스레 가진 단단한 기본 바닥, 그게 없어. 당신이 온전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서류상에 사라지지 않는 숫자와 기록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자신의 나라에서만 사는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 거야. 언제든, 너 아웃, 하면 쫓겨날 수 있는 어떤 존재들에 대해서 말이야. 겨우 내 침대가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실은 언제든지 아무도 모르게 사라질 수 있는 거라는 상상. 어쩌면 되게, 무엇보다 사실적인 기분일지도 몰라.


그런 마음들을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작던 크던 갖고 있는  같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여기에 있는 거야?  있고, 존재하고, 살아내기로 선택한 거야? 물으면 대게 비슷한 답이 돌아와. 자신의 나라에서 사는  지긋지긋해서,  작고 좁은 세상에서 도망치고 싶어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발을 딛어 보고 싶어서. 자신과 동질성을 가진 형질들을 사랑하고 당연히 여기는 마음과 거기에 질려서 끔찍하게 여기는 마음이 섞인, 애증이 각자 다른 모습으로 마음  구석을 차지하고 있지.




꿈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몰라. 다만 아직도 배회하고 있나 보다, 꿈에서 깨면서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 땅이 정말 내 홈그라운드가 되는 날이, 그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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